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눈 폭풍 비밀 풀면 태양이 뜬다

플라스마 엔지니어링 ❷ 초고온 플라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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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마의 개념이 정립된 건 19세기 후반이지만, 응용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60년대부터다.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 선진국들이 이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핵융합 연구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물질을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 원자핵과 전자를 떼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핵과 핵이 잘 부딪치도록 1억℃ 이상 가열한 뒤 가둬놔야 한다. 1억℃로 끓으며 요동치는 플라스마를 감금하고 제어하는 기술은 이 가운데서도 가장 ‘핫(hot)’한 기술이다.


관건은 플라스마 감금 시간

핵융합 반응의 에너지는 플라스마 입자들이 충돌하며 발생한다. 플라스마의 밀도와 온도가 높을수록
에너지가 크다(밀도와 온도가 각각 n, T인 플라스마가 있을 때, 핵융합 반응으로 얻는 에너지는 n2T2에 비례한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감금된(즉 밀도가 높은) 플라스마는 주변으로 확산하려는 성질을 띤다. 플라스마가 주변으로 흩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 척도를 에너지 ‘감금시간(τE)’이라 하는데, 플라스마의 확산에 따라 주변으로 잃어버리는 에너지는 온도에 비례하고 감금시간에 반비례한다(nT/τE).

핵융합 반응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핵융합 반응에 의해서 생성되는 에너지가 플라스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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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유도하면, 지속적인 핵융합 반응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높은 온도와 밀도의 플라스마를 최대한 오랫동안 감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핵융합 플라스마 실험에서는 감금시간이 예상보다도 매우 짧게 측정됐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초고온 플라스마의 난류가 에너지를 비정상적으로 수송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좁은 공간에 갇힌 초고온 플라스마는 열역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상태다. 자연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이것의 엔트로피를 높여가는데 이때 동원되는 수단은 난류다. 감금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런 난류를 어떻게 억제하는가가 관건이다.


플라스마 난류와 눈 폭풍은 쌍둥이?

토카막 장치와 같이 강한 자기장을 사용해서 플라스마를 감금하는 경우, 여기서 발생하는 난류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 한파와 눈 폭풍을 불러온 대기의 움직임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지구 대기의 온도는 위도에 따라 불연속적으로 바뀐다(위도가 얼마간 높아져도 온도 변화가 거의 없다가 갑자기 온도가 낮아지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는 지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형태의 제트기류가 위도대마다 공기 덩어리를 분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북극에 감금돼 있던 차가운 공기덩어리가 난류의 형태로 위도가 낮은 지역으로 퍼져 나온다. 겨울철 대대적인 한파의 원인이다.

제트기류와 연동된 대기의 난류는 토카막 장치에 감금된 초고온 플라스마의 난류와 매우 유사하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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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대기와 토카막 내부의 핵융합 플라스마가 매우 유사한 힘과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인공태양을 만드는 일은 보람이자 자부심”

JET(Joint European Torus)는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플라스마 실험장치다. 40MW급 플라스마 가열 장치를 이용해 현존하는 장치들 중 가장 높은 에너지의 핵융합 플라스마를 발생시킬 수 있다. JET는 2019년 대대적인 수소 핵융합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유럽의 핵융합에너지 연구를 총괄하는 유럽연합 컨소시엄 ‘유로퓨전(EUROfusion)’의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이자, JET 실험 캠페인 운영의 책임 오피서(Responsible Officer)인 김현태 박사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Q 2019년 예정된 실험은 어떤 것인가요?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 간의 핵융합 반응을 실험하는 ‘DT 핵융합’ 실험입니다. DT 핵융합은 핵융합발전소에서 실제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굉장히 중요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12.3년으로 짧아 이것을 실험하려면 특수한 처리시설이 필요하죠. 세계에서 JET만이 유일하게 삼중수소 처리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Q 20년 만에 치러지는 실험이라고 하던데.

1997년 첫 DT 실험 이후 정확히 22년 만입니다. 당시에 16MW의 핵융합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해 핵융합 에너지의 가능성을 보여줬죠. 지금은 플라스마 가열 능력이 그때보다 2배나 더 좋아졌습니다. 장치 내벽도 ITER에서 사용하게 될 베릴륨과 텅스텐으로 교체했고요. 핵융합로의 내벽 물질은 플라스마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핵융합 성능에 큰 영향을 줍니다. 훗날 ITER에서 DT 실험을 할 때 필요한 핵심적인 데이터가 JET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Q 실험에는 누가 참여하나요?

JET 실험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유럽의 28개 나라에서 수백 명의 물리학자들이 JET에 모여 함께 실험을 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핵융합연구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제게 보람이자 자부심입니다. 그동안은 JET에서 연구를 하는 한국 과학자가 저뿐이었지만, 이번 DT 실험에는 많은 한국인 과학자들이 꼭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에 ITER 실험에 참가할 때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과 유로퓨전 간의 협력연구를 추진하고 싶습니다.

Q 다양한 핵융합 플라스마 연구의 최종 목표는?

핵융합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핵융합 에너지는 매우 이상적인 에너지원입니다. 원료인 수소가 바닷물에 무궁무진하게 있으니 자원 고갈의 문제가 없습니다. 또 핵융합 반응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기후변화 현상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습니다. 원료가 수소이기 때문에 농축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현재 원자력 발전소의 원리)이 남기는 방사성폐기물 걱정도 없고, 핵융합 반응은 연쇄반응(Chain reaction)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가 닥치더라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상용화까지는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인공태양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류를 없앨 방법은?

초고온 플라스마의 난류를 없애는 것은 60년 넘게 핵융합 연구를 이어오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특히 실험적으로 돌파구를 연 것이 1982년 독일 ASDEX 토카막에서 발견된 ‘H-모드 플라스마’다. H-모드는 난류는 낮고 에너지 감금시간은 긴 고성능 핵융합 플라스마다. 핵융합 연구자들은 H-모드가 만들어질 때 플라스마의 흐름이 대기의 공기 흐름을 차단하는 제트기류와 유사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불어 이런 플라스마의 흐름을 조절하면 난류의 크기와 그에 따른 에너지 감금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실제로 핵융합 플라스마 난류의 흐름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 해 보면 난류의 형태가 중심부로부터 뻗어 나온 구조를 갖는 경우(아래 왼쪽) 에너지 감금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플라스마의 흐름이 제트기류처럼 토카막의 단면을 원형으로 휘감으며 만들어지는 경우(아래 오른쪽) 난류가 억제되고 에너지 감금시간이 늘어나 핵융합 성능이 증가하게 된다.
 
최근의 핵융합 연구는 이런 지그재그 형태의 플라스마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고성능 플라스마 운전모드를 달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래 핵융합 장치인 이터(ITER)가 완공될 때를 대비해 우리나라의 KSTAR를 비롯한 다양한 핵융합 장치에서 플라스마 난류를 제어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KSTAR는 ITER와 동일한 재질의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고, 장치 제작의 정밀도가 뛰어나 자기장 오차가 매우 낮다. 덕분에 난류를 제어하는 기술을 매우 정교하게 실험할 수 있다. KSTAR에는 난류의 구조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진단장치가 적용됐다.
 
모든 연구들이 그렇지만 핵융합 연구는 도전과 실패가 반복되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혼돈과 불면의 시간 끝에는 반드시 모든 것들이 명확하고 투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핵융합 플라스마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자연현상과 깊이 연결돼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 좋은 예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비밀들이 더 많이 밝혀져 핵융합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도전에 빛을 던져주길 희망한다.
 
 

글 : 권재민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선행기술연구센터 책임연구원
과학동아 2016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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