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 생체신호만 포착 세계 최고의 전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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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로장이’입니다.”

 

이정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회로장이’는 전자회로 전문가를 빗댄 표현이다. 그는 이 분야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고체회로학술대회(ISSCC)’에서 3년 연속 논문을 발표한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2월에는 연구실의 이세환 박사과정 연구원이 이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한 성과를 ISSCC에서 발표했다.

 

잡음 없이 생체신호 측정

 

두 사람의 연구 주제는 생체 내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전자칩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미 생체 신호로 로봇팔을 조종하는 ‘바이오닉암(Bionic Arm)’에 이런 전자칩이 쓰이고 있지만, 기존 전자칩은 감도가 낮고 잡음에 약해서 오류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교수는 “방 안에 있는 전자기기의 전원에서 나오는 신호만 해도 생체 전기신호의 약 1만 배 이상으로, 매우 큰 방해 요소”라며 “잡음이 있어도 원하는 생체신호만 정밀하게 측정하는 전자칩을 만드는 일이 목표”라고 말했다.

 

잡음과 섞여 있는 생체 전기신호는 마치 빠르게 달리고 있는 차량(잡음)에 타고 있는 사람(생체 전기신호)에 비유할 수 있다. 관측자가 차 속에 탄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같은 속도로 차를 타고 달려야 한다. 연구팀은 이런 원리를 적용한 전자회로를 고안했다. 잡음과생체 전기신호를 측정한 뒤 잡음과 같은 형태의 전기 신호를 내부적으로 발생시키고 두 신호를 비교해 생체신호만 정밀하게 걸러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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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배터리였다. 전자칩을 작게 만들려면 배터리 크기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구동에 필요한 전력 소모를 최소로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궁극적인 목표인 전자칩을 생체에 안전하게 삽입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칩의 크기가 수 mm2 수준으로 작아야 하고, 이때 나오는 열도 최소화해야 한다.

 

실험쥐 뇌에서 나오는 신경신호 측정 성공


연구팀은 회로 구동에 필요한 전압의 일부를 회로 자체에서 생성해 외부 전력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전자회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터리에서 전력을 공급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반도체 회로 자체의 주파수 특성 등을 이용해 전압을 생성하는 회로 설계 기술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연구팀은 회로의 주파수 특성을 이용해 1.2V의 전압을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회로의 주파수 특성은 저항(R)과 전기용량(C)에 의해 결정되는데, 두 값을 잘 조정해서 안정적인 주파수를 얻었다”며 “이 주파수를 이용해 새로 만든 주파수를 전압으로 변환시키는 회로에서 자체적으로 저잡음 전압을 생성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회로로 실험쥐의 뇌에서 나오는 신경신호를 측정했다. 실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칩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정전기 방전 회로를 제거했더니 실험쥐에 존재하는 정전기의 영향으로 칩이 탔다. 이세환 연구원은 전자칩을 약 40개 제작한 뒤에야 성공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가장 성능이 좋은 기존 생체신호 측정 회로에 비해 10배 이상 정밀하게 신호가 측정됐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기존 전자칩은 신호를 읽는 채널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비례해 잡음에 취약해졌는데,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칩은 여러 신호를 동시에 읽어도 정밀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칩은 가로 2.3mm, 세로 1mm로 면적이 약 2.3mm2에 불과하다. 엄지손톱의 50분의 1쯤 된다. 이 교수는 “앞으로 크기와 발열량을 더 줄여서 인체에 무해하게 삽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 대구=최영준 기자
사진 : 현진
과학동아 2018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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