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적이지 않은 평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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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참 평면적이야!’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전 매일 듣고 산답니다. 제가 바로 ‘평면이’거든요. 당연한 말인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평면적이라는 표현이 일상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죠. 보통 생각이 너무 단순하거나 어떤 일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보고 ‘평면적’이라고 하잖아요? 그건 ‘평면은 밋밋하다’는 편견 때문이에요. 저는 억울해요! 제가 얼마나 다양한 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진짜 제 모습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걸요?

평면 세상을 설명하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평면은 종이처럼 매끈하고 평평하게 생겼죠. 하지만 수학의 세계에선 이런 모습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에요. 정의에 따라, 전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갖는답니다. 가끔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니까요


제가 어떤 모습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은 유클리드였어요. 유클리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교과서 <원론>을 쓴 수학자이기도 하죠. 이 책에서 유클리드는 간단한 정의로 기하학을 설명한답니다. <원론> 제1권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의가 담겨 있는데, 저에 대한 설명도 여기에 들어 있어요! ‘평면은 직선이 고르게 펼쳐진 면이다.’ 지금도 익숙한 평면의 정의죠. 유클리드는 아예 저를 만드는 조건까지 못 박아놨어요.

❶ 한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세 점
❷ 한 직선과 그 위에 있지 않은 한 점
❸ 서로 만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직선
❹ 평행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직선


여러분도 평면이란 무엇일지를 생각하면, 이런 조건부터 떠올릴 거예요. 그만큼 유클리드의 설명은 논리적이고 직관적이죠. 평면에서 시작한 유클리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딱딱한 3차원 공간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심심해졌어요. 이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렇게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심장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해석기하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였어요.

데카르트는 제 얼굴 곳곳에 숫자를 쓰더니 좌표라고 불렀어요. 숫자와 식을 쓰니 굳이 저를 말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사라졌어요. 그림을 그려가며 풀던 도형문제도 간단한 계산문제가 됐죠.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를 해석기하학이라고해요. 정확한 지도를 그리는 일에서 날아가는 대포알의 궤적을 구하는 일까지, 좌표평면의 활약은 눈부셨어요.

자유로워지자!

실은 전 유클리드가 정한 제 모습이 좀 불편했어요. 항상 똑같은 자세여야 했고 지켜야 할 조건도 너무 많았거든요. 하지만 유클리드 공간은 너무 당연해 보였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유클리드 공간 개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죠.

사실 완벽할 것만 같은 유클리드 기하학에도 약점은 있었어요. 바로 ‘평면 위에 위치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단 하나뿐’이라는 ‘평행선 공리’였죠. 한 번만 읽어도 이해가 가는 다른 공리와는 달리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다른 공리로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어요.

마침내 수학자들은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이 꼭 하나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평면이 구부러지면 되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평행선 공리’ 하나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기하학=유클리드’라는 등식이 깨져버린 거에요. 자신만의 기하학으로 세상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찾아온 거죠.

변하지 않는 모습이 중요하다

아예 절 추상적인 기호로만 표현할 수도 있게 됐어요. 여기엔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의 도움이 컸어요. 클라인은 ‘변화를 거쳐도 그대로인 성질’이 기하학의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자를 비추거나 비틀어도 그대로 남아 있는 특징이 도형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거죠. 덕분에 전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됐어요. 예를 들어 위상평면은 거리도 원점도 없는 무한한 고무판과 같아요. 마음껏 잡아당기고 비틀어도 똑같은 평면이에요. 저는 유클리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됐답니다.

