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륨 부족하면 첨단 연구도 STOP! 헬륨 위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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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륨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목소리를 변하게 하는 가스를 떠올린다. 풍선이나 비행선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헬륨이 IT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광섬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광섬유는 2000℃ 이상의 고온으로 달군 뜨거운 유리를 매우 가늘게 당겨서 만든다. 그런데 대기 중에서 이 작업을 하면 뜨거워진 유리가 좀처럼 식지 않아 녹은 상태에서 서로 붙어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활약하는 것이 바로 헬륨이다.

 


헬륨은 다른 기체에 비해서 열교환율이 좋다. 그래서 뜨거운 물체에 헬륨 기체를 흐르게 하면 아주 빨리 열을 빼앗아 식힌다. 헬륨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광섬유를 냉각하는 것이다. 

헬륨은 반도체 산업이나 디스플레이 제작에도 쓰인다. 대형 선박을 만들 때 쓰는 고급 용접의  분위기가스 도 헬륨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기공명분석장치(NMR)나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도헬륨은 꼭 필요하다. 분석신호의 감도를 높이거나 영상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초전도자석을 사용하는데, 초전도자석은 극저온이 돼야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상태가 된다. 이때 초전도자석을 냉각하는 것이 액체헬륨이다. 보통 MRI를 처음 냉각할 때는 수천 L의 액체 헬륨이 필요하다. 장치에 따라서 양은 다르지만 그 뒤로도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수백 L씩 보충해야 한다.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의료용 헬륨의 수요도늘어나고 있다.

이 밖에도 헬륨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기상 및 천체관측용 기구, 군사용 정찰기구 등에 쓰이고 있다. 심해잠수용 산소통에 들어 있는 기체는 헬륨과 산소를 혼합한 것이다. 헬륨은 분자가 작아 매우 작은 구멍도 통과할 수 있어 배관이 새는지 알아내는 비파괴 검사에도 쓰인다. 행사나 이벤트에서 날려 보내는 알록달록하고 예쁜 풍선에 들어가는 헬륨의 수요도 의외로 많다. 헬륨은 불에 타는 수소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우주에서 두 번째로 많지만 지구에는 거의 없어

헬륨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868년 프랑스의 피에르 쟝센과 영국의 노먼 로키어는 그 해 일식 때 관찰한 태양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미지의 원소를 발견했다. 헬륨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말 헬리오스(Helios)에서 나왔다. 1895년에는 영국의 힐리엄 램지 경이 우란 광석에서 헬륨을 추출해 지구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액체 헬륨은 1908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린 온네스가 기체 헬륨을 영하 272.15℃ 이하로 냉각해 처음 만들었다.

헬륨은 일반적인 물질과 달리 기체, 액체, 고체가 함께 존재하는 3중점이 없다. 영하 271℃ 아래에서는 점성이 거의 없으며, 열전도도는 구리보다 수백 배나 뛰어나다. 이와 같은 상태를 초유동성(superfluidity)이라고부르며, 영하 271℃ 아래의 헬륨을 ‘초유동 헬륨’(superfluid helium)이라고 부른다. 또한 헬륨은 25기압 이상의 압력을 가하지 않는 한 절대 온도까지 액체로 존재한다.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원소로 은하계 전체의 24%를 차지한다. 태양과 가스 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들도 수소와 헬륨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헬륨은 매우 가볍고 다른 원소와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는 거의 없다. 현재 지구에서 나오는 헬륨은 대부분 방사성 원소의 핵 붕괴로 인해 생긴 알파 입자가 천연가스에 붙잡힌 상태로 있는 것이다.

천연가스에는 대부분 헬륨이 소량(0.01%~0.1%) 있지만, 0.3%가 넘어야 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헬륨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급원은 미국이다. 미국은 헬륨을 국가전략물자로 취급해 매년 공급량을 조절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헬륨 공급을 줄이고 있다. 가스전의 천연가스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의 주요 가스전 부근의 헬륨공장이 폐쇄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세계의 헬륨 매장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다. 미국 토지관리국(BLM)에 따르면 카타르의 헬륨 매장량이 약 100억m3, 알제리가 약 84억m3다. 미국의 매장량은 약 83억m3다. 이어서 러시아의 매장량이 약 67억m3, 캐나다와 중국은 각각 약 20억m3, 약 10억m3라는 평가다. 현재 유럽연합(EU)에서 유일하게 헬륨을 생산하는 폴란드의 매장량은 3억m3 미만으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채굴이 가능한 매장량의 상황은 다르다. 채굴 가능한 매장량이 가장 큰 곳은 약 35억m3인 미국이다. 그 다음 알제리와 러시아가 순서대로 18.5억m3,16.8m3다. 폴란드의 채굴가능 매장량은 2900만m3 정도에 불과하다. 캐나다와 중국은 상당량의 헬륨 매장량이 있지만 헬륨 공장을 건설해 생산한다는 소식은 없다.

