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빨간약, 진짜 만병통치약이었어?

에볼라마저 잡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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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상자를 열어보자. 어김없이 빨간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약품명인 ‘포비돈 요오드’보다, 별명인 빨간약이 친숙할 만큼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소독약이다. 요오드 수용액의 적갈색 덕에 빨간약이란 예쁜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소소하게 상처 소독에만 쓰는 줄 알았던 이 약이 에볼라 바이러스도 잡는다는 사실! 독일 마르부르크대와 다국적 제약회사 먼디 파마가 함께 포비돈 요오드에 15초간 에볼라를 담가 놓는 실험을 했는데, 바이러스가 99.99% 이상 줄어 들었다고 3월 25일 발표했다. ‘빨간약 다시 봤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빨간약은 진짜 만병통치약이었던 걸까?
 


강력한 살균력 가진 요오드

뜻밖의 발견처럼 보이지만, 사실 빨간약의 에볼라 바이러스 살균효과는 예상된 결과다. 에볼라처럼 외피막(지질막)을 가진 인플루엔자,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빨간약으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증명돼 있었다. 인체에 깊숙이 퍼진 상태가 아닌, 외부에 노출된 상태에서긴 하지만. 손세정제에 빨간약을 섞으면 이런 외피막보유 바이러스들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다는 의미다(PLUS 참조).

빨간약은 거의 모든 병원체를 죽일 수 있다. 효모, 곰팡이, 균류, 바이러스, 원생동물 가릴 것 없이 강한 살균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베인 상처, 긁힌 상처, 찢어진 상처, 화상, 수포에 응급 처치용 소독제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머리 아프고 배 아플 때 빨간약 바르면 낫는다’는 미신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군대에서는 모든 병을 빨간약으로 해결했다는 전설도…).

빨간약의 무시무시한 살균력은 요오드의 산화력에서 나온다. 요오드는 전기음성도가 가장 높은 17족 할로겐 원소다. 전기음성도가 높다는 건 다른 원소로부터 전자를 잘 뺏어온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산화력(다른 원소를 산화시키는 성질)이 세다고 할 수 있다. 요오드가 미생물을 죽이는 원리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로 시스테인, 메티오닌 같은 아미노산에서 황의 전자를 빼앗아 결합을 깬다. 둘째 아르기닌, 히스티딘, 라이신, 티로신 같은 아미노산에서 질소-수소 결합을 깬다. 이렇게 아미노산 내부의 결합을 깨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효소나 구조단백질이 파괴돼 미생물이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마지막으로 지방산에서 탄소의 이중결합을 깨고 핵산 사이에 끼어들어가 세포벽, 세포막, 세포질을 박살낸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잔혹하고 극악무도한 살인마와 다를 바 없다.


포비돈과 만나 ‘빨간약’이 된 요오드

요오드의 강한 살균력을 소독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1829년 프랑스 파리의 내과의사 장 루골이 처음 발견했다. 그는 요오드화칼륨을 물에 녹여 병원의 의료기기를 살균하는 데 썼다. 루골의 요오드 용액은 1839년 미국으로 건너가, 남북전쟁으로 생긴 부상자의 상처를 소독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그런데 여기엔 단점이 하나 있었다. 환자는 병원균을 피하는 대신 끔찍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요오드가 병원균과 피부세포를 가리지 않고 파괴하며 상처부위를 자극해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자극성 탓에 요오드 용액은 소독제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

요오드가 지금처럼 소독제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건 ‘포비돈’을 만나면서부터다. 합성 고분자화합물인 포비돈은 원래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제외한 액체 성분) 대용액으로 개발됐다. 독일기업 IG파르벤인더스트리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출혈이 심한 환자에게 투여하는 인공혈장 용도로 만든 것이다. 1949년, 미국 산업독극물연구소 허만 셸란스키 박사는 포비돈을 요오드에 섞어 자극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다.

포비돈은 요오드와 수소결합을 한다. 요오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요오드가 한꺼번에 상처부위로 돌진하지 않는다. 폭격기가 목표지점에 폭탄을 하나씩 떨어 뜨리듯, 포비돈이 요오드를 천천히 방출하는 덕택에 자극성이 훨씬 덜하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5년, 셸란스키 박사는 포비돈 요오드를 상품화시킨다. 우리에게 익숙한 ‘빨간약’의 탄생이다.
 



빨간약으로 가글한다고?

포비돈 요오드는 상처에만 쓰지 않는다. 강한 살균력을 이용하면 우리 몸 구석구석 숨어있는 병균을 퇴치할 수 있다. 군대에서 방수·통풍도 안 되는 전투화를 신고 다니다보면 무좀에 걸리기 십상이다. 한번 걸리면 좀체 낫지를 않는다. 빨간약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인정하는 무좀 소독약이다. 무좀균을 직접 퇴치하진 못하지만, 소독에 도움이 된다.

목이 아플 때 스프레이 형태로 만든 빨간약을 목안에 뿌리면 된다. 아데노바이러스, 단순포진, 녹농균 같은 병원체를 죽여 인후염을 막을 수 있다. 바르는 빨간약보다 농도는 훨씬 낮지만 살균력은 우수하다. 구강청정제로 쓸 수도 있다. 어떻게 빨간약으로 가글을 할까 싶지만, 김하연 한국먼디파마 홍보부장에 따르면 “포비돈 요오드에 유칼리유나 박하유를 넣어 역한 냄새가 없고 청량감도 있다.” 실제로 기자가 사용해보니 목구멍을 톡 쏘는 알싸한 느낌이 오래도록 청량감을 줬다.

