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 SF가 사랑한 이름, 상대성이론

상대성이론 100년사 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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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1일. 1985년 개봉한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타임머신 자동차의 시계에 찍힌 날짜다. 당시 상상했던 30년 뒤의 미래가 바로 올해인 2015년이다. 시간여행은 우주여행과 더불어 SF의 단골 소재다. 시간여행은 과학 법칙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상대성이론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사실 상대성이론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SF의 탄생에 도움을 주었다. 상대성이론의 시간 늦어짐 효과와 쌍둥이 효과를 이용한 작품은 꽤 많다. 대표적으로 L. 론 허버드의 ‘미래로 돌아가다(1954)’와 로버트 하인라인의 ‘시간의 블랙홀(1956)’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다.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1967)’, 진 울프의 ‘짧은 태양 이야기(1999-2001)’도 걸작이다. 조 홀드만의 ‘영원한 전쟁(1972-1975)’은 상대론적 시간여행의 충격을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미군이 겪었던 문화충격에 비유해 잘 묘사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이동할 수 있다. 반면 시간에선 한 방향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결정적 차이다. 그러나 이런 직관은 어디까지나 상대성이론 이전의 물리학 법칙에 따른 것이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4차원 시공간의 부분임을 밝혔다. 나아가 시공간이 물질과 얽혀 제 나름의 독특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직관을 벗어난 상대성이론은 새로운 상상의 원천이 됐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12몽키즈’가 특히 흥미롭다. 1995년에 나온 이 영화는 인류 대부분이 죽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지하에서 살아가는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테러리스트가 치료약이 없는 변종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렸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에게 시간여행을 시킨다. 변종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으로 돌아가 인류를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면서.

그런데 영화처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게 가능할까. 물리학 법칙과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널리 알려진 ‘할아버지 역설’은 일종의 귀류법(일종의 간접증명법으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결론이 나옴을 보이는 방법)이다. 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에서 내 할아버지를 죽게 만든다면 내 자신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모순적으로 애초에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시간여행은 가능하지 않다.

스피어리그 형제의 영화 ‘타임패러독스’는 이 모순을 피해간다.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를 바꿔도 내 자신에게만 변화가 생긴다고 설정하면 모순이 사라진다. 시간여행도 약간의 균열이 허용될 수도 있는 짧은 기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높혔다



할아버지 역설을 피하는 방법

사실 할아버지 역설이 역설로 보이는 것은 시간을 이른바 ‘영원주의’에 바탕해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원주의는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먼 과거로부터 먼 미래까지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마련돼 있고, 이것이 차근차근 펼쳐지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는 공간에서 왼쪽과 가운데와 오른쪽이 나란히 있는 것처럼 모두 존재108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그 중 한 순간만을 인지하게 된다.

이와 대비되는 관점이 ‘현재주의’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일 뿐 아니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미래는 그 기억들로부터 만들어진 귀납적 추론에 따른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정말 존재하는 것은 현재일 뿐이다. 만일 현재주의의 관점을 지지한다면, 할아버지 역설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사건을 바꾸더라도, 그로부터 새로운 현재들이 나타나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언뜻 봐도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유아론적 접근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 ‘가능주의’이다. 과거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정말 존재한다. 기억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허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때 사건들은 정말로 한 때나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미래는 말 그대로 오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결정돼 있지 않다. 지금의 어떤 계기들을 통해 미래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을 ‘자라나는 블록 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는 실재하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녹아있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사건을 바꾸게 되면 ‘자라나는 블록 우주’에 가지가 생겨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세상은 모두 대등하게 진짜 세상이다. 시간에 대한 가능주의의 관점은 요즘 양자역학의 여러 세계(다세계)해석 그리고 초끈 이론의 덧차원과 평행우주의 개념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간여행과 우주여행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리나라에서 1000만 관객몰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야기 전개가 복잡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난해한 영화를 즐겼다. 인터스텔라에서 특기할 것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제작 책임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킵 손은 영화 ‘콘택트(1997)’에 자문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는 맨 처음 대본 작업부터 미장센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 기반을 두고 적극적으로 자문했다. 거대한 블랙홀 가르간투아의 환상적인 모습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을 일일이 풀어서 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 블랙홀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터스텔라’에는 우주선 인듀런스 호가 우주정거장에 도달한 뒤 가장 먼저 회전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을 회전시키면 중력이 있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긴다. 중력이 원심력처럼 좌표계의 가속으로 생기는 가짜 힘임을 잘 보여준다.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우주선이 회전하는 장면은 1968년에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나타난다.

시간여행 못지않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것이 바로 우주여행이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인류의 오래된 염원이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에서 “나는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멈추지 않는 근질거림으로 고통받는다. 나는 금지된 바다를 항해하여 이방의 해안에 착륙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염원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칼 세이건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과학소설이라고 말했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작품에 이런 염원이 담겨있다. 케플러는 1611년 무렵 ‘솜니움’(라틴어로 꿈)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다. 아이슬란드의 한 소년과 마녀인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악마는 이들에게 레바니아라는 이름의 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곳은 다름 아니라 달이었다. 소설에는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잘 그려져 있다.

우주여행 하면 떠오르는 게 웜홀이다. 매들렌 렝글의 ‘시간의 주름(1963)’은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을 잘 묘사하고 있다. 클리퍼드 시맥의 ‘태양의 고리(1953)’, 고마츠 사쿄의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1965)’, 아이작 아시모프의 ‘신들 자신(1972)’, 밥 쇼의 ‘별들의 소용돌이(1976)’, 프레테릭 폴의 ‘양자고양이의 귀환(1986)’, 잭 윌리엄슨의 ‘시간을 노래하는 사람들(1991)’, 스티븐 백스터의 ‘질리 연작(1994-2003)’, ‘다양체’ 3부작(1999-2002), 댄 시몬즈의 ‘일리움/올림푸스 2부작(2003-2005)’, 이영수의 ‘토끼굴(2006)’ 등은 다른 세계의 모습과 그곳으로 가는 여행을 그린 작품들로서 꼭 읽어보아야 할 SF다.
 



일반상대성이론과 SF

SF는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해야 할까? 킵 손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다음 두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첫째, 확립된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과감한 사변은 과학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며,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이론 중에는 SF 수준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꽤 있다는 점도 되새길만하다. 쥘 베른이나 H. G. 웰즈, 필립 K. 딕의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실제 과학연구의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인 1895년, 웰즈는 ‘타임머신’에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는 이후 상대성이론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상대성이론은 SF에 참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념,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 시간여행의 가능성, 새로운 우주여행 방법 말이다. 역으로 웜홀이나 다중우주와 같은 SF의 단골소재는 물리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연구주제를 택할 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SF는 과학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동행하고 있다. 올 가을엔 위에서 소개한 영화나 소설을 한 편 잡아보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재영
에디터 : 변지민 기자
과학동아 2015년 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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