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화학실험에서 화학자의 길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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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콘버그 교수의 열띤 강의를 잠시 끊은 것은 한 통의 전화벨 소리였다. 바로 콘버그 교수의 휴대전화였다. 발신자를 확인한 콘버그 교수는 청중에게 양해를 구한 후 전화를 받았다. 막내아들의 전화였다. 통역을 하던 강린우 건국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콘버그 교수님이 다른 전화는 안 받아도 막내아들의 전화는 꼭 받는다”고 말했다. 콘버그 교수는 상냥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강연 중이라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숙제를 도와달라는 전화였다.

로저 콘버그 교수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노벨상을 받은 세계 다섯 부자 중 한 사람이다. 아버지 아서 콘버그 교수(1918~2007)는 RNA와 DNA 합성에 대한 연구로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들 로저 콘버그는 교수는 진핵생물의 유전정보가 전사되는 과정을 밝혀내 20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뛰어난 과학자인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부담감을 느끼신 적은 없으셨나요?”라는 박현우(한성과고 1학년) 학생의 질문에 콘버그 교수는 “아버지는 항상 내 친구였지, 아버지였던 적이 없다(He was not my father, he was my friend)”고 답했다. 방금 전 콘버그 교수의 막내아들과의 통화에서, 그와 아버지 아서 콘버그 교수 사이의 관계를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벨상으로 이르기까지의 나의 길’이란 제목의 로저 콘버그 교수의 강연은 11월 1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서울 한성과학고, 안산 경안고 외 7개 학교 300명의 학생들이 콘버그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다. 콘버그 교수는 자신이 화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고등학교 시절 첫 화학실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플라스크에 황산구리를 넣고 물을 채워 밀봉한 뒤 한 달 후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콘버그 교수는 “다시 플라스크를 확인했을 때 층층이 쌓인 푸른색의 바다 빛깔 무지개를 보았다”고 말했다. 황산구리가 물 전체에 녹아 새파랗게 되는 대신 층을 이룬 까닭은, 황산구리가 물에 잘 녹긴 하지만 확산 반응이 매우 느리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콘버그 교수는 “대학원에 가서도 확산 반응을 주제로 계속 연구를 해 세포막의 이중 지질막 사이에서 물질의 확산은 수평 방향으로만 일어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강연 시간 내내 학생들은 진지한 모습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소감을 묻자 남궁한(한성과고 1학년) 학생은 “시간이 짧았던 게 아쉬웠고, 노벨상 수상자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콘버그 교수는 강연을 들은 300명의 학생에게 모두 친필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했다.


 

글 :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과학동아 2012년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