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솥으로 지은 밥은 왜 맛있을까

밥맛 비결은 땀 배인 주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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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선조들은 밥을 단순히 생명유지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밥이 보약’이란 말도 여기서 왔을까. 상차림이 부실해도 맛깔스런 밥 한사발이면 족하다란 표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네 입맛이 밥맛 하나에 이토록 민감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손맛이 반찬맛을 좌우한다면 밥맛을 결정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벼의 품종도 밥맛을 좌우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따뜻한 밥의 참맛을 설명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비밀의 열쇠는 바로 밥솥에 있다. 무쇠솥은 오랫동안 우리부엌을 지켜온 전통솥이다. 불을 지펴 밥도 짓고 반찬을 볶고 찌는 등 무쇠솥이 안쓰이는 곳은 거의 없다. 특히 무쇠솥 밥맛은 오늘날의 전기밥솥도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경지에 올라있다.

무쇠솥은 우리 겨레와 역사의 영욕을 함께 겪어왔다. 실생활과 가장 밀접했던 것이 바로 솥이었던 것이다. 음식 취사와 조리에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취사도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솥은 한 집안의 역사이자 가보였다. 집을 옮길 때 가장 먼저 옮긴 것도 솥이요 고된 피난길이지만 버리지 못한 것도 바로 솥이었다.

이름과 사연도 갖가지
 

이미지 확대하기신라 성덕왕때 승려3천명의 식사를 책임졌던 보은 법주사 철확.신라 성덕왕때 승려3천명의 식사를 책임졌던 보은 법주사 철확.


솥은 오래전부터 ‘정’으로 불려왔다. 때문에 솥을 한자로 표기할 때는 보통 ‘鼎’이라고 쓴다. 춘추전국시대의 책 ‘우공’은 ‘정’이란 말이 중국 하나라 우왕 때 주조된 9개의 솥을 일컫는데서 왔다고 전한다. 정은 음식을 조리하는 용도뿐 아니라 국가, 왕위, 제업을 상징하는 제기로도 쓰였다.

우리 선조들은 솥을 밥을 짓거나 국과 물을 끊이는데 사용했다. 재료는 주로 무쇠로, 손잡이용 꼭지가 달린 뚜껑을 가졌다. 솥의 종류는 꽤 다양해 정 말고도 ‘부’(釜), ‘노구’ 등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다리가 없는 것은 부, 다리가 있는 것은 정이라 불렸다. 또 노구는 자유롭게 옮겨 걸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작은 솥을 뜻한다.

‘임원경제지’ ‘섬용지’ ‘취주팽약제기편’ 등 옛 농서와 기술서는 솥에 다리가 있으면 ‘기’(錡), 없으면 ‘부’라고 불렀다고 기술한다. 또 최근 출간된 한국고고학 사전도 무쇠솥을 두부류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다리 3개에 바닥이 비교적 편평하며, 주변이 직선형 모양인 정이다. 정은 주둥이가 약간 넓게 퍼진 형태의 뚜껑이 솥전보다 크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다리가 없고, 솥바닥이 둥글며 주둥이가 좁고 솥전이 오므라든 형태의 ‘복’( )이다. 종합해보면 ‘정’과 ‘기’는 세발을 가진 솥을, ‘부’와 ‘복’은 다리가 없는 솥을 일컫는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한반도에서 솥은 청동기시대 후기 한국식동검문화기에 해당되는 고조선유적에서부터 발견된다. 이어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설치된 ‘한사군’ 유적에서도 다양한 솥이 출토된다. 특히 낙랑군 유적은 4개군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솥이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그 종류만 해도 정, 복, 부가 확인됐으며, 소재도 구리, 철, 흙, 도제 등으로 다양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삼국시대 전통솥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뚜껑 달린 청동합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1946년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서 발굴된 청동합은 높이 19.4cm, 그릇 깊이 10cm, 몸통 지름 24cm인 구리로 만든 솥이다. 그릇과 뚜껑 표면에는 3가닥씩 덧무늬를 2단으로 두르고, 10장짜리 꽃잎무늬 ‘유좌’( 座)에 구슬모양 손잡이를 달았다. 바닥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 十)’을 돋을새김한 4행 16자의 명문이 적혀있다. 해석하면 ‘국강상에서 잠든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해 죽은뒤 3년째인 을묘년(415년)에 만든 기념 항아리’라는 뜻이다.

