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55년의 도전 새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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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로운 이벤트!(Very Interesting Event!)”.

2015년 9월 14일 저녁. 필자는 e메일 한 통을 확인했다. 라이고-버고 연구단의 분석팀원인 마르코 드라고(Marco Drago)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메일에는 중력파로 추정되는 신호를 발견했다는 흥분 섞인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한국중력파연구단의 일원으로, 라이고-버고팀과 같이 지난 6년간 함께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처럼 흥분되는 메일은 처음이었다. 중력파를 찾기 위해 전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난 55년간 흘렸던 땀과 눈물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조명 한번 받지 못하고 그간 부단히 노력했던 과학자들의 역사가 숨어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한 계단 한 계단씩 쌓아올린 덕에 이 거대한 발견이 있을 수 있었다.


중력파 검출의 시초, 조세프 웨버

1955년, 미국의 물리학자 조세프 웨버는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존 아치볼드 휠러를 만났고 일반상대성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휠러는 ‘블랙홀’이란 이름을 만든, 일반상대성이론에 정통한 이론물리학자다. 휠러와 수많은 토론을 한 끝에 웨버는 중력파를 찾겠다고 마음먹고, 메릴랜드대로 돌아와 중력파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웨버는 1661Hz(헤르츠)에서 변형률이 10-16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명 막대형 검출기 ‘웨버 바’를 만들고 중력파 관측에 들어갔다. 첫 실험에서 중력파 의심신호 10개를 발견했지만, 그는 진동잡음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신호가 있었던 시간대에 어떤 천체 현상도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 웨버는 상온막대공명검출기 두 대에서 동일한 신호 4개를 검출했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검출기 두 대에서 모두 검출된 신호만 후보로 걸러낸 것이다. 웨버는 이 신호가 잡음일 확률이 7000년에 한 번 꼴로 충분히 낮아 중력파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69년 웨버의 검출기는 4대로 늘었다. 4대 모두에서 동일하게 검출된 신호 3개를 발견한 웨버는 확신에 찬 어조로 중력파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완성했다.

논문 출간 2주 전, 웨버는 미국 중서부 상대론학회에서 중력파 검출결과를 발표했다. 칼텍의 킵 손 교수를 비롯한 청중은 충격에 휩싸였고, 엄청난 갈채를 선사했다. 웨버는 일약 스타가 됐다. 언론매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며 연일 웨버의 결과를 칭송하고 전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웨버의 실험실은 관람객으로 북적였고, 일반상대론은 가장 인기 있는 강연주제가 됐다.
 

1년 뒤 웨버의 결과를 검증하기 위한 중력파 실험실이 10개 이상 꾸려졌다. 전세계의 연구진은 중력파 천문학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새로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각자 웨버의 방식대로 상온 막대(바) 검출기를 제작해서 신호 검출에 들어갔다. 연구진들은 웨버가 주장하는,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오는 중력파 신호를 탐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현은 성공하지 못했고, 다들 웨버의 결과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웨버는 자신의 결과를 방어하고 싸우느라 정신없었고 학회장은 연일 소란스러웠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게리 기번스는 웨버의 논문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웨버의 계산대로라면 우리은하는 중력파 방출로 엄청난 에너지를 잃어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웨버가 만든 상온 바 검출기는 여러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기에 민감도가 충분치 않았고(10-16), 공명 주파수가 제한돼 있었다(1661Hz). 사람들은 점차 1969년의 결과를 믿지 않게 됐다. 오직 한 사람, 웨버만이 자신의 결과를 철석같이 믿고 고집스럽게 분석에 매달렸다. 나중에 NSF 연구비가 중단됐을 때, 웨버는 레이저 간섭계에 연구비를 뺏겼다고 여겨 라이고 개발에 극심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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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버 바를 대체한 라이고

