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엄마 핏줄이 더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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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119에 전화하려고 휴대전화를 꺼내려는 순간 사촌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파트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데, 불길에 갇혀 아파트 현관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촌을 발견했다. 목숨을 걸고 사촌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발만 동동 구를 것인가?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인은 상대가 이종사촌일 때 도와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외사촌, 고종사촌, 친사촌 순이었다. 지난 2007년 전중환 경희대 교수와 데이비드 버스 미국 텍사스대 교수가 사촌을 돕는 행동의 정도를 예측하는 수학 모델로 이끌어 낸 결과다.

이 모델은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득과 도움을 주는 사람의 손해, 그리고 사촌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을 미분방정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델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사촌을 둔 미국 대학생 195명을 뽑아 설문조사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사촌을 도울지 말지, 돕는다면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건지, 평소 자주 연락하는지, 사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1에서 7사이의 숫자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사촌의 나이 차나 사는 거리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통계적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이 모델과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확실한 핏줄일수록 돕는다

그렇다면 외가쪽 사촌이 나를 도와 줄 확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는 “엄마는 자기가 직접 아이를 낳기 때문에 자기 자녀가 확실하지만 아빠는 자기 자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부성 불확실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심리 때문인지 남성은 자녀가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할수록 자녀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다. 또 자신과 닮은 아기 얼굴 이미지를 합성해서 보여줬을 때 남자가 여자보다 뇌가 더 활성화 된다.

그런데 이 같은 부성 불확실성이 사촌의 행동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도와 줄 확률이 가장 높은 이종사촌은 유전적 연결고리가 가장 강력한 엄마와 친자매인 자녀다. 나와 거리가 있긴 하지만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친사촌의 경우에는 불확실한 연결고리가 두 개나 된다. 아빠와 나 사이에서 하나, 삼촌과 친사촌 사이에 또 하나가 있다.

그런데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친사촌이 꼴찌라는 점이다. 기자는 외사촌이나 고종사촌보다는 친사촌을 만나는 횟수가 훨씬 많다. 명절만 해도 연휴 시작부터 명절 당일까지는 친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외가는 연휴 마지막 날에나 간다. 이 때문에 이미 외가에 가 버린 외사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고종사촌도 마찬가지다.

만나는 횟수가 많은 만큼 외사촌이나 고종사촌보다는 친사촌과 훨씬 친하다. 친할수록 도와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친사촌이 도와 줄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 전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를 반영한 연구에서는 이종사촌 다음으로 친사촌이 도와 줄 확률이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꼭 핏줄에 끌리는 게 다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미지 확대하기위기 상황에서 사촌을 대하는 행동은 유전적 연결고리가 얼마나 확실한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사촌과 교류가 많을수록 도와 줄 확률이 높다.위기 상황에서 사촌을 대하는 행동은 유전적 연결고리가 얼마나 확실한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사촌과 교류가 많을수록 도와 줄 확률이 높다.

생사가 달린 위기 상황에선 어린 순서대로

만약 도움을 줘야 하는 사촌이 여러 명이라면 과연 누구부터 구할까?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유진 번스타인은 이를 알아 보기 위해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눠 설문했다.

우선 갑작스럽게 집안에 불이 났는데 사촌 중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를 구할지 물었다. 구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가정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상황에서 손쉽게 사촌을 도울 수 있을 때 사촌 중에 누구를 돕겠냐고 물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나이는 1세, 10세, 18세, 45세, 75세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자 불이 났을 때는 나이가 어릴수록 도와 줬다. 즉 1살짜리 아기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75세 어르신이 도움을 가장 적게 받았다. 하지만 일상적인 도움에서는 달랐다. 역시 1살짜리 아기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꼴찌는 18살짜리 청년이었다. 오히려 75세 어르신은 두 번째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선 한 살이라도 젊은 사촌을 도와야 내 유전자의 일부가 퍼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사와 상관 없는 상황에선 이런 영향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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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특별해

둘도 없는 친구이자 라이벌일 수도 있는 형제 사이는 어떨까? 형제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50%다. 내가 입는 손해보다 상대방이 얻는 이익에 똑같은 유전자를 가질 확률을 곱한 값이 크면 쉽게 도와 준다.

그런데 형제가 셋 이상이 되면 이런 관계가 조금 복잡해진다. 사실 형제 사이가 사촌보다 가깝지만, 부모의 지원을 받는 데는 가장 치열한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지원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는 보통 나이가 가장 많은 첫째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부모의 지원을 더 받은 첫째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이에 반해 둘째는 기존의 방식을 지지해 봤자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반항적이다. 반면 막내는 둘째보다 부모에게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받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투자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 캐서린 셔먼과 마틴 데일리는 둘째나 중간 자녀는 가족 간의 친밀감이, 맏이와 막내에 비해 낮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중간 자식에게 가족을 포함해 가장 친밀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가족이 아닌 딴 사람의 이름을 댈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또한 가족의 일을 책임지거나 가족 구성원을 돕는 데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사실 이런 결과는 어디까지나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다. 실제로는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정환경 등 많은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갈 길 먼 가족관계 연구에 도전하자!

결혼부터 친척 사이의 관계까지 가족의 비밀을 풀어 주는 수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밝히지 못한 가족 관계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족과 함께 있었던 소소한 일상을 수학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이것이 시작이 되어 먼 훗날 유명한 수학자이자 인류학자, 진화심리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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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전통의 빅데이터, 족보
Part 2 수학이 만든 “결혼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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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찬
글 : 조가현(gahyun@donga.com) 기자
도움 : 김범준 교수
도움 : 전중환 교수
사진 : 동아일보
사진 : 포토파크닷컴
기타 : <수학이 사랑한 예술>, <방정식과 군론>, <진화심리학>
수학동아 2015년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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