충북 보은에 있는 법주사 ‘철확’(鐵 )처럼 독특한 용도로 쓰인 솥도 있다. 성덕왕 19년(720년)에 제작된 이 철확은 쇠로 만든 대형 철제솥이다. 높이 1.2m, 직경 2.7m, 둘레 10.8m의 이 철제솥은 3천여명의 승려가 머물던 그 옛날 장국을 끓이거나 밥을 짓는데 쓰였다.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목재 다루듯 정교하게 철솥을 만들었던 당시 장인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문화재다. 물론 이러한 금속문화는 고려시대에도 계속해서 꽃을 피운다. 어른 10명을 거뜬히 담을 수 있는 개태사 철확이 그 단적인 예다.

한편 조선시대의 솥은 정겨운 풍자화 한폭으로 설명된다. 조선의 솥은 솥과 솥뚜껑이 한쌍을 이루며, 가운데 부분에 전이라는 걸이가 있는 형태를 띤다. 이같은 형태는 19세기 화가 기산 김준근의 ‘가마점’이란 풍속도에 현실감 있게 표현돼 있다. 이 그림은 용광로에서 풀무질하는 모습, 용광로에 구멍을 내고 녹은 쇳물을 도가니에 받는 모습, 거푸집에 부어 틀을 짜는 모습 등 주물제작의 전과정을 담았다. 기산의 풍속화에 담긴 주물 제작과정은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전승돼 내려온다.
 

이미지 확대하기1993년 청주 사뇌사지에서 발견된 고려 무쇠솥.1993년 청주 사뇌사지에서 발견된 고려 무쇠솥.


땀과 지혜를 버무린 솥 제작과정
 

이미지 확대하기현재 독일 함부르크인류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기산 김준근의 작품 ‘가마점’.현재 독일 함부르크인류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기산 김준근의 작품 ‘가마점’.


우리겨레가 오래전부터 뛰어난 주조기술과 제작 경험을 축적해왔음은 이미 사료를 통해 충분히 소개돼왔다. 무쇠솥도 오랜 경험과 정확한 계산에 의해 제작된다. 일단 주재료인 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고서는 양질의 솥을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솥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보통 네단계를 거친다. 거푸집 만들기는 솥 형태를 만드는 과정으로 내면과 외면거푸집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내면거푸집은 솥 안쪽을, 외형거푸집은 바깥모양을 좌우한다. 이를 위해 말과 도래라고 불리는 도구가 고안됐다. 내면과 외형거푸집간격이 알맞게 유지돼야 솥 두께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역할을 말과 도래가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래는 외형과 내면, 솥뚜껑 거푸집을 한번에 만들 수 있는 도구로 그 안에 숨겨진 지혜는 오늘날에도 놀라울 따름이다.

주물사는 내면거푸집에 담아 석비레 흙을 사용해 만든다. 밀도를 적당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짐이로 다지고, 침을 이용해 주물사 안에 공기통로를 만든다. 쇳물을 부었을 때 높은 열을 바깥으로 빨리 빼내 주기 위해서다.

솥을 만들 쇳물은 용광로에 잡쇠, 석회석, 코크스를 순서대로 혼합해 만든다. 석회석을 넣는 이유는 그 구성성분인 칼슘이 철에 함유된 황 제거에 효과만점이기 때문이다. 이때 재료 혼합 비율이 잘 맞아야 질 좋은 쇳물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결과 이상적인 혼합비는 쇠 1백kg에 석회석 10kg, 코크스 70kg이다. 쇳물을 다루는데 있어 재료 선택, 섞는 순서, 배합량은 솥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한편 용광로 아래 용해로에 고인 쇳물은 바가지로 떠서 거푸집으로 옮긴다. 바가지로 쇳물을 뜰때는 규소가루를 뿌려 쇳물의 유동성을 좋게 한다. 쇳물 온도가 너무 높아 제대로 성형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쇳조각을 넣어 온도를 낮추기도 한다. 또 쇳물을 붓기 전 갈라진 곳을 메우고 외형을 매끈하게 하기위해 거푸집 표면에는 솔로 흑연물을 발라준다.

마지막으로 다듬기는 주물 제작 과정에서 생긴 돌출부를 갈아 표면을 고르게 정리하는 단계다. 이 과정을 거쳐야 솥은 비로소 완전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이렇듯 제작 과정 곳곳에는 전통과학의 슬기와 힘이 배어있다. 제작에 쓰이는 도구와 용어 하나하나는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노력이 빚어낸 순수한 겨레의 말글이다.

