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중력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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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이상이 생기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 처음에는 느끼기 힘들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병원을 찾는 환자는 원인을 알아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가 있는데도, 무시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과학도 다르지 않다. 이상 현상이 보이는데, 이것을 덮어버리면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 중력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해 보이는 상식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 고집을 꺾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이 고무줄처럼 변한다거나 공간이 휜다고 말했을 때 일상 이외의 자연 현상을 접하기 어려운 보통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 현상을 보고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뉴턴의 중력 법칙으로는 수성의 공전 주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잘 알려져 있었다. 이를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측정한 프랑스의 천문학자 위르뱅 르 베리에는 낡은 중력 법칙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수성 안쪽에 미지의 행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행성이 ‘벌칸(Vulcan)’이라는 암흑행성이다. 그 뒤 무려 50년 동안 과학자들은 태양의 흑점을 암흑행성으로 오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행성을 가정하는 대신 시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은 자연의 이상 현상 앞에서 시공간의 절대성을 과감히 버린 용기에 있다. 이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건 가정이 아닌 관측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빛을 향해서 달려가도, 혹은 빛과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도 관측자가 보기에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 속도는 거리와 시간의 관계로 나타낸다. 빛의 속도가 정거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버스를 타고 달려가는 사람에게도 똑같기 위해서는 시공간이 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공간의 절대성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19세기 철학자 마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세상에 절대적인 질량은 없다. 중력은 그 물질의 주변에 있는 거대 구조에 의해 상대적으로 주어질 뿐이다. 관성에 의한 질량과 중력에 의한 질량이 같다는 사실은 이미 외트뵈슈의 실험으로 확인됐다. 즉, 자유낙하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중력을 느낄 수 없다. 관성에 의한 가속도와 중력에 의한 가속도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도 아인슈타인처럼 질량이 있는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자유낙하하는 엘리베이터의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을 향해서 빛을 보낸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빛이 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밖에 있는 사람이 보면 빛의 경로가 휘어진 것으로 보인다. 빛이 출발하는 순간과 빛이 도착하는 순간의 가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시공간의 좌표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면 빛의 경로도 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하면 시공간이 질량에 의해 휜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다. 1924년 러시아의 물리학자 오레스트 크폴슨은 빛이 질량이 큰 물질 주변을 지날 때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는 것과 같은 중력렌즈 효과가 생길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1979년 관측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실제로 먼 거리에 있는 퀘이사의 빛이 은하단 주변을 지나면 휘어서 거대한 원을 그리거나 상이 두 개 이상으로 보인다. 중력이 시공간을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했던 시공간이 질량이 있는 물체의 중력에 의해 휜다는 사실까지는 밝혀졌지만, 시공간이 얼마나 휘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시공간이 휘는 정도에 일관성이 있느냐도 문제다. 질량의 크기와 시공간이 휘어지는 정도의 상관관계가 우주 어디에서나 똑같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이다. 지구에서 행한 실험과 관측 결과를 보면, 대략 mm 단위부터 태양계의 크기 사이에서는 휘어지는 정도가 일정하다. 아인슈타인은 제한된 실험을 통해 정한 이 중력상수를 우주의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현재 중력 연구자들은 mm보다 작은 단위, 그리고 태양계보다 큰 단위에서 이 문제를 검증해 일반상대성이론이 우주 전체에서 일관성을 갖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중력상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힘,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을 결정하는 다른 상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이렇게 커다란 차이는 중력을 다른 힘과 통합시키는데 걸림돌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4차원 이상의 시공간을 도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이 있을 경우 중력상수와 다른 상수 사이의 차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관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가정한 시공간에 4차원 이상의 공간이 있다. 초끈이론으로 설명하면
10차원 공간 중에서 다른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는 4차원 ‘브레인’과 중력만 전파될 수 있는 6차원 ‘벌크’로 나뉜다. 실제로 4차원 이상의 시공간이 있다면, mm 단위 아래의 작은 크기에서는 다른 중력상수 값이 관측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세계의 수많은 중력 연구자들은 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트뵈슈 실험 장치를 개선해 가며 연구한 결과 정밀도가 0.1mm 단위까지 낮아졌음에도 중력상수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은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지상은 물론 우주 공간에서도 측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별개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가속기를 이용해 입자와 반입자의 충돌을 통한 다차원 공간 검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역시 아무런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반대로 태양계보다 큰 공간을 살펴보자. 시선을 태양계 밖으로 돌리면 다른 차원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우선 탐사선 파이어니어의 이상 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파이어니어는 1970년대 초에 발사된 이래 현재 태양계 밖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 이
탐사선에서 보내는 신호를 이용하면 이들이 태양계 밖에서 감속되는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치가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예측한 가속도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부터 대략 20여 년간 관측한 결과 2000년대 중반에는 파이어니어의 이상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태양계 밖에서는 시공간이 다르게 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2년 이후 위성의 열복사 에너지가 태양을 향한 면과
반대쪽 면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차이를 보정하면 중력 이상이 오차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태양계 주변을 넘어 은하 규모로 가면 더욱 뚜렷한 중력 이상 징후를 볼 수 있다. 은하의 회전 속도가 이론과 달랐던 것이다.