과학자들은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극저온기술을 이용해 잡음을 제거하고 민감하게 만드는 방법이 등장했다. 막대 검출기의 대안으로는 레이저 간섭계 모델이 연구됐다. NSF는 간섭계 기술이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졌다고 판단해, 이를 개발하는 MIT의 라이너 와이즈 교수 등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킵 손 교수도 로널드 드레버나 블라디미르 브래진스키 등과 교류하면서 레이저 간섭계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킵 손이 칼텍으로 영입한 드레버는 마이컬슨 간섭계의 원형에 파브리-페로 공진기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파브리-페로 공진기는 마이컬슨 간섭계의 양 팔 중간에 반사경을 하나 더 설치해 빛을 반복 반사되게 함으로써 레이저의 출력을 높이는 기술이다. 드레버는 파운드-드레버-홀이라는 레이저 안정화기법도 개발했다. 한편 라이너 와이즈는 레이저 간섭계의 모든 잡음원을 분석해 라이고가 중력파 검출기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70년대부터 NSF의 연구비로 수m에서 수십m에 이르는 간섭계를 제작 실험함으로써 중력파 검출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과 방법을 터득해갔다.

1994년 MIT와 칼텍은 라이고의 건설과 제반 실험사항을 담은 ‘블루북’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바로 라이고 프로젝트의 초안이다. NSF는 이미 십수 년간 간섭계 기술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 가능성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큰 규모의 연방예산 승인은 NSF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학계의 반대도 거셌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필립 앤더슨까지 나서 “만약 아인슈타인을 팔지 않았다면 거들떠나 봤겠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NSF의 뚝심지원과 빅독 이벤트

온갖 비난에도 NSF는 흔들림 없이 라이고 프로젝트를 강력히 지지했다. 라이고 건설과 중력파 검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랜스 코르도바 NSF 이사장은 이번 중력파 관측 기자회견에서 “라이고는 위험성이 매우 큰 사업”이었지만 “선구적인 연구”였다고 밝혔다. 그는 “NSF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관”이라며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식발전을 선도하고 세계적인 리더십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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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라이고는 목표 감도에 도달하고, 2007년 가동을 시작한 유럽의 중력파 천문대인 버고(VIRGO)와
함께 삼중 동시관측을 수행하는 게 주 임무였다. 현재보다 감도가 낮았기에, 중력파 검출확률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잡아도 1만 년에 2~3개꼴이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여섯 차례 관측가동을 했지만 중력파를 검출하지 못하고 종료됐다. 민감도를 높여 ‘어드밴드스 라이고’로 개선하기 위해 문을 닫기 불과 한 달전, 라이고 연구팀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터졌다.

2010년 9월 16일, 블랙홀 쌍성계로 의심되는 중력파신호가 큰개자리 부근에서 포착된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하던 일을 미루고 분석에 박차를 가했다. 다음달 가동이 종료되는 일정 때문에 더더욱 시간이 빠듯했다. 모든 검출기 세팅을 유지한 채 신호를 확정할 수 있는 분석수단을 총동원했다. 이 중력파 신호에 대한전자기파 관측 및 물리량 측정 등 후속작업이 빠르게 수행됐다.

6개월 뒤인 2011년 3월 14일, 캘리포니아 주 아카디아에서 열린 라이고-버고 연례총회에서 분석결과가 발표됐다. 결과는 진짜 중력파가 아닌 블라인드 테스트 신호였다. 위원회에서 검출 분석소프트웨어를 테스트 하려고 몰래 주입했던 모의 훈련이었다. 실제 중력파원의 물리량을 토대로 컴퓨터가 임의의 시간에 라이고 검출기에 신호를 보내서 진짜처럼 보이도록 거울에 살짝 진동을 주는 프로그램(하드웨어 주입)이다. 몇 사람을 빼곤 연구단이 단체로 ‘낚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 모의 훈련으로 얻은 바는 컸다. 라이고의 모든 분석 파이프라인과 절차가 완비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 어드밴스드 라이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큰개자리에서 온 신호라 하여 ‘빅독’ 이벤트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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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유출로 곤란을 겪은 왜행성 하우메아 발견