제가 자유를 얻은 덕분에 우주도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친구인 수학자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하학을 만나게 됐어요. 아무도 딱딱한 뉴턴의 공간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벗어나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생각해냈죠. 아인슈타인이 자유로운 평면의 모습을 몰랐다면, 여러분도 인터스텔라를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평면 세상을 그리다

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화가예요. 마치 화장을 하듯이, 화가는 색을 칠하고 선을 그어 밋밋한 평면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어 준답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평면적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진짜 보이는 모습 대신, 자신이 믿거나 보고 싶은 대상을 상상해서 그렸기 때문이죠. 고대의 이집트 벽화나 오래된 성당의 성화를 떠올려 보세요. 한 눈에 봐도 진짜 풍경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시간이 지나 원근법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원근법은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 위에 나타내는 기법이에요. 원근법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3차원을 2차원에 정확히 옮기진 못했어요. 그러다 수학을 만나면서 원근법의 운명이 180° 달라졌어요.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물체에서 나온 빛이 눈에 들어는 경로 중간에 평면을 놓으면 3차원 구조가 그대로 맺힌다는 원리를 깨달았어요. 브루넬레스키는 기하학을 이용해 거리에 따른 비례를 정확히 계산해냈어요. 이것이 바로 투시원근법이에요.

브루넬레스키는 친구인 화가 마사초에게 이 비법을 알려 줬어요. 마사초는 투시원근법을 이용해 프레스코화 <성삼위일체>를 그렸어요.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듯한 풍경을 담은 작품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어요. 그림은 ‘평면적’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이어서 원근법은 기하학에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었어요. 유클리드 기하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수학자들은 시선에 따라 그림이 완전히 달라지는 원근법의 원리에 주목했어요. 그림자가 수학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눈 앞에 보이는 성질보다, 그림자 속에도 똑같이 남아있는 성질이 도형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이처럼 도형에 그림자를 만들어, 그 특징을 연구하는 기하학을 사영기하학이라 해요. 이제 수학자들은 다양한 시선에서 기하학을 바라보게 됐어요.사영기하학은 수학자들이 유클리드 기하학에 갇힌 생각을 깨치는 데 큰 영향을 줬답니다.
 
평면만의 매력을 찾아라

이제 모든 그림은 원근법을 따라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점점 심심해졌어요. 매일 비슷비슷한 옷만 입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문득 유클리드 기하학이 생각났어요. 유클리드 기하학에 갇혀 있던 평면처럼, 그림도 원근법에 얽매여 진짜 세상을 담아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죠.

1907년 어느 날 괴상한 그림이 나타났어요. 여자들의 모습처럼 보이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장면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얼굴은 정면을 보는데 몸은 옆으로 틀어져 있었고, 아예 얼굴과 몸통 전체가 도형처럼 생긴 사람도 있었죠. 신선하고 강렬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린이가 끄적인 낙서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더 많았어요.

그림의 이름은 <아비뇽의 처녀들>, 화가의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에요. <아비뇽의 처녀들>은 미술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만해요. 상대성이론이 유클리드 공간에 가려져 있던 우주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아비뇽의 처녀들>은 원근법으로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진짜 모습을 밝혀줬어요.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이제까지 원근법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여 준다고 하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우리가 마주치는 일상은 유클리드 공간만 있어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유클리드 공간이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죠. 진짜 세상은 위상공간처럼 훨씬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니까요. 원근법도 마찬가지예요.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은 오직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에요. 왜곡과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죠.

<아비뇽의 처녀들>에는 다양한 시선이 섞여 있어요. 얼굴을 보면 정면에서 그린 것같지만, 몸을 보면 옆에서 그린 듯하죠. 도대체 어딜 보고 그렸는지 감이 안 잡히는 여인도 있어요.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볼 수 없던 세상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요. 이렇듯 물체의 입체적인 모습을 다양한 시선에서 그리는 입장을 큐비즘이라고 한답니다.

큐비즘 덕분에 전 오래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저는 3차원이나 4차원같이 높은 차원의 친구들을 보면 제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죠. 그런데 큐비즘은 저만의 매력을 알려 줬어요. 굳이 3차원을 따라하지 않아도, 제 모습 그대로 충분히 복잡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이젠 어떤 고차원을 만나도 자신이 있어요!

