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 오지 연구원이 된 동물들

  • 확대
  • 축소

‘안성천 다리 밑이라….’ 다리 밑에서 만나자니. 무슨 밀수 현장도 아니고…. 이런 장소에서 취재원을 만나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주소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보니 ‘안성천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가 무려 네 개였다. 취재원으로부터 위성사진이 담긴 지도를 받았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네 개의 다리 중 한 곳이었다.

11월 5일 오전 9시. 기자는 철새를 잡아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위치추적기를 달아 준 뒤 풀어주는 포획 현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철새를 포획할 때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새들이 꽤 많을 텐데 설마 똥을 맞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곳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성천 다리 밑에서 하늘만 바라본 하루

“철새 등에 스마트폰을 달아 주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안성천교 교각 아래서 만난 한승우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연구원은 철새의 몸에 부착하는 위치추적기를 ‘스마트폰’에 비유했다. 스마트폰처럼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문자메시지로 위치 정보를 전송해 주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철새에게 ‘카톡’을 받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메시지를 받기만 할 뿐 보낼 수는 없다.

철새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다는 이유는 AI 전파를 막기 위해서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집단폐사시키는 AI는 아직까지 전파 경로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길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철새들의 위치와 이동 특성 등을 파악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백 마리의 철새들을 포획해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동시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연구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기자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 봤다. 아직 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좀 이른 시간이라 그렇겠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이날 포획 대상은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로, 일주일 전부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포획 작전이 시작됐다. 4명으로 구성된 포획팀은 안성천 주변에서 철새들의 동태를 파악하며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기자가 방문하기 하루 전(4일)에는 점지해 둔 ‘작전 장소’에 도착해 철새를 잡는 ‘그물포(Canon Net)’를 설치해 뒀다. 그물이 펼쳐지며 새를 사로잡는 포획도구다. 마지막으로 철새들이 좋아하는 볍씨를 뿌려 놓고 하루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복해 있기를 6시간째. 철새들은 이따금씩 공중을 선회할 뿐 포획 지점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취…, 취재할 수 있겠지?’ “철새들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오히려 다가오지 않습니다.”

포획팀 임은홍 연구원은 마치 정찰비행을 하는 것처럼 공중을 선회하는 흰뺨검둥오리를 바라보는 기자에게 주의를 줬다. 철새들도 적군의 동태를 살피듯 포획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낚시꾼들이 물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철새가 다가오지 않을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 것이다. 한승우 연구원은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며 “철새 포획 과정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기자는 새를 잡지 못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옷이 더러워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기자 인생 6년 만에 처음 경험한 취재 실패였다.
 
2012년 2월 경남 고성독수리 포획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멸종위기종인 독수리의 생태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도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우리 철새 이동경로 확인한다

비록 철새를 직접 포획해서 위치추적기를 부착하는 과정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기자는 포획팀으로부터 위치추적기의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연구팀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멸종위기종인 독수리와 저어새 등 400마리 이상의 철새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왔다. 포획을 하는 장소는 전라북도를 가로지르는 만경강과 경기 안성천 등 전국 2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몽골에서도 독수리와 재두루미, 큰고니 등의 철새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3년 동안 철새들의 움직임을 모니터링 한 결과, 이전에 몰랐던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겨울을 지낸 청둥오리가 중국 만주나 몽골로 돌아갈 때 지금까지는 중간기착지에 며칠을 머물며 휴식을 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청둥오리 중에는 하루 만에 남한에서 압록강까지 날아가는 개체도 있었다. 다른 개체들도 2~3일 내에는 한반도를 벗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성과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이동경로와 서식지를 명확하게 밝혀낸 것이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국내에서 태어난 저어새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이동 경로를 추적해 2014년 10월 발표했다. 이전까지 저어새는 주로 제주도와 대만, 일본, 홍콩 등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확인한 결과 중국 상해 인근에도 서식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 경로도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세 달 가량 머문 뒤 다시 중국으로 내려가는 형태였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가 개발한 위치추적기는 무게가 27g 정도밖에 안 된다. 때문에 가창오리 같은 작은 종을 제외하면, 동물의 몸에 무선추적기를 달 때 국제기준으로 삼는 ‘몸무게의 3% 미만’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 특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와 함께 휴대전화 기지국 통신망도 사용하기 때문에 위치를 알려주는 오차범위가 GPS만을 이용했을 때(50m 안팎)보다 5배 정밀(10m 안팎)하다. 게다가 가격도 1000만 원을 호가하던 기존 장비에 비해 5분의 1 수준(180만 원)으로 저렴하다.

한승우 연구원은 “위치추적기술이 없거나 너무 비쌌던 과거에는 철새에 가락지를 끼워서 어디에 있던 철새가 어디서 발견됐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며 “기술 발전 덕분에 조류의 상세한 이동경로와 서식지 등 생태 특성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저어새. 추적 결과 중국 상해 등 새로운 서식지와 이동 경로가 밝혀졌다.