2004년 칼텍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팀은 카이퍼벨트대에서 새로운 왜행성을 찾았다. 한참 분석에 열을 올리고 발표에 신중을 기하고 있을 무렵,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오리츠 모레노 팀이 이 발견을 먼저 발표했다. 마이클 브라운은 오리츠그룹의 공로를 인정했으나, 이내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언론에선 새로 발견한 왜행성이 명왕성보다 두 배나 크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론 명왕성 질량의 30%밖에 되지 않았다. 브라운은 즉시 정정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초기의 잘못된 보도로 훨씬 더 흥미로운 천문학적 사실들이 묻히고 말았다. 브라운 팀은 오리츠팀이 칼텍의 관측로그와 학회발표 초록을 봤다고 의심했고, 오리츠 팀은 중요한 단서가 없었다고 주장해논란이 됐다.



중력파, 이번엔 진짜다

5년간의 업그레이드가 끝나갈 무렵인 작년 9월 14일, 어드밴스드 라이고의 8번째 엔지니어링가동 중이었다. 이 마지막 엔지니어링가동은 관측가동이 가능하도록 검출기 세팅이 맞춰진 상태라, 자연스럽게 1차 관측가동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마지막 테스트를 겸해서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하던 무렵이었단 뜻이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6시 51분에 포착된 블랙홀 두 개의 이중주. 아인슈타인이 지휘하고 리빙스턴과 핸퍼드에 위치한 어드밴스드 라이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필자가 받은 메일에는 이 이중주를 처음 들은 과학자의 기쁨에 찬 탄성이 들어있었다.

이후 6개월간 치열한 검증과정이 이어졌다. 배경 잡음을 통해 산출된 오경보 비율은 20만 년에 한 번꼴로 잡음이 이런 중력파 신호로 오인될 수 있다고 알려줬다. 확실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버고가 가동되지 않아 중력파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구에서 약 410메가파섹(약 13억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태양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개의 회전하는 블랙홀 쌍성이 합쳐져 태양질량의 62배인 회전하는 블랙홀 하나가 탄생한 사건이었다.

오경보 비율(false alarm rate) 오경보 비율은 무작위의 잡음이 우연히 서로 상호작용해 진짜 중력파처럼 보이게 될 주기를 말한다. 이 값이 크면 중력파 신호의 신뢰도가 높다. 이번에 검출된 중력파 신호의 오경보확률은 20만 년에 1개꼴이며 신뢰도로는 5.1시그마에 해당한다.


입이 무거웠던 6개월

검증절차가 진행돼 가던 시점에 트위터에서 ‘중력파 발견 가능성’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라이고 과학협력단 내부에 기밀보안명령이 떨어져 있던 시점이었는데,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애리조나대의 이론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로 소식을 전했다. 언론 발표가 임박했을 즈음 여러 정보가 계속 새어나갔다. 심지어 구체적인 측정값까지 공개가 됐다. 실수로 e메일이 유출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정보유출은 거대과학실험을 운영하는 조직에겐 달가운 일이 아니다. 실제 잘못된 루머로 과학적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04년 발견된 왜행성 하우메아와 관련된 일화다. 발표 전 잘못된 정보가 돌아 실제 중요한 정보는 오히려 묻혀버렸다. 칼텍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가 자신의 발견이 곡해되고 있어 매우 슬프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발표가 확정되기 전 루머가 돌면 그동안 노력했던 연구진들이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투고된 논문의 게재승인 여부와 출간 여부는 비밀로 지켜졌다. 한국중력파연구단 역시 수많은 학회에서 보안유지에 신중을 기했다. 특히 공용프린터 사용을 자제하고, 협력단 회원이 아닌 연구자와의 대화에서 암구호를 정해 말을 하는 등 보안에 힘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2월 11일(미국 현지시간) 중력파 검출 성공 소식이 발표됐다. 중력파 검출을 위한 인류의 55년간의 고단한 여정은 이렇게 1막을 내렸다. 2막에는 더욱 새롭고 잘 포장된 길이 펼쳐져 있다. 이제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글 :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에디터 : 변지민 기자
과학동아 2016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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