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 전쟁의 포성 속에서 우주의 비밀에 접근하다

상대성이론 100년사 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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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6월 베를린에서 열린 왕립 프로이센 과학학술원 학술대회에 선 아인슈타인의 마음은 무거웠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료가 한 달 전 4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천천히 추도사를 읽어내려 갔다. 카를 슈바르츠쉴트를 기리며.
 
 
1915년 11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이론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아직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물리학 이론은 실제 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뉴턴의 역학으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뉴턴 방정식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 풀어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현상을 설명하려면 중력장 방정식을 실제로 풀어내야 한다. 이 일을 처음 해낸 것은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보다 6년 일찍 태어난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쉴트였다. 슈바르츠쉴트는 16살이 되기 전에 천체역학 분야의 논문 두 편을 발표할 만큼 어릴 적부터 뛰어난 영재였다. 23살에는 푸앵카레 이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8살에 괴팅겐대의 교수가 되면서 힐베르트와 민코프스키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나중엔 괴팅겐대 천문관측소의 첫 소장을 맡기도 했다. 학계에서 대단히 인정받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이 젊은 학자에게 가혹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그래야 할 의무가 없었는데도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물리학자로서 포병부대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눈보라치는 동부전선과 우정의 전쟁

1915년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동부전선에 투입된 슈바르츠쉴트는 이제 막 출판된 프로이센 과학학술원 회보를 손에 쥐었다. 거기에는 아인슈타인이 11월 18일에 발표했던 짧은 논문이 실려 있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한 수성 근일점 이동의 설명’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약 보름 전에 발표했던 논문 ‘일반상대성이론을 위하여’에서 제안한 이론을 기반으로, 수성 근일점의 세차운동이 1세기 동안 43초라고 계산한 논문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계산은 자신이 제안한 방정식을 완전히 풀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사실 그 방정식은 풀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의 풀이를 온전히 구하지 않고 대신 어림을 해서 가장 영향이 큰 항만 남기는 방식으로 수성의 근일점 이동을 계산했던 것이다. 슈바르츠쉴트는 그 논문의 계산에 틀린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12월 22일에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풀이를 적어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중력이론을 검증할 수 있도록 수성의 근일점 문제를 스스로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산한 1차 어림의 결과가 선생님의 계산결과와 달라서 당황했습니다. (중략) 그렇게 추상적인 아이디어로부터 수성 근일점 이동의 불일치 부분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곧 선생님이 저와 우정의 전쟁을 하신다면 선생님의 이상의 땅에서 한가로이 거니실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선의의 경쟁이긴 하지만 이쯤 되면 거의 선전포고 같은 느낌도 든다. 아니나 다를까, 아인슈타인이 ‘우정의 전쟁’에 답하기도 전에 1916년 1월 13일에 슈바르츠쉴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른 질점의 중력장’이란 제목의 논문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내 프로이센 과학학술원 회보에 투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논문에는 중력장 방정식을 아주 특수한 경우로 국한시켜 구한 최초의 엄밀한 풀이가 담겨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보고 “나는 문제의 풀이가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슈바르츠쉴트는 2월 24일에 이를 발전시킨 논문 한 편을 더 투고했다. 그러나 동부전선에서 얻은 희귀한 피부병 때문에 그해 5월 11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중력장 방정식을 풀기 어려운 까닭

