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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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 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꼭 읽어야 할 단편소설’ 같은 필독서 순위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이무영의 소설 ‘제1과 제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학에서는 흙내, 즉 흙냄새는 고향에 대한 향수, 인간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다면 흙냄새가 진짜 있을까.

 

흙 자체에는 아무런 냄새가 없다. 다만 흙 속에 사는 지렁이나 미생물들이 흙 속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흙냄새라고 부르는 유기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화합물이 ‘지오스민’이다. 사람의 후각세포는 극미량의 지오스민도 검출할 수 있을 만큼 이 냄새에는 민감하다. 흙 자체에는 냄새가 없지만, 사람이 흙냄새를 인지하는 과학적인 이유다.

 

소설 속에 등장한 구절이나 상황, 내용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쉬운 내용을 어렵게 이야기하는 소설의 세계와,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하는 과학의 세계의 교집합 쯤 된다고나 할까.

 

저자인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분자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2012년 ‘시에게 과학을 묻다’라는 책을 통해 시 속 과학용어들을 찾아낸 데 이어, 이번에는 단편소설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단편소설 50편을 선별해, 그 속에 숨은 과학적 지식을 끄집어냈다. 굳이 비유하자면, 웃자고 쓴 소설을 죽자고 과학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은 적절한 ‘밀당’이다. 가령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는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감정이 시작되고 끝난 개울가를 얘기하며 독자를 문학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그 뒤 이런 물이 우주 역사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하면서 한순간에 소설의 감동을 밀어내고 과학의 세계로 들어간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는 김 첨지가 설렁탕도 먹지 못한 채 뻣뻣하게 굳어버린 아내의 몸 위로 눈물을 흘릴 때 체온 하강, 사체 색변화, 세치 경직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과정을 설명한다.

 

‘추억 팔이’도 또 다른 매력 요소다. 저자는 책에 포함시킬 소설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주제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고려해 이질감 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뽑았다.

 

책은 물, 흙, 죽음, 기계화, 병원과 의료라는 5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역사의 어느 한쪽에 기록된 일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우리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소재다.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문학시간 이후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단편 소설을 다시 떠올리다보면 그 시절의 감성에 젖어든다. 추억과 함께 오는 과학적 지식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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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15초 마다 거짓말을 하는 남자’.


2016년 11월 8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외신들은 일제히 ‘트럼프 쇼크’를 키워드로 기사를 쏟아냈다. 한 국가의 대통령 선출 소식에 ‘쇼크’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된 건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일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 윤리 강령 중 ‘골드워터 규칙’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이 직접 대면해 검사하지 않은 특정 공인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공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만약 수십 억 인구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력을 지닌 공인이 명백하게 위험한 정신장애의 징후를 보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환자가 자신과 타인을 해칠 가능성이 심각하게 높은 위급한 상황에서 이 규칙은 깨진다.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반년 뒤, 미국 예일대에서 ‘우리의 직업적 책임에는 경고의 의무도 포함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 시발점을 둔다. 학회는 골드워터 규칙을 깼다. 대신 30여 년간 트럼프가 쏟아낸 기록물을 분석해 전문성을 확보했다. 동영상 수백 시간, 인터뷰 수천 건, 트위터 멘션수만 건이 분석에 활용됐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과 전문의 27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분석한 572쪽짜리 진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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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예슬 기자
과학동아 2018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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