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ech] 바이오 기업 ‘테라노스’ 논란

피 한방울로 250개 병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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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한 방울로 250여 가지 검사를 해준다. 주삿바늘도 필요 없고, 가격도 기존 검사의 10분의 1이다. 거짓말 같지만 실리콘밸리의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회사가 현재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다. 덕분에 테라노스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이 됐다. 하지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테라노스의 기술이 과장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테라노스의 신화는 위협받고 있다.


바이오 기업 테라노스는 비밀스러운 회사다. 보안유지를 위해 특허 출원이나 논문 출판을 거의 하지 않는다. 2003년에 설립됐지만 CEO인 엘리자베스홈즈는 11년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테라노스는 현재까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기업평가가치가 무려 90억 달러 (약 10조5000억 원)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렇게 성공한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테라노스는 어떻게 유니콘이 됐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홈즈와 테라노스는 제 우상이었습니다.”

스타트업 운영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김효기 셀레믹스 대표가 테라노스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꺼낸말이었다. 셀레믹스는 2011년 창업한 국내의 바이오스타트업이다. “테라노스는 나노컨테이너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튜브에 혈액을 옮겨 검사를 진행하는데, 나노컨테이너에 혈액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회사가 워낙 알려진 게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 안에 혈액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계산해봤습니다. 어림잡아 0.1mL 정도 들어가더군요. 보통 병원 검사의 100분의 1에서 500분의 1 수준입니다. 이렇게 적
은 양을 가지고 그 많은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테라노스에는 세 가지가 없다. 우선 주사가 없다. 주사 대신에 손가락 끝을 바늘로 살짝 찔러 혈액을 채취한다. 홈즈는 테드 강연에서 “주사와 피를 병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혈액을 채취할 때 이용하는 길쭉한 혈액 튜브도 없다. 보통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할 때 사용하는 10~50mL 튜브 대신에 0.1mL 정도의 혈액을 담을 수 있는 ‘나노컨테이너’를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의사도 없다.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고객의 샘플을 채취할 수 있다. 테라노스는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인 ‘월그린’과 제휴를 맺어, 고객이 동네 약국에 들러 손끝에서 피 한두 방울을 뽑으면 혈액 검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간편함에 테라노스는 세 가지를 더했다. 첫 번째는 종합 건강검진이다. 다이어트, 암 진단 등에 특화돼 있던 맞춤형 진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종합 건강검진을 제공한다. 고객들은 콜레스테롤 수치, 혈당량, 바이러스 감염 여부, 일부 암 등 250여 가지 검사를 테라노스가 개발한 ‘에디슨’이라는 장비로 진행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확성이다. 양은 훨씬 적게 필요하지만 에디슨은 기존 장비만큼이나 정확하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기존의 실험장비와 에디슨 사이에는 정확도의 차이가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테라노스의 진단 서비스는 대형병원에서 실시하는 검사보다 25~90% 가량 저렴하다. 덕분에 높은 가격과 불편함에 건강검진을 꺼리던 이들도 쉽게 자신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홈즈는 테드 강연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원할때마다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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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테라노스가 검사할 수 있는 것은 15개 내외”

하지만 테라노스와 홈즈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테라노스는 보안을 이유로 논문과 특허에 소극적인데,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존 요디니스 교수는 올해 2월에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테라노스가 자신들의 기술을 논문으로 출판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요디니스 교수는 “엘리자베스 홈즈의 이름으로 등록된 특허가 단 두 건뿐이고, 이마저도 진단 기술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며 “검증받지 않은 연구는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라노스의 연구를 스텔스 전투기에 빗대어 스‘ 텔스 리서치’ 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홈즈는 “차후에 데이터를 논문으로 출판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테라노스의 이런 비밀주의는 10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테라노스를 그만둔 직원들의 증언을 폭로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WSJ은 테라노스가 250여가지 검사 중 에디슨을 통해 소량의 샘플로 검사하는 것은 15개 내외고 나머지 검사들은 기존의 병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검사를 진행한다고 폭로했다. 기존 장비를 이용해 검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테라노스가 주장한 피 몇 방울로는 제대로 된 검사를 할 수 없다. 최소 용량이 있는 기존 검사를 위해 혈액을 희석시켜야 하기 때문에 오차가 커진다. 결과의 부정확함을 설명하기 위해 WSJ는 애리조나주의 한 여성의 검사 결과를 예로 들었다. 이 여성은 테라노스에서 여섯 가지 부분에서 이상 진단을 받고 깜짝 놀라 병원에 방문했지만, 병원에서는 모두 정상 진단을 받았다. 홈즈는 다음날 바로 사실이 아니라며 WSJ의 보도를 반박했지만 그녀와 테라노스에 대한 의심은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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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스타트업의 딜레마

일각에서는 핵심 기술의 보안유지가 스타트업의 특성이라며 테라노스를 옹호하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김효기 대표는 “시약 조성, 실험 순서, 소프트웨어 등은 특허를 출원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하드웨어 설계나 공정의 순서는 공개해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전자의 경우는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경쟁 회사가 따라하는 것이 쉽고 이를 제재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진단에 필요한 단백질을 잘 검출하는 용액의 조성을 따라 하더라도 상대가 이를 베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하드웨어 같은 커다란 증거가 남기 때문에 특허 소송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아주 적은 양으로 정확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미세유체를 조절하는 하드웨어기술이 필수적인데, 만약 이런 기술이 있다면 특허등록을 해도 손해를 볼 것이 없습니다. 특허와 논문은 투자 유치와 기업 홍보에 큰 도움이 되니까요.”

또 다른 바이오 스타트업인 툴젠의 김석중 연구소장은 투자 단계에 의문을 품었다.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했는데, 기술을 왜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는 입장에서, 이 사건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벤처투자만 해도 투자 단계에서 자문을 선임하거나 신뢰할만한 전문가의 의견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연구시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이미 필수절차다. 김효기 대표는 “수억 원을 투자하는 입장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비밀 유지와 투자 유치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장하는 헬스케어 시장의 그림자

이제 공은 홈즈와 테라노스쪽으로 넘어갔다. 비밀주의를 포기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혁신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진실공방과는 별개로 이번 기회에 헬스케어 시장 전반의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지난해 전세계 시장 규모만 45조 원이었다. 그중 테라노스 같은 진단 업체들은 편리함, 낮은 가격, 빠른 속도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건강과 직결된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빠른 속도와 편리함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캐나다 토론토대 엘레프테리오스 디아만디스 교수는 올해 4월 학술지 ‘임상화학과 실험실약물’에 이런 간편한 진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에서 간편한 절차가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신부전증 의심 환자가 신장 건강의 기준인 혈청크레아틴의 농도를 검사했다고 가정해보자. 테라노스 검사결과 혈청크레아틴 농도가 110㎛ol/L였고, 검사결과에 함께 표시되는 ‘정상 농도’는 50~115㎛ol/L다. 환자는 이를 보고 안전하다고 자가진단을 할 것이다. 하지만 숙련된 의사라면 환자의 이전 검사결과를 확인할 것이다. 만약 환자가 이전에도 80㎛ol/L 이상의 높은 수치를 기록한적이 있다면, 환자의 신장 기능이 50%이상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 디아민디스 교수는 “진단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나 편리함이 아니라 정확성”이라고 말했다.

글 : 송준섭 기자 joon@donga.com
과학동아 2015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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