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커피잔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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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4년차 김 대리에게는 점심식사 후 회사 옥상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다. 희뿌연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 보면 엉뚱한 생각이 꼬리를 잇는데, 팍팍한 일상을 잊게 하는 나름의 맛이 있다. 오늘도 따뜻한 커피 컵을 손에 들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김 대리. 문득 “이 커피 컵과 스마트폰…, 어떻게 들고 있을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엉뚱해 보이는 김 대리의 질문은 사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했던 질문과 다르지 않다.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던 그들의 질문은, 결국 사람의 손이 물체를 어떻게 움켜잡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됐기 때문이다.

2600여 년 전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물’이라는 답을 내렸고,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이 물, 불, 흙, 공기로 이뤄져 있다는 ‘4원소설’을 제기했다. 물을 기본으로 다른 세 가지 원소들이 적절히 섞여서 세상 만물을 이룬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인류는 19세기 초까지 무려 2300여 년 동안 이 주장이 진리라고 믿었다. 4원소설은 2000년 이상 세상을 지배한 ‘표준모형’이었던 셈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20세기에 들어와 인류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이 모두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물론 18~19세기에도 일부 화학자들이 ‘원자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실제로 유용한 개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원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실험을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역할이 컸다. 매우 작은 입자들이 액체 위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이 다름 아닌 원자의 충돌에 의한 효과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바람이 부는 것이 실은 공기 입자의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물이 끓는 현상은 물 입자가 액체에 묶여있던 고리를 끊고 달아나는 현상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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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유령이 된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물리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주사선 터널링 현미경(STM) 같은 도구를 이용해 금속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금속을 이루는 입자들이 대단히 규칙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구조 덕분에 금속은 전기가 잘 통하면서 동시에 반짝반짝 빛을 내게 된다. 나뭇잎이 초록빛을 띠는 이유는 나뭇잎 속에 초록색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입자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고, 맑은 가을 하늘이 파란 빛을 띠는 이유는 공기 입자들과 충돌한 뒤 퍼져나가는 빛 입자들이 대부분 파란색에 해당하는 파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자론’은 우리 주변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이해하는 데 이미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류가 발견한 원자는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원자의 개념인 ‘깨지지 않는 입자’와는 차이가 있다. 원자 자체가 구조를 가진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에 열을 가했을 때 나타나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물리학자들은 수소 스펙트럼이 예상과 달리 아주 독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양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켰을 때 붉은색부터 보라색까지 연속적으로 나뉘는 것과 달리 수소가 내는 빛은 몇 가지의 특정한 색깔만 나타났다. 이 빛에 해당하는 파장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파장 분포가 매우 규칙적이었다.

수소 스펙트럼에 나타난 특징을 처음 성공적으로 설명한 학자가 바로 닐스 보어다. 그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는 수소가 실은 양성자로 불리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있는데, 특별한 각운동량에 해당하는 궤도로만 전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자가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다. 원자 내부 구조의 발견은 자연의 원리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양자역학’으로 향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있는 이유

1990년에 개봉한 영화 ‘사랑과 영혼’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남자가 그의 연인과 나누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유령이 된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쓰다듬어 보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가 커피 컵을 들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일상사가, 그에게는 꿈에 그리는 일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각종 도구를 사용하고 가족, 연인과 사랑을 나눠 왔지만, ‘어떻게’만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 출발점은 아마도 “과연 원자핵은 쪼갤 수 있는 물질의 마지막 단위일까”라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1919년 핵 속에 양전하를 띤 입자가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양성자의 존재가 드러났다. 1932년 제임스채드윅은 원자핵 속에 전하가 없는 새로운 입자도 함께 들어있으며, 이들은 음전하를 띤 전자를 내보내면서 양성자로 변환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중성자가 발견된 것이다.

1950~1960년대를 지나며 물리학자들은 원자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1968년 전자를 원자핵에 충돌시키는 ‘깊은 비탄성 산란 실험’으로 핵의 구조를 들여다본 결과, 핵 속에서 더 작은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쿼크다. 쿼크는 19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머리 겔만이 1940년대 후반 발견되기 시작한 많은 핵입자(하드론)들을 분류하면서 새로 제안한 6개의 입자다. 인류는 19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원자의 구조와 핵 속에 작용하는 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결국 ‘만진다’는 것은 쿼크가 만드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진 원자가 또다른 원자와 서로 만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원자는 핵을 전자가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양으로 볼 수 있는데(양자역학에 따르면 그렇다!), 이때 한 쪽 구름이 다른 쪽 구름을 만나면 같은 극성의 전기끼리 서로 밀어내는 전자기 상호작용(전자기력)에 의해서 서로 밀쳐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원자 하나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지는 손과 물체 양쪽의 모든 원자들에 작용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는 ‘만질 수’ 있게 된다. 유령이 원자로 이뤄져있지 않다면, 당연히 전자기 상호작용이 없으니 만질 수 없을 것이다.
 