평면 미래를 만들다

이제 사람들은 더 빠른 컴퓨터보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컴퓨터를 원해요. 그 꿈을 이뤄 줄 수 있는 주인공이 바로 2차원물질이에요. 2차원물질이 만들 미래를 살펴볼까요?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그래핀은 얇은 탄소 분자층을 말해요. 연필심에 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얇게 떨어져나오는 검은 평면이 바로 그래핀이죠. 이렇게 쉽게 그래핀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탄소 사이의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래핀 한 층을 이루는 탄소는 서로 공유결합으로 연결돼 있어요. 공유결합은 아주 강하기 때문에 그래핀은 쉽게 찢어지지 않고 튼튼해요. 반면 그래핀과 그래핀 사이는 공유결합보다 훨씬 약한 반데르발스힘으로 헐겁게 묶여 있어요. 그래서 종이처럼 얇게 떼어내기가 쉽죠.

이렇게 얇은 분자층으로 분리되는 물질을 2차원물질이라고 불러요. 분자층의 두께가 수 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정도로 아주 얇기 때문에 마치 평면처럼 보이죠. 수북히 쌓여 있는 종이 더미에서 종이 한두 장을 떼어낸다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보이는지 알 수 있어요.

사실 그동안 2차원물질은 별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반도체에 쓰이는 실리콘 같은 3차원물질이 워낙 훌륭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어요. 드디어 2차원 물질만의 장점이 필요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죠.

투명하고 휘는 물질이 필요해

종이처럼 둘둘 말아다니는 모니터나 옷처럼 입고 다니는 컴퓨터, 그리고 구글글래스처럼 투명한 스마트폰을 만들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할까요? 휘어지거나 잡아당겨도 튼튼해야 하고 투명하다면 더 좋을 거예요. 하지만 실리콘 같은 딱딱한 3차원물질로는 이런 성질을 얻기가 힘들어요. 힘을 주면 쉽게 부러져 버리고 투명하기엔 너무 두껍기 때문이죠.

2차원물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우선 얇지만 튼튼해요. 분자들이 강력한 공유결합으로 이어져 있어 강철만큼 강하지만 고무줄처럼 탄력있어요. 빛이 수 nm 정도는 쉽게 통과하기 때문에 투명하기까지 해요, 더 빠른 컴퓨터보다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이 필요한 시대에는 2차원물질이 안성맞춤인거죠.

샌드위치처럼 겹치면 달라진다

과학자들이 2차원물질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종구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에요. 이종구조란 샌드위치처럼 서로 다른 물질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구조예요. 2차원물질은 표면이 깨끗해서 이종구조를 만들기 좋아요. 실리콘은 결합력이 강해 다른 물체와 겹쳐 놓으면 흠집이 나기가 쉬워요. 하지만 2차원물질은 층 사이가 약한 반데르발스힘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물질과 겹쳐도 쉽게 붙고 상처도 잘 생기지 않아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면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서로 다른 2차원물질을 겹쳐놓으면 그 표면에서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답니다. 반도체와 부도체를 차례로 쌓은 구조에서 초전도현상이 발견되기도 해요. LED 같은 반도체 소자 대부분도 이종구조로 이뤄져 있어요. 그만큼 2차원물질 이종구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답니다.

예전의 전 자신감이 없었어요. 단순하고 밋밋한 제 모습과는 달리, 뭔가 있어보이는 3차원이나 4차원 같은 고차원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기하학을 만나면서, 저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저도 어떤 복잡한 차원보다 멋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큐비즘도 큰 도움이 됐어요.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 아름답다는 걸 알려 줬죠. 요즘엔 여기저기서 절 찾는 과학자들이 많아서 바쁘답니다. 이제 곧 평면으로 만든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아직도 제가 평면적으로만 보이나요?

글 : 이한기 기자 dryhead@donga.com
일러스트 : 허경미
수학동아 2015년 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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