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영하 150℃에서 찰랑이는 물 보셨나요?

도전! 유니스트 김채운 UNIST 13 자연과학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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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남극 한 지역의 최저 기온은 영하 89.2℃. 수 분만에 인간의 눈, 코, 심지어 폐까지 얼어붙게 한다. 이런 곳에서 물을 공중에 흩뿌리면 그 자리에서 얼음으로 바뀌고 만다. 그런데 한 과학자가 영하 150℃에서 얼지 않은 물을 발견했다.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극저온 상태의 물이 20년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 발견의 주역, 김채운 UNIST 자연과학부 물리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미지의 바다 위 항해를 시작하다

김 교수는 X선이 물질을 만나 경로를 바꾸는 회절현상을 이용해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X선 회절은 물질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할 때 유용하다. 그런데 단백질은 강력한 X선을 쬐면 타버리기 때문에, 관찰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냉각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문제는 냉각할 때 단백질 안에 있는 물도 같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해 단백질 결정 구조가 망가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글리세롤, 에틸렌글리콜 같은 저온보호물질을 첨가해 단백질 구조를 보존하면서 냉각시켜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단백질 종류마다 필요한 저온보호물질의 종류가 달라서 실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바이러스처럼 큰 구조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분석 결과도 명확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박사과정생이던 2004년에 이런 저온보호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2000기압의 고압에서 손상 없이 단백질을 냉각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당시 김 교수는 높은 압력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실험 도중 우연히 저온에서도 결정구조를 이루지 않는 얼음을 발견했다. 이 비결정질 상태는 고체지만 물보다 부피가 크지 않아 단백질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비결정질 상태가 ‘고압’과 관련있을 거라 추측했다. 김 교수는 이 주제에 매진해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이어갔다.



고독한 항해 뒤에 남은 첫 발자국

‘영하 150℃에서도 얼지 않는 물’ 역시 그런 연구의 연장선에서 만들었다. 2009년, 김 교수는 2000기압에서 물을 영하 190℃까지 냉각해 고밀도 비결정질 상태의 얼음을 만들었다. 그 뒤 압력을 대기압과 같은 1기압으로 낮추고 온도를 서서히 높여갔다. 그러자 영하 150℃에서 짧은 순간 액체상태의 물이 나타났다. 김 교수는 혼자 속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홀로 이 분야를 개척하다시피했기에, 같이 토론할 전문가도 없었던 것이163다. 다행히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설명할 근거들이 하나 둘씩 나왔고, 5년이 지나서야 김 교수는 자신이 봤던 것이 지난 20년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물의 비밀을 풀어줄 현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김 교수는 물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데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연구의 시작이었던 단백질 구조 분석도 계속 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결합하는 탄산탈수효소 등 다양한 단백질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고, 2014년에는 스스로 개발한 기법을 응용해 단백질보다 크기가 큰 박테리아의 구조를 X선으로 관찰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다보니 안정적이지 못하고 학회를 가도 같은 주제로 얘기할 사람이 없어 외롭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연구한다는 사실이 즐겁고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글 : 서동준 기자
사진 : 남승준
과학동아 2016년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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