여기서 과거 르 베리에의 암흑행성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은하의 회전 속도 이상을 설명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인 ‘암흑물질’을 도입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중력에 대한 오랜 관점을 수정해야 하는 순간에 변화를 거부하고 존재하지 않은 암흑행성을 도입했다가 실패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정뉴턴역학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암흑물질이 없어도 은하 규모에서 중력을 수정해 은하 외부의 회전 속도 이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과학동아 2013년 1월호 기획 ‘당신의 뉴턴은 안녕하십니까’ 참조). 그러나 이 수정 이론은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우주의 어떤 부분에서 오는 배경복사의 파장이 다른 부분과 약간 다른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암흑물질 이론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주 거대구조 연구를 통해 뜨거운 암흑물질보다는 차가운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 차가운 암흑물질 이론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차가운 암흑물질은 은하단 안에 수백,
수천 개의 위성 구조물을 만드는데, 관측 결과는 겨우 수십 개뿐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아직 관측되지 않은 구조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더 정밀한 관측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차가운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암흑물질은 수정중력이론을 목전에 두고 저지르는 인류의 두 번째 실수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전체 우주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력 이상 현상은 바로 우주 가속팽창이다.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던 이 발견은 가장 뚜렷한 중력 이상 현상의 징후다. 진공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물질을 도입해 설명하고는 있지만, 상당히 많은 과학자들이 서서히 중력 이상 현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물리학자 칼 브랜스와 로버트 디크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는 정도가 우주 어느 곳에서나 똑같다는 가정보다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일반적이라는 주장이다. 브랜스-디크 이론대로라면, 태양계 안에서 검증된 중력 이론도 태양계 밖에서는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

수정중력이론을 도입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새로운 이론은 태양계 안에서 0.01%의 정밀도로 검증된 일반상대성이론을 바꾸지 않은 채 거대한 규모에서만 선택적으로 중력을 수정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중력에 질량을 도입한다든지, 혹은 숨은 힘을 도입해 거대 규모에서 중력을 수정할 수 있다. 이 수정중력 현상을 관측하는 것은 현재 세계 우주론자들의 주요 관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05년경부터는 우주의 거대구조를 이용해 수정 중력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그동안의 노력이 모여 미국 UC버클리, 스위스 취리히대, 영국 포츠머스대, 그리고 한국천문연구원이 중심이 돼 최적화된 방법론을 제안했다. 거대구조에 있는 물질의 양과 공간이 휜 정도를 따로 측정하면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우주에서 물질의 양을 측정한다.

우주에 은하가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간이 휜 정도는 빛이 휘는 정도를 측정해 알아낸다. 그러면 둘을 비교해 아인슈타인이 우주 어디서나 똑같다고 가정했던 중력상수가 정말 우주 규모에서도 변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계획은 2018년부터 실제 관측을 시작할 수 있도록 미국에 제안서가 들어간 상태다. 2013년 중반경에는 최종 결정이 날 전망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이 관측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를 담당할 전문 우주론 연구 그룹을 만들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중력 이론의 문을 우리가 직접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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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중력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운명은?
PART 2. 데카르트의 악몽, 아인슈타인의 해몽
PART 3. 중력이 수상하다
PART 4. 반중력, 인공중력은 가능할까
PART 5. 우주에 퍼지는 시공간의 물결, 중력파

글 : 글 송용선 기자
과학동아 2013년 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