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 미래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가 되면 여러분도 러셀처럼 삶을 회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겠다고요 ...
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8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유럽의회에 참석한 러셀의 모습이에요. 유럽 전역에서 지식인 750명이 모여 유럽의 발전을 논의했어요. ● 사유의 훈련장으로서 수학의 가치 ● 2023년 한국.“이것으로 북토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
그중 대부분은 집으로 살아 돌아 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러셀로 돌아옵니다. 용어 설명*중우정치 : 다수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려 이뤄지는 정치.*이그노라비무스 :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이그노라무스 에트 ...
눈을 떴으며, 수학이 아닌 세계를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듯이, 러셀 또한 수식으로 적을 수 없는 것에서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 깊이 진로를 고민하다 ◆ 2023년 한국.띵ㅡ. 띵ㅡ. 비행기에서 울리는 좌석벨트 알림음에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정면의 모니터를 ...
만약 1858년 동남아시아를 탐사하며 독자적으로 진화론을 발전시킨 자연사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논문이 다윈에게 도착하지 않았다면, 종의 기원이 나오기까지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소심한 이미지와 달리 다윈은 그의 진화와 자연선택에 관한 이론을 숨기지 않았고, ...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포로수용소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사유의 핵심을 정리해 러셀에게 편지로 보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은 둘은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만나 이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약속했습니다. 1년 후 둘은 네덜란드에서 만났습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눈 후 그들은 곧바로 ...
‘수학 기초론’ 강연을 맡지 않겠냐는 제안을 대신 수락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가을, 러셀은 다시 케임브리지대로 돌아갑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학생을 여럿 만나겠지요. 그중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1848~1925),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 영국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대표적이지요. 끝내 미국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에 의해 그 시도는 불가능하다고 판별이 났어요. 모순 없는 체계에는 증명하지 못하는 명제가 있다는 거지요. 이는 수학이 계속해서 새롭게 ...
♣ 그리스 신화가 일깨운 것 ♣ 버트런드 러셀은 189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이때 러셀의 입학 ... 의기투합해 모순이 없는 수학의 토대를 새로 구축하는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훗날 러셀의 역작이 될 의 구상이 시작됐습니다 ...
시간을 보냈어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10년에 걸쳐 러셀과 를 써 수리논리학의 기초를 확립했어요. 밤을 지새우게 한 집합론 여러분은 공부를 하다가 ‘이 지식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은 제쳐 두고, 단순히 ‘이 지식을 알게 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