 미국은 2006년 헬륨 생산 시설이 낡아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방침을 바꿨다. 이때까지 공급 조절을 위해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던 액체 헬륨까지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계 헬륨 시장의 공급과 수요는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축하고 있는 액체 헬륨이 바닥을 드러내면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날 전망이다. 비축량이 다 팔릴 2015년경 이후 미국이 세계에 공급하는 헬륨은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카타르, 알제리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헬륨 부족의 여파는 우리나라에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년 사이에 헬륨 수요가 80% 이상 늘어났으며, 아시아에서도 매년 20% 이상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헬륨과 고급 선박 건조에 쓰이는 용접용 헬륨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와 줄어드는 공급이 서로 맞물려 헬륨 위기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헬륨 위기는 첨단 과학의 위기




푸른 하늘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선을 만드는 기체, 목소리를 재미있게 바꿔 주는 기체로만 알던 헬륨이 국가의 전략 물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IT분야에 꼭 필요한 광섬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의료기기인 MRI, 우주 개발의 첨병인 로켓에서 연료 탱크의 압력을 제어하는 데 헬륨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면 헬륨이 현대 사회와 첨단 과학에 얼마나 중요한 물질인지 알 수 있다.

헬륨은 특히 극저온을 다루는 첨단 장비에 많이 쓰인다. 핵융합로에서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장치인 토카막(TOKAMAK)이나 고에너지 입자가속기, 중이온 가속기,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고자기장 자기공명분석장치(NMR)는 초전도자석을 냉각하는 데 헬륨을 쓴다. 극저온 물성 연구, 초전도 양자 간섭소자(SQUID)를 이용한 정밀 분석 등 각종 첨단 분석 장치의 주요 부품을 냉각하거나 극저온을 발생시키는 데도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만약 헬륨이 없다면 이런 분야는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헬륨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헬륨이 어떤 이유로든 전혀 들어오지 않거나 공급이 부족해지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02년 9월 미국 서부해안의 항만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 하역 작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수출이 한 달 정도 멈췄다. 그로 인해 헬륨을 사용하는 아시아 국가의 산업체, 기관, 연구소가 큰 위기에 빠졌다. 심지어 일본은 당장 급한 헬륨을 확보하기 위해 항공기로 가져오거나, 미국 동부에서 파나마운하를 거쳐 공수하는 방법을 고려하기도 했다.

헬륨 공급이 걱정된다면 다른 물질로 대체할 수는 없을까. 현재 극저온 기술이 발달하면서 NMR, MRI 등의 초전도자석을 냉각하는 데 필요한 헬륨의 양은 줄어들고 있다. 극저온 소형 냉동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액체 헬륨의 증발을 억제하는 방법도 많이 보급돼 있다. 액체 헬륨을 사용하지 않고 초전도자석을 냉각시키는 방법도 있다. 액체 질소로 만들 수 있는 영하 196℃ 부근에서 초전도 상태로 변하는 물질을 이용한 고온 초전도자석도 개발 중이다. 이처럼 극저온 기술 분야에서도 값비싼 액체 헬륨의 사용을 줄이려는 연구가 이미 시작됐다. 광섬유 제작이나 반도체, 고급 용접에 쓰이는 헬륨은 아직 대체할 좋은 방법이 없다.

헬륨이 부족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용한 가스를 모두 대기 중으로 날려 보낸다는 사실이다. 헬륨을 회수하고 액체로 만들어 재사용하는 것보다 새로 구입하는 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한다면 사용한 헬륨을 회수해 쓰는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헬륨 위기에 국가적인 대처가 필요해

산업용으로 희소가치가 높은 헬륨은 에어리퀴드(Air Liquide), 프렉스에어(Praxair), 에어프로덕(AirProducts), 린데(Linde) 등 세계적인 회사가 공급권을 갖고 있다. 헬륨을 수입하는 나라는 주요 천연가스 생산국이나 헬륨 생산국 및 주요 헬륨 공급사와 협의해 자국 기업이 헬륨 생산에 참여하거나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돕는 방식으로 안정된 헬륨 공급을 꾀하고 있다. 헬륨 수급은 공급자와 수요업체 사이의 계약과 거래형태, 결제조건, 운송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며 이에 따라 공급량과 가격이 영향을 받는다. 대체로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3~5년 또는 그보다 오랜 기간 동안의 물량을 예측해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계획하는 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헬륨 수급 정책과 헬륨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을 세우고 있지 않다. 헬륨은 첨단 과학 및 산업에 꼭 필요한 원자재인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헬륨을 대체할 물질을 개발하거나 우주에 널린 헬륨을 지구로 가져올 방법이 없다.

먼저 세계의 헬륨 매장량을 정밀하게 조사해 경제성 있는 천연가스전을 공동으로 개발해야 한다. 헬륨을 공급받는 곳도 미국만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로 넓혀야 한다. 국내 기업이 천연가스가 많은 나라에 헬륨 정제설비를 직접 설치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헬륨을 공급받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또한 국내외의 헬륨 수급 상황을 파악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안정한 해외 시장에 대비해 상당량의 헬륨을 비축할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에 비축하기가 어려울 경우 다른 나라와 공동으로 비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제적인 면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사용한 헬륨을 회수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범지구적인 자원 절약에 동참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곧 닥쳐 올 헬륨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김동락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물성과학연구부장 기자 dlkim@kbsi.re.kr
과학동아 2010년 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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