또 있다. 빨간약은 여성 질세정제로도 쓰인다. 생식기에 기생하는 칸디다 알비칸스(곰팡이)나 트리코 모나스(기생충)를 살균해 질염을 치료한다. 산부인과 수술 전에 소독용으로도 쓰인다. 신생아에게 결막염을 일으켜 눈을 멀게 할 수 있는 임균이나 트라코마 클라미디아균을 죽이는 데도 효과가 있다. 목이 아프면 목에, 발이 아프면 발에, 생식기가 아프면 생식기에…, 빨간약을 뿌리면 된다.



재난 닥치면 빨간약부터 챙겨라


아직 안 끝났다. 빨간약은 재난상황에서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품이다. 미국 ‘야생생존훈련학교’의 창립자이자 생존학 전문가인 코디 런딘이 2011년 쓴 책 ‘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단 한 권의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재난으로 상수 시설이 파괴됐을 때 오염수를 그냥 마시면 살모넬라균과 콜레라균에 전염돼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런딘은 이때 “빨간약을 꺼내라”고 말한다. 진흙이나 플랑크톤 같은 입자성 물질로 탁하게 오염돼 있는 물 1L 정도에 10% 포비돈 요오드 용액 여덟 방울을 떨어뜨린 뒤 30분 정도 기다리면 된다. 요오드는 탁한 물속에 있는 질소화합물과 유기물, 무기물과 쉽게 합쳐져 물을 맑게 한다. 그는 “물에서 요오드의 맛이 느껴진다면 소독이 잘된 것이니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고 말한다.

원전사고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빨간약은 도움이 된다. 핵연료가 붕괴될 때 방사성 요오드가 나오는데, 여기 노출되면 갑상선암에 걸릴 수 있다. 요오드는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갑상선에 쌓이기 때문이다. 방사성 요오드를 막으려면 비방사성 요오드로 미리 갑상선을 채우면 된다. 해조류나 요오드제를 먹는 식으로. 그런데 이마저 없는 상황에선 최후의 수단으로 빨간약을 꺼내자. 기억하고 있겠지만, 빨간약의 주성분은 요오드다. 그리고 피부에 발라도 우리 몸에 조금씩 흡수된다. 방사성 요오드는 반감기가 짧아 몇 개월 후에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화상 위험 없는 최첨단 빨간약


포비돈과 결합해 자극성을 줄이긴 했지만, 요오드는 요오드다. 우리에 갇혀있던 맹수가 튀어나와 사육사를 해치는 것처럼, 빨간약도 때때로 심한 피부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강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팀이 2012년 대한족부족관절학회지에 실은 논문을 보면, 상처부위를 포비돈 요오드로 소독한 뒤 이틀간 지혈대를 덮은 환자에게서 3도 화상이 발견됐다. 3도 화상은 피부뿐 아니라 피하조직까지 모두 상한 심각한 화상이다. 연구팀은 특히 뒷목이나 등처럼 체중이 실리는 부위를 빨간약에 오래 노출시키면 화상이 생길 위험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포비돈 요오드 용액이다 마르고 난 뒤 지혈대를 덮거나, 아예 방수처리를 해야 한다.

이런 화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빨간약을 머금고 있다가 일정한 농도로 내보내는 소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붕대나 거즈를 가지고 연구했지만, 좀 더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2009년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대 화학생명과학부 로버트 린하르트 교수팀은 단일벽 탄소나노튜브(SWNTs)를 포비돈 요오드에 접목시켰다. 탄소나노튜브는 붕대처럼 신축성과 통기성이 있는 데다, 포비돈 요오드와 결합해 요오드를 일정한 농도로 유지시킨다. 맹수의 우리를 한 겹 더 둘러싸 안전성을 높인 셈이다. 린하르트 교수는 논문에서 “단일벽 탄소나노튜브가 신경돌
기의 생체전기신호 전달을 돕기 때문에 신경조직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가능성만 보이는 단계지만, 중화상 환자나 마비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최첨단 빨간약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빨간약,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뭐든 그렇지만, 빨간약도 과하면 좋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포비돈 요오드가 몸에 흡수되면 갑상선으로 향한다. 갑상선 호르몬인 티록신(T4)과 트리아이 오도티로닌(T3)을 만드는 주요 성분이 바로 요오드인데, 너무 많은 경우 갑상선종이나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신생아에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산모 역시 태반으로 요오드가 이동해 신생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빨간약을 반복해서 바르면 세균과 함께 피부재생 세포도 함께 죽어 오히려 상처 치료가 늦어지기도 한다.

빨간약의 한계는 분명하다. 피부 겉에 붙어있는 병원균은 기가 막히게 잡지만, 세포 깊숙이 퍼진 균을 골라 죽이는 기능은 없다(세포까지 통째로 죽이면 몰라도). 에볼라 바이러스도 감염될 위험을 줄일 뿐이지, 감염된 뒤에는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빨간약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온갖 병원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손쉽게 지킬 수 있는 묘약이니까♡.
 

글 :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과학동아 2015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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