남극 펭귄 하루 일과도 꼼꼼히 기록

동물추적연구는 1990년대 이후 기술 발전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위치추적뿐 아니라 각종 센서 기술이 더해져 연구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온도와 고도, 가속도, 물에 사는 경우 수심 등을 측정해서 생물의 행동방식까지 연구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생태과학연구실 연구팀은 2014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남극 세종기지 인근에 서식하고 있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 30마리를 잡아 일일이 ‘자동기록기(logger)’를 붙였다. 자동기록기에는 종류에 따라 위치와 수심, 온도, 가속도 측정 센서는 물론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한 카메라가 달려있다. 1초에 한 번 꼴로 펭귄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정보는 그야말로 ‘빅데이터’다. 한 마리가 하루 동안 기록한 영상만 해도 10시간이나 된다.

연구진은 올해 초 한국에 돌아온 뒤 기록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현재까지 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 분석 결과 턱끈펭귄은 세종기지에서 30km 떨어진 바다까지 나가는 반면 젠투펭귄은 활동 반경이 20km 정도로 비교적 좁았다. 하지만 잠수해 내려가는 깊이는 젠투펭귄이 최고 200m로, 150m에 그친 턱끈펭귄보다 더 깊었다. 연구팀은 가속도계와 물속 동영상 정보를 분석하면 펭귄들이 물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떻게 먹이를 사냥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펭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이처럼 상세하게 연구하는 목적은 뭘까. 생태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구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 위해서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서식하는 남극대륙은 지구상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빨리 받는 곳이다. 특히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군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기후변화가 먹이사슬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쉽다.

남극 생물 중에서도 최근 턱끈펭귄의 개체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젠투펭귄은 오히려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이 두 종의 생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연구된 것이 없다. 연구팀은 10년 동안 이들의 생태를 추적해 볼 계획이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온난화에 대한 두 종의 대처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자동기록기의 자료를 이용해 두 종을 비교연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기록기를 부착한 젠투펭귄. 털에 붙인 것이라 몸에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젠투펭귄이 물속에서 다른 펭귄(➋,➌)과 먹이인 크릴()을 촬영한 모습(➋~➍번은 2008년 일본 국립 극지연구소 아키노리 다카하시 박사팀 연구 논문에서 발췌).
 
 
동물 의사소통 엿보고, 오지 연구원으로 투입

최근에는 추적장치를 이용해 동물의 의사소통방식을 연구하거나, 사람이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동물을 ‘연구원’으로 투입시키는 방식까지 시도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학및생물학연구소 다미안 페린 박사팀은 위치추적기를 이용해 아프리카 개코원숭이들이 이동할 때 어떻게 이동방향을 결정하는지 연구한 결과를 ‘사이언스’ 6월 19일자에 게재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개코원숭이처럼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동물 집단에서 무리의 의사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복잡한 집단의 형성과정을 알기 위해 꼭 연구해야 한다.

페린 박사팀은 케냐 음팔라연구소에 있는 개코원숭이 25마리에 매초 위치를 기록하는 목걸이 형태의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각 개체 사이의 거리를 시간에 따라 분석한 결과, 지도부 격인 특정 원숭이 몇 마리가 무리의 이동 방향 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이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무리 내에서의 계급이 높다고해서 이동 방향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의사결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지도부 원숭이들이 향하는 방향의 각도 차이가 90° 이내였을 때에는 서로 타협해서 방향을 조정하지만, 차이가 90° 이상일 때는 의견 대립을 보이면서 이동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의견이 나뉠 경우 다수가 선택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무리가 우두머리 한 마리의 독재가 아니라 지도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움직이며, 다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해양 분야에서는 동물이 조사원이다. 특히 고래와 바다표범 등의 생물에 원격송수신장치(텔레메트리)를 부착해 온난화로 나타나는 극지방의 환경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동물 연구원을 통해서 얻은 자료는 생각보다 정확하다. 약 30년 가까이 다양한 정보가 축적돼 왔을 뿐 아니라 연구에 투입된 개체수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평과 수직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바닷속 환경을 측정하기 때문에 해빙(海氷) 면적 등 공간적인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기도 쉽다. 스웨덴 스톡홀름대 파비앙 로케 박사팀은 국제 연구진이 10년 동안 바다표범 수백 마리에 원격송수신장치를 부착해서 얻은 남극해 일대의 깊이, 수온, 전기전도도 정보 16만500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평균 해빙 면적을 경도별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 결과를 무인측정자료와 비교했더니, 바다표범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가 28% 가량 더 정확했다.

해양동물 추적연구는 지난해에만 약 140건의 연구 성과가 발표되는 등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동물추적연구 분야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다. 철새추적연구도 AI가 아니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정도다. 경제적인 이윤이나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면 연구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한승우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은 자국에 서식하는 모든 새들의 이동경로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새들의 이동경로는 대부분 일본 등 해외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안성천에 다녀온 뒤부터는 하늘을 나는 새나, 거리를 지나다니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예사롭지 않다. 저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혹시 위치추적기를 달고 있지는 않을까. 동물들의 사생활이 궁금해진다.

글 : 경기 안성=최영준 기자
과학동아 2015년 12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