원자핵과 에너지, 그 필연적 만남

원자핵의 구조가 밝혀짐과 동시에 물리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힘’이다. 전기적으로 같은 극성을 가진 물질은 서로 밀어낸다는 게 전자기학 법칙이다. 그런데 양성자는 이 법칙을 거슬러 뭉쳐 있다. 이는 전자기 상호작용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 중성자가 붕괴하면서 전자와 양성자로 바뀌는 현상도, 이를 유발하는 새로운 힘이 있어야만 했다. 바로 ‘강력(강한 핵력)’과 ‘약력(약한 핵력)’이다. 이렇게 자연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힘의 정체가 베일을 벗기 시작했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핵(원자력)에너지가 인류 역사에 등장했다.

화석연료로부터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화력발전소와 달리, 핵발전소에서는 핵이 연쇄적으로 분열하는 과정에 서 발생하는 질량차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뽑아내 사용한다. 여기서 질량이 에너지로 변할 수 있는 것은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E=mc2) 덕분이다. 핵이 연쇄적으로 분열하는 과정(체인 리액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성자가 우라늄 등 방사성 물질과 계속해서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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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이 관여하는 핵분열은 핵폭탄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기 전(왼쪽)과 후(오른쪽)를 비교한 사진.
도시가 폐허가 됐다.

표준모형, 그리고 그 너머

다시 김 대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무언가를 만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몸과 사물을 이루는 원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 상호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핵 주위를 둘러싼 전자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든 토대는 원자핵을 유지시키는 강력과 약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약력과 전자기력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현대적인 의미의 표준모형이다.

놀라운 점은 표준모형이 형성되는 과정이, 실험적 발견과 이론적 예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때로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힘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었고, 반대로 힘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입자가 실제 발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복됐다. 강력과 약력을 매개하는 글루온(g)과 W, Z 보존 같은 입자들이 이런 과정에서 발견됐다.
 

표준모형을 현재의 모습으로 써내려간 이론물리학자는 스티븐 와인버그다. 그는 1967년 발표한 논문에서 ‘아이소스핀’과 ‘하이퍼전하량’이라고 부르는 핵자의 양자수(입자의 특성)가 결합한 뒤 결국 낮은 에너지에서 전자기력과 약력으로 분화한다는 놀라운 구조를 밝혀냈다. 그가 이 과정에 ‘힉스 입자’가 관련된 메커니즘을 도입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이미 45년 전부터 힉스 입자가 발견되리라 예측했다. 실제로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 실험에서 힉스 입자의 흔적을 발견했고, 지금은 힉스 입자의 자세한 성질을 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전자와 비슷하지만 훨씬 무거운 입자들도 발견됐다. 소위 뮤입자(뮤온)와 타우입자(타우온)로 불리는 입자들이다. 이들은 약력을 통해 중성미자라는 매우 가벼운 입자와 상호작용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표준모형은 쿼크와 경입자들(전자, 뮤입자, 타우입자와 중성미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잘 설명한 이론이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이들 입자들은 힘을 나눠주는 입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끌어당기거나 밀쳐내기도 하고,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 상호작용은 빛 입자(광자)가 전하를 띤 입자들 사이에 오고가며 운동량을 전해주면서 발생한다. 서로 당기는 방향으로 운동량을 전달하면 인력이 발생하고, 그 반대의 경우 척력이 생긴다.

아인슈타인은 노년에 자신이 완성한 중력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는 더 큰 이론적 틀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연계의 힘들 중 특정한 두 개만을 통합할 목적이었으니 애초에 방향이 잘못됐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이론에 도달하지 못한 지금 결론을 내리기엔 성급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리학의 역사를 큰 눈으로 바라보면 통합과 일반화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 이전에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 현상으로 보였던 자기 현상과 전기 현상 그리고 광학 현상을, 전자기학으로 통합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19세기 맥스웰 등의 노력으로 명확해졌다. 그 이전에는 뉴턴이 지구상에서의 물리 현상은 결국 천체의 현상과 같다는 만유인력 법칙을 밝혔다. 그리고 와인버그는 표준모형을 통해서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약력)을 보다 통합적인 약전자기이론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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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표준모형은 매우 아름다운 대칭성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정밀도의 이론적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표준모형의 대칭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몇 년 연구를 해야 할 정도로 어렵지만, 한번 깨달으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의 4가지 힘, 즉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강력을 결국에는 통일된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의 세기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욱 강해지는데, 매우 가까운 거리에 이르면 결국 전자기력이나 핵력 등과 크기가 거의 같아질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힘의 세기가 비슷해지는 지점 근처에서 힘의 통일도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표준모형을 넘어서기 위해 더 많은 실험과 더 깊은 이론적 성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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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인류 최고 이론을 향한 도전 표준모형
Part1.표준모형이 지배하는 일상
Part 2.커피잔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보다
Part 3.‘표준모형 너머’를 꿈꾸다
Part 4.그들은 더 완벽한 우주이론을 꿈꾼다
Part 5.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 인터뷰 “‘최종 이론’ 찾을 때까지 탐구 멈추지 않을 것”

 

 

글 : 박성찬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동아 2016년 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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