Part 2. 무수한 기체 먹고 은하 ‘비만’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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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견됐을 때 활동성 은하핵(AGN)은 그저 예외적인 천체였다. 그러나 거대질량 블랙홀이 AGN의 ‘엔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 블랙홀의 질량을 재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많은 천문학자들이 AGN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AGN을 새로운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모든 은하의 중심에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잠자고 있는 비활동성 은하핵도 과거엔 AGN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AGN에서 쏟아진 막대한 에너지가 모은하(host galaxy)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모은하의 ‘몸집 키우기’에 제동을 걸다?

시작은 1998년, 천문학자 존 마고리안이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비롯됐다. 그는 은하의 중심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과, 모은하의 중앙 팽대부(별이 모여있는 뚱뚱한 중앙부)의 질량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더 정밀한 연구 끝에,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언제나 모은하 중앙팽대부 질량의 0.2%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훗날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이 별들의 속도분산(시그마)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M-시그마 관계’로 정립됐다(박스 기사 참조).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그 누구도 이런 관계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모은하보다 수천~수 십만 분의 1로 작거든요. 그런데 얘가 마치 모은하의 질량을 알고 딱 그 0.2%까지만 큰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죠.”

이 불가사의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AGN 피드백’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은하가 초기 진화 단계에서 별을 열심히 만들어 질량을 더 키울 수도 있었는데, AGN의 활동이 일종의 되먹임(피드백)으로 작동해 별의 탄생을 막았다는 것이다.

AGN 피드백에는 크게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첫째는 ‘퀘이사 모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가스를 아주 많이 먹으면서 최대 한도까지 빛을 내는 경우, 강력한 항성풍이 발생하면서 별의 필수 재료인 기체가 모두 흩어져 버렸다는 가설이다. 은하 두 개가 병합하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 때 주로 퀘이사 모드 피드백이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 교수는 “두 은하가 병합할 때 조석력 때문에 기체가 중앙으로 몰리면서 AGN이 세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김민진 한국천문연구원 은하진화그룹 선임연구원은 “이토록 격렬한 활동을 과연 모든 은하가 겪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우 교수도 “병합이 끝난 뒤 기체가 다시 모여 식어서 별이 탄생할 환경이 되는 건 순식간”이라며 “퀘이사 모드 피드백이 끝난 뒤에도 별의 탄생을 지속적으로 막는 피드백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두 번째 피드백, 바로 ‘전파 모드’다. AGN에서 상대론적 제트가 방출될 때 주변이 뜨
거워지면서 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가설이다(별은 기체가 10K 정도의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 수축해야 만들어진다). 이때 제트의 운동에너지로 기체가 흩어지기도 한다. 김 연구원은 “어쩌면 퀘이사 모드 피드백보다 은하 진화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별이 폭발적으로 탄생할 때 AGN이 켜진다

과연 AGN 피드백 가설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걸까. 우 교수는 “제트의 운동에너지 때문에 주변 기체가 밀려나는 게 실제로 관측된다”며 “그러나 이는 제트를 방출하는 일부 AGN에서만 검증되는 것으로, AGN 피드백에 대한 결정적인 관측 증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AGN에서 기체가 분출되면서 그 운동에너지로 주변 기체가 흩어지거나 뜨거워 졌다는 세 번째 피드백 모드가 제시됐다.

상반되는 증거도 발견된다. 이론적으로는 AGN이 격렬할수록 별이 탄생할 확률은 작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AGN에서 새로운 별이 활발하게 태어나는 현상이 관측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석영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별 탄생과 AGN 모두 기체를 ‘식량’으로 하는 활동”이라며 “은하가 생성된 초기에 별이 폭발적으로 만들어지다가 어느 순간 AGN이 켜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만든 중력장으로 기체가 몰리면서 두 사건이 아주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벌어졌다는 의미다. 운이 좋게도(?) 바로 그 시점을 관측한 것이다.

자, 이제 은하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을지 시나리오를 써보자. 어떤 이유로 거대질량 블랙홀 씨앗이 생겼다. 중력장이 생기면서 기체가 모이기 시작한다. 기체의 밀도가 서서히 높아지다가 임계점을 넘어가면서 별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블랙홀은 기체를 삼키면서 몸집을 키워간다. 점차 블랙홀의 활동이 격렬해지면서 주변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한다. AGN이 켜진 것이다.

이제 AGN 피드백이 시작된다. 방출되는 에너지 때문에 기체가 흩어지거나 뜨거워지면서 별 탄생이 막힌다. 즉, 은하의 성장이 멈춘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기체를 계속해서 집어 삼킨다. 어느 순간 기체가 고갈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먹이 활동’을 멈춘다. 에너지도 더 이상 방출되지 않는다. 은하 중심을 밝히던 환한 불이 꺼지고, 비로소 비활동성 은하가 된다.

그럴 듯 하지만, 아직 정설로 인정 받은 시나리오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AGN 피드백을 실제로 관측 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더 많은 은하와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을 측정하면서 M-시그마 관계를 만족하지 않는 예외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M-시그마 관계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는 AGN 때문에 기체가 한 곳으로 몰리면서 오히려 별이 더 많이 태어났을 거라는 양성 피드백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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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주에 극도로 무거운 은하가 적은 이유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AGN 피드백은 획기적인 가설로 인정받고 있다. 의외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활약했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광도함수 문제’다.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은하를 광도 순으로 나열하면 어두운 은하가 많고 밝은 은하가 적다. 별이 많을
수록 은하가 밝으므로, 가벼운 은하가 많고 무거운 은하가 적다는 의미다. 이는 당연한 결론이다. 작은
은하들이 먼저 생기고 일부가 합쳐지면서 무거운 은하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론과 관측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물리법칙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극도로 무거운 은하와 극도로 가벼운 은하 모두 최대 10배 더 많아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새로운 물리학이 은하 진화에 적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 질량이 작은 은하가 이론보다 적은 이유는 ‘초신성 피드백’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다. 초신성 폭발로 주변 기체가 달궈지면서 별 생성이 막히고, 일부 은하는 죽는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질량이 아주 무거운 은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초신성 피드백 효과가 이들 은하와 비교하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무거운 은하가 이론보다 적은 이유를 AGN 피드백으로 추정한다. 일정 크기 이상 커진 은하에서 AGN이 켜지면 AGN 피드백에 의해 은하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따라서 이론적 예측과 달리 극도로 무거운 은하는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AGN 피드백을 포함해 시뮬레이션을 다시 했더니, 무거운 은하가 실제 관측된 수만큼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Croton et al. 2006).

AGN과 우주 진화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우 교수는 “모든 천문학자가 AGN에 대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은하가 진화할 때 영향을 줬다는 사실 정도”라고 말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다양한 가설을 놓고 첨예하게 논쟁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앞으로의 10년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관측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지만, 이런 노력을 비웃는 듯 AGN은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너무 먼 데다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김연구원은 “2020년대 초 거대마젤란망원경(GMT)이 완성되면 관측천문학이 또 한번 도약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세운 AGN 관련 가설을 대폭 수정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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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우아영 기자
과학동아 2016년 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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