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높이는 공간 만드는 신경건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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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 있는 모든 학교 교실들은 다 똑같이 생겼을까. 사각형으로 생긴 교실의 맨 앞엔 커다란 칠판이 붙어 있고, 그 뒤로 책상들과 의자들이 차례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뒷벽엔 영락없이 시간표와 학습 자료가 붙어 있고, 출입문이 앞뒤로 두 개씩 나 있다. 이렇게 생긴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면 집중이 잘되고 학습 효율이 높아지는 걸까.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교실에서 학생들이 대여섯 명씩 둘러앉아 공부하면 수업 효율은 과연 어떻게 될까. 선생님이 교실 한가운데서 가르치고 칠판 색깔이 분홍색이라면 학생들이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몇 년 전까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건축 분야에서이런 식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이슈지만, 그 해답은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사고과정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한 건축가들이 이런 질문을 제기 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고, 건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그러나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신경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건축을 위한 신경과학 아카데미’가 생기면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 이른바‘신경건축(neuroarchitecture)’이란 분야가 탄생한 것이다.

천장 높은 성당에서 떠오른 소아마비 퇴치법

거의 모든 사람이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는 오늘날, 신경건축 분야만큼 중요한 분야도 드물다. 집에서 자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직장에서 일하며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인간들의 사고가 공간으로부터 어떻게 지배받는가를 알아야 건축가들도 적절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경건축’이란 분야가 탄생했을까. 왜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를중심으로 신경건축 분야가 관심을 끌게 됐을까. 그 시작은 20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면역학자 조너스 솔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 어린이를‘척수성 소아마비’로부터 해방시킨 사람이다. 척수성 소아마비란 어린이의 척수신경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범해 수족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전염병인데, 20세기 초까지 치사율이 5%가 넘을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었다.

조너스 솔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던 1955년 무렵의 일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밤12시까지 실험을 하고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논문을 뒤적이며 수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않고 연구에 매진했지만,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폴리오바이러스의 활동이 너무 강력해 백신으로 억제할 방안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연구실을 나와 2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니, 해결책도 안 나오고 삶도 황폐해지는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13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들을 방문하면서 몸과 마음에 쌓였던 피로를 날려버렸다.

그러던 중 솔크 박사는 불현듯 원숭이의 신장 세포를 이용하면 폴리오바이러스의 활동을 줄일 수 있다는 방안을 떠올렸다. 그는 원숭이의 신장 세포에서 배양한 폴리오바이러스 세 종류를 포르말린으로 불활성화시켜 몸에 주사하는 사(死)백신을 개발했다. 소아마비의 위험에서 어린이들을 구한 아이디어가 뜻밖에도 오래된 성당에서 떠 오른 것이다.




그는 바로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물실험을 통해 테스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결국 그는 이 아이디어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여러 제약회사들은 그에게 거액의 제안을 했지만, 솔크 박사는“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소아마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며 백신 아이디어를 제약회사에 팔지 않고 값싸게 투여받을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 제공했다.

솔크 박사는 수많은 기부금을 받아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생명과학 연구소를 지었다. 그는 당시 최고 건축가인 예일대 건축학과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는 칸 교수에게“수년간 씨름하던 소아마비 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에서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13세기 고성당 안에서 불현듯 떠올랐다”며“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개 집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의 실내 천장 높이는 2.4m 정도이며, 높은 경우라도 2.7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솔크 박사는 칸 교수에게 보통 천장 높이보다 더 높은, 3m짜리 천장을 부탁했다. 결국 솔크 연구소에 있는 모든 연구실의 천장은 높이가 3m나 되도록 건설됐고, 이 연구소는 세상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연구소 중 하나가 됐다.

솔크 연구소는 현재 700여 명의 연구원과 300여 명의 스태프가 상주하는 작은 연구소지만,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하고 수십 명의 수상자가 거쳐 간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 연구기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곳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선 오랫동안‘그들만의 미신’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있을 때보다솔크 연구실에서 연구를 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다른 데보다 높은 천장’을 들었다.




집중력 향상에 낮은 천장, 치매 환자 거주 공간에 운동시설

과연 천장의 높이가 연구원들의 창의적인 발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국의 신경과학자들과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는 경영학자들은 실제로 천장 높이가 인간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는 천장 높이가 각각 2.4m, 2.7m, 3m인 세 건물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창의적인 문제(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단순하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연산 문제)를 풀도록 했다. 그리고 천장 높이에 따라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풀어낸 결과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천장 높이가 3m나 되는 방 안에서 문제를 풀 때 상대적으로 천장이 낮은 건물에서 문제를 풀 때보다 창의적인 문제를 두 배 이상 더 잘 풀었으며, 2.4m 높이에선 창의적인 문제는 잘 못 풀었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더 잘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장이 높아지면 창의적인 사고가 활성화되고 천장이 낮아지면 집중을 더 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2008년 8월 국제학술지‘소비자 행동 저널’에 실린 이 연구결과는 천장의 높이가 사람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넘어, 건축물이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인지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였다.



신경건축 분야에서 과학자들이 탐구하는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치매 환자가 요양하는곳은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물건이 배치돼야 환자의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 초등학교 교실은 어떻게 지어야 학생들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창의적인 사고가 배양될 것인지를 연구한다. 예를 들면 치매 환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포커게임 테이블이나 오락기계를 놓기보다 운동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인지기능 발달에 효과적이다. 물론 환자가 물건을 둔 장소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침대 가까운 곳에 물건을 모을 수 있도록 방을 설계하는 일도 중요하다.

직장은 어떻게 지어야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이 늘고 정보전달이 원활해져 매출액이 늘고영업이 수월해질지, 또 우울증 환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긍정적인 사고가 확산되려면 어떻게 실내공간을 구성해야 할지도 신경건축 분야의 중요한 연구 주제다. TV 같은 오락 장치가 우울증 치료에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거실에 TV를 배치하기보다 다른 환자와 자주 소통할 수 있도록 방을 배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사례 보고도 있다.아직까지 신경건축 분야는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 결과가 많지 않다. 그래서 할일이 많은 도전적인 분야다. ‘세상의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경과학과 건축학이 만난 신경건축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융합적인 연구의 꽃을 피우길 기대해 본다.

글 :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기자 sjeong3@gmail.com
과학동아 2010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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