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science] 달의 여신의 눈빛, 루나 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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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5월 26일 오전 경기 용인 경희대. 미국 브라운대 지구과학과 칼 피터스 교수가 화면 가득 띄운 달 사진을 보며 감격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경희대 우주탐사학과에서 개최한 ‘달과학 워크숍(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던 중이었다. 피터스 교수는 한국 나이로 칠순을 넘긴 백발의 할머니인데(1943년생), 눈만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빛이 났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다 1980년 브라운대 교수로 부임한 뒤, 지금까지 현역으로 연구하며 세계적인 탐사 임무를 이끌고 있다. 태양계 행성과 달이 주 연구 분야다.

피터스 박사가 가리킨 달 사진은 평범하지 않았다. 가로 길이가 수십km 정도 되는 영역을 확대했는데, 마치 커피에 우유를 떨어뜨리고 한 번 대충 휘저었을 때처럼, 검은 땅 위에 희끗희끗한 무늬가 불규칙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피터스 교수의 감탄에 청중이 한바탕 웃고 나자, 박사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무늬의 원인을, 우린 아직 모르고 있죠.”


달 표면엔 하얀 소용돌이가 춤을 춘다

이 무늬는 달 과학자들 사이에서 ‘루나 스월(Lunar Swirl, 번역하면 달 소용돌이)’이라고 불리고 있다. 천체의 표면에서 빛이 반사하는 정도를 ‘알베도’라고 부른다. 알베도가 높은 부분은 눈으로 보기에 밝아 보이고, 낮은 부분은 어두워 보인다. 달을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표면이 검은데, 알베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면 일부는 유독 알베도가 높아 밝게 보인다. 모양도 특이해, 마치 연기가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이 흐른 듯 구불구불 이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 기묘한 무늬가 바로 루나 스월이다.

루나 스월은 최근 달 연구의 ‘핫이슈’다. 인류가 달에 간 이후 달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다. 하지만 스월은 버젓이 표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 데다 달의 여러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도, 형성 원인을 비롯해 뭐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 이번 워크숍에서 이야기를 한 과학자들 가운데 거의 절반도 스월 현상의 원인에 대해 발표를 했다. 혹시 일부러 스월을 워크숍 주제로 선정한 건지 혼란스러워졌다. 행사를 진행하던 진호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에게 물으니, “전혀 아니다. 참석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한 주제인데 우연히 겹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학자 다수가 현재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피터스 교수도 “스월은 원인 등 연구할 게 많은 데 반해 아직 규명된 게 별로 없어서 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월은 여러 가지 기묘한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흰색이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다. 천체 표면의 광물 입자는 태양에서 날아온 우주선과 미세한 유성체에 노출되면서 색이 검게 변하는 ‘우주 풍화’ 현상을 겪는다. 내부의 수증기가 증발하거나 입자 일부가 튀어나가고 대신 미세한 철 성분이 입자 표면에 쌓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비유하자면 암석이 태양에 시달려 ‘늙는’ 셈이다. 대기권과 지구 자기장의 보호를 받는 지상의 사람도 햇빛을 많이 쬐면 피부가 그을리고 늙는데, 보호막이 거의 없는 달 표면에서 암석이 늙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달을 비롯해 어지간한 우주의 소천체가 검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월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노화’가 없었던 걸까. 그리고 왜 하필 물이 흐르거나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모양인지도 수수께끼다.

 
이미지 확대하기달 뒷면 남쪽에 위치한 지혜의 바다(Mare Ingenii)의 루나 스월. 부드러운 흰 무늬가 아름답다. 왼쪽 페이지 사진은 가장 유명한 루나 스월인 ‘레이너 감마’. 달 앞면에 있으며 눈 모양이 고혹적이다.달 뒷면 남쪽에 위치한 지혜의 바다(Mare Ingenii)의 루나 스월. 부드러운 흰 무늬가 아름답다. 왼쪽 페이지 사진은 가장 유명한 루나 스월인 ‘레이너 감마’. 달 앞면에 있으며 눈 모양이 고혹적이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이 지역에서 자기장이 검출된다는 사실이다. 원래 달은 지구와 달리 자기장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달에 탐사선이 가 관측을 해보니 예외가 있었다. 일부 표면에서 약한 자기장이 검출됐는데, 기묘하게도 그 지역이 루나 스월이 있는 지역과 겹친다. 스월의 형성 원인과 관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메커니즘 때문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색 이외에는 주변 지형과 두드러진 차이가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즉 스월이 있는 곳이 더 튀어 나왔다거나 하는 게 없다. 오직 색만 다르다. 이 역시 특이한 형성 원인 때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지 확대하기달 앞면달 앞면
이미지 확대하기달 뒷면달 뒷면
이미지 확대하기레이너 감마의 스월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아이라인을 그린 듯한 검은 선이 이색적이다(왼쪽 화살표). 오른쪽은 지혜의 바다를 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의 가로 길이가 15km다. 화살표가 스월이다.레이너 감마의 스월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아이라인을 그린 듯한 검은 선이 이색적이다(왼쪽 화살표). 오른쪽은 지혜의 바다를 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의 가로 길이가 15km다. 화살표가 스월이다.