균일한 솥 안 온도가 쌀맛 비결

도회지 서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고향 시골집의 맛. 그 맛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팀은 수년간 연구끝에 무쇠솥 밥맛 비밀이 솥의 구조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무쇠솥밥이 다른 밥솥으로 지은 밥보다 색깔, 윤기, 냄새, 찰기, 끈기가 더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 맛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팀은 대구 달성군 농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쇠솥 10개를 가져와 무게와 크기를 측정했다. 조사 결과 밥의 질이 솥뚜껑 무게, 바닥 두께와 밀접히 관련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뚜껑 무게가 솥 무게의 3분의 1 정도일때 색깔·윤기·밥냄새·밥맛·찰기에서 가장 좋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무쇠솥 뚜껑이 다른 재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겁다는데서 그 까닭을 찾아냈다. 솥뚜껑이 무겁다는 것은 불로 가열 할때 솥안의 공기와 수증기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내부압력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물의 끓는점도 올라가 밥이 섭씨 1백도 이상에서 제대로 잘익게 된다. 뜸들이는 동안에도 고온 상태가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맛을 내는 데에도 제격이다.

불이 직접 닿는 바닥면 두께도 밥맛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솥바닥을 각각 11등분해 각각의 두께를 쟀다. 그러자 대부분의 무쇠솥에서 바닥은 두껍고 가장자리로 가면서 얇아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바닥이 가장자리 부분보다 2배 가량 두꺼웠던 것이다.

바닥 중앙이 두껍고 가장자리가 얇다는 것은 열전도와 관련이 있다. 불에 먼저 닿는 부분을 두껍게 하고 먼 부분을 얇게 만들었기 때문에 고르게 열이 솥안에 전달된 것이다. 이처럼 무쇠솥은 내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바닥 전체에 고르게 열이 전달되는 구조를 가졌다. 그 결과 선조들은 수분 함량이 높고 알이 단단하며 찰기있는 밥을 지어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요즘 유행하는 통가열식 전기압력밥솥이다. 통가열식 압력밥솥은 전기코일을 솥주위에 감아 열을 고르게 전달받는 원리를 이용한다. 보통 전기밥솥은 열판이 있는 밑부분만 가열되는데 반해 통가열식 밥솥은 솥 전체에 열이 가해진다. 바닥 전체가 골고루 열을 받는 무쇠솥과 비슷한 이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은 무쇠솥 밥맛이 정말로 다른 밥보다 맛있을까. 연구팀은 솥구조와 밥맛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해 시식단 10명을 선발했다. 무작위로 뽑은 4백명 가운데 신맛·단맛·쓴맛·짠맛 등 네가지 맛을 잘 판별하는 사람들을 다시 추려낸 것이다. 이는 객관적으로 맛을 측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사팀은 무쇠솥, 돌솥, 압력솥, 전기밥솥, 냄비에 각각 쌀 1kg과 물 1천5백cc를 넣고 밥을 지었다. 이를 선발된 10명의 시식단에게 먹이고 평가표를 나눠줬다. 평가 결과 색과 윤기는 무쇠솥이, 냄새는 무쇠솥과 돌솥밥이, 밥맛은 무쇠솥이, 찰기는 압력밥솥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이 표를 종합해 점수를 매기면 ‘무쇠솥밥>돌솥밥>압력솥밥>전기밥솥>냄비솥밥’ 순이라는 것이다.

특히 가마솥으로 지은 밥에는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밥을 지을때 무쇠솥 재료에 들어있는 철분이 떨어져 나와 자연스럽게 섞이기 때문이다. 철분이 부족하면 빈혈에 걸린다는 사실을 우리선조들은 아마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같다.

이처럼 솥은 선조들이 금속을 어떻게 실생활에 과학적으로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민간사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현대 문명의 이기인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에 밀려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맛이 더 좋다고는 하지만 밥을 짓기 위해 불을 피우고 연기를 마셔야만 하는 무쇠솥은 바쁜 현대인에게 어쩌면 더이상 문명의 이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힘을 잃어가는 겨레 과학에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산천에 버려진 녹슨 솥 하나에도 과학의 힘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글 : 윤용현 연구관 yh-yun@hanmail.net
글 : 정동찬 연구관
과학동아 2004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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