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은 혁명기에 빼앗겼던 특권을 되찾았다. 그런 시절이었다. 농촌이든 도시든 평민은 모두 찢어지게 가난하고 비참했다. 난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배추흰나비와 큰 멋쟁이나비가 배추꽃에 이끌리듯 꽃과 곤충, 쐐기풀에 끌렸다. 하지만 그런 건 입을 채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
일상에서 쓰는 보통 언어가 아닌 완전한 한문으로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민 수학’임에도 현대의 보통 일본인은 그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산가쿠를 연구하는 학자조차도 어떤 문제는 답이나 풀이 과정, 그림 등을 보고 문제의 뜻을 거꾸로 찾아낼 정도로 문장이 모호한 ...
생기면서 죽는다. 1348년부터 300년간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결국 평민과 노예가 심각하게 줄면서 계급제도(봉건제도)도 사라졌다.탄저병생물학테러 무기가 될 수 있는 전염병탄저균피부나 호흡기로 전염되며,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다가 폐에 피가 고이면서 죽는다. ...
귀족과 왕의 전유물이었다. 평민에게 쌀은 아주 귀한 작물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평민들은 조나 보리를 먹었고 귀족은 쌀을 먹었다. 밥을 지을 도구도 모자랐다. 밥을 지으려면 높은 온도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쇠솥이 필요한데 일반 백성들에게 쇠솥역시 귀한 물건이었다. 쇠솥이 널리 보급되기 ...
이탕 장은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려운 문제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된 직장도 없는 ‘평민 수학자’였다. 끈질긴 노력의 결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이탕 장은 수학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각광을 받았다.협동의 위력, 그리고 제임스 메이나드이탕 장의 증명 이후에 일어난 수학계의 현상 또한 ...
있다. 혁명의 한가운데는 단두대로 상징되는 처절한 보복과 처형이 자리잡고 있었다. 평민의 가난을 자신이 키우던 동물의 안위보다 하찮게 여겼던 귀족과 왕족은 즉결처분의 대상이었다. 서로를 ‘시민동지’로 부르던 같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밀고와 약식재판, 광기 어린 처형이 끊이지 않았다. ...
명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왕족이나 귀족도 죽음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없었다. 평민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최근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인해 여러 국가에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촉발됐다고 야단이다. 우리나라도 선거에서 SN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현재 ...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언덕에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이 자리를 잡았고, 평민이나 노예는 평지에 살았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위치한 평지는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교류하는 장소가 됐다. 그중 팔라티노 언덕 옆의 평지가 포로 로마노다. 토론의 장소란 뜻이다.팔라티노 언덕을 다 돌고 포로 ...
섰다. 가만 보니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새였다. 평소 입던 옷은 온데 간데없고, 남루한 평민의 옷차림이었다. 고운 꽃신도 벗어던진 채 허름한 짚신을 신고 있었다. 지오도 공주와 함께 궁궐을 나간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함께 저잣거리를 구경할 상상을 하니 오히려 기분이 들떴다.“그런데 ...
이시필이 지은 요리책 ‘소문사설’에는 순창고추장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일반 평민과 달리 임금은 대하와 전복, 홍합을 넣어 맛과 향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은 고추장을 먹었다고 한다.고추를 이용한 요리가 기록된 문헌도 있다. 세조 6년인 1460년에 적힌 ‘식료찬요’에는 조선시대 임금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