 

스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과학자들은 이런 기묘한 특징들이 루나 스월이 만들어진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터스 교수의 제자로, 미국 UC 산타크루즈 교수이자 경희대 초빙교수인 이언 개릭-베델 교수 등은 200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제출한 백서와 2011년 학술지 ‘이카루스’ 논문을 통해 스월을 만든 원인을 크게 네 가지 가설로 정리했다(아래 INSIDE 참조).


이번 워크숍에서도 참석자들은 각자 스월의 원인에 대해 좀더 상세한 설명을 제시했다. UC 버클리의 야스퍼 할레카스 교수는 태양풍의 차폐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중국, 일본, 인도 및 미국 탐사선의 측정 결과를 보면, 표면에 분포해 있는 작은 자기장이 태양풍 속 이온(전자 및 중이온)을 최고 50% 이상 반사시킨다”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상공에서 이온이 가속되면서 뜨거워지는 현상이 일어난다”며 “태양풍의 이온이 어떻게 속도가 줄고 가열되는지 등을 알 수 있도록, 달 전체의 이온을 3차원으로 관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UC산타크루즈의 더그 헤밍웨이 교수 역시 우주 풍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태양풍을 더 강하게 받는 달의 저위도 지역은 더 어둡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달 표면에서 스월을 더 찾으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개릭-베델 교수와 헤밍웨이 교수 팀은 달 앞면에 있는 지름 555km의 분지인 위난의 바다에 스월이 존재하는지를 연구했다. 이곳은 국지적인 자기장이 발생하고 있지만, 간간히 작은 흰 점이 있을 뿐 뚜렷한 스월이 관측되지 않는다. 만약 자기장 차폐 현상이 스월의 원인이라면 이 지역의 밝은 점도 스월이어야 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아직까지는 스월로 볼 수 있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달 표면에 있는 먼지에 대한 연구도 많이 나왔다. 달은 지구에서와 같은 풍화를 겪지 않지만, 대신 우주선이나 미세한 유성체와 만나 표토의 미세한 가루(먼지)가 생긴다. 이 먼지가 이동을 해와서 스월이 생겼다는 개릭-베델 교수팀의 가설도 있다.

김성수 경희대 교수와 심채경 연구원은 달의 편광을 관측해 표토의 입자 크기와 노화 사이의 관계를 지역별로 비교하는 연구를 제안했다. 빛은 달 표면에서 표토 입자에 부딪혀 반사되거나 산란, 흡수되는데, 그 중 반사된 빛의 편광을 분석하면 표토 입자의 크기를 알 수 있다. 김 교수팀은 15cm 반사망원경으로 달 앞면 전체의 편광 지도를 만들고 지상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심채경 연구원은 “편광 연구를 통해 스월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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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음 역할 기대해

연구자들이 이렇게 스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체적인 달의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보다 자세한 달 관측 연구가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한국이 몇 년 안에 쏠 달 궤도선에 관심을 보였다. 피터스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과 기회가 된다면 같이 연구하고 싶다”며 “처음 시작하는 한국으로서는 어떤 임무가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더그 헤밍웨이 교수도 “달 탐사와 연구에 대한 한국의 열정과 긍정적인 태도에 감동받았다”며 “한국의 달 탐사를 통해 내가 세운 이론을 실험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셀레네의 잃어버린 흰 빛이 달에 새겨져 있는 루나 스월. 그 비밀은 아직 신비에 싸여 있다. 멀고 먼 은하까지 규명하는 현대 천문학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이자 인류가 발자국까지 남긴 달에서도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달은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38만km 떨어진 그곳에 한국은 아직 작은 탐사선 하나 쏴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곧 탐사선을 보낼 날이 올 것이다. 한국이 다음 역할을 성공적으로 맡을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글 :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과학동아 2014년 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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