엄밀한 풀이는 특히 이론물리학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중력장 방정식을 비롯해 물리학에서 다루는 방정식은 여러 가지 물리량 사이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 방정식만으로는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특히 뉴턴 방정식이나 맥스웰 방정식과 같이 가장 근본적인 방정식들은, 물리량을 나타내는 함수와 그 함수의 도함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른바 미분방정식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은 까닭은 중력장 방정식이 미분방정식 중에서도 더 풀기가 어려운 비선형 연립 편미분방정식이기 때문이다. 우선 편미분이라는 것은 독립변수가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나타내는 4개의 독립변수가 있기 때문에 미분도 네 가지가 있고 이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풀이로 구해야 하는 함수는 거리함수 텐서라 부르는 10개의 함수다. 이렇게 구해야 하는 함수가 많아지면 방정식의 개수도 늘어나기 때문에 연립방정식이 된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의 난해함의 핵심은 바로 비선형이란 점에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미분방정식들은 구해야 하는 함수만 들어 있을 뿐이고 그 함수의 제곱이라든가 그 함수에 다시 삼각함수를 적용한 꼴 등이 없기 때문에, ‘선형’(직선과 닮은 일차함수)이라고 한다. 선형 미분방정식은 어떻게든 몇 개의 풀이를 찾아내면 일반적인 모든 풀이를 찾아낼 수 있다. 반면 비선형 미분방정식은 풀이 몇 개를 찾아내더라도 일반적인 다른 풀이를 찾아내기 어렵다. 카오스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비선형 동역학에서처럼 풀이의 전체적인 변화 양상도 예측불허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슈바르츠쉴트의 엄밀한 풀이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3월 20일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을 ‘물리학 연보’에 투고했다. 총 4부로 이뤄져있는데, 이론을 여러 현상에 적용해 설명하는 4부의 마지막 절에서 슈바르츠쉴트의 엄밀한 풀이를 인용했다. 그 전에 도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나 태양 주위에서 별빛이 휘는 현상, 중력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이라는 예측을 계산하긴 했다. 하지만 이 계산들은 모두 엄밀한 풀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을 갖다 붙여 1차 어림으로 한 것이었다. 수성의 근일점 이동 중에서 뉴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값은 100년 동안 45±5초(현재의 관측값은 42.98±0.04초)였는데, 1초라는 매우 미세한 각까지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풀이가 있어야 했다.


슈바르츠쉴트의 풀이가 빛을 발하다

슈바르츠쉴트 이후로도 1940년대까지 드로스테(1916-17), 라이스터(1916), 노르트슈트룀(1918), 코틀러(1918) 등이 엄밀한 풀이를 속속 발표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엄밀한 풀이를 반드시 적용해야 할 만큼 중력이 강한 물리적 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엄밀한 풀이나 1차 어림이나 비슷하다. 슈바르츠쉴트의 풀이와 같은 엄밀한 풀이가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곳은 중력이 매우 강해서 1차 어림을 할 수 없는 경우다. 우주론이나 퀘이사가 그런 대표적인 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가장 각광을 받은 영역은 우주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17년에 이미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우주의 탄생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프리드만(1922, 1924), 드 지터(1932), 톨만(1934), 로버트슨(1929, 1935, 1936), 월커(1936) 같은 과학자들이 우주론에 적용할 수 있는 시공간 풀이를 상세히 밝혔다.

1963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마르텐 슈미트는 빛띠 스펙트럼이 빨간색 쪽으로 매우 크게 치우쳐 있지만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놀라운 천체를 발견했다. 항성처럼 빛이나 전파를 내지만 항성은 아닌 이 천체는 준성(QSO, quasi-stellar object) 또는 퀘이사(quasar)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매우 무거운 활동성 은하핵으로 추측하고 있다. 준성이나 X선 발광성 표면의 중력은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의 엄밀한 풀이가 꼭 필요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존 아치볼드 휠러의 연구팀과 영국의 허만 본디가 이끄는 연구팀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물리학계의 화두로 재등장시켰다. 이후 천문학상의 관측결과를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해 설명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중력붕괴, 특이성, 블랙홀의 시공간 구조 등이 활발하게 연구됐다. 1950년대까지도 일반상대성이론은 현실과는 큰 관련이 없는 수학적인 이론으로 여겨졌고,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실질적인 예측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일반상대성이론은 제 발로 선 훌륭한 물리학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김재영_zyghim@kaist.ac.kr​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물리학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서울대 강의교수, 이화여대 HK연구교수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있고, 역서로 <비전공자를 위한 일반상대성이론> <과학한다는 것>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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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재영 zyghim@kaist.ac.kr
에디터 : 변지민 기자
과학동아 2015년 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