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지리산에 과학 단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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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고속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 또 택시로 30분을 더 들어가서야 지리산고에 도착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커다란 DSLR 카메라를 목에 멘 기자를 알아보고는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안녕하세요! 과학동아 기자님이세요?”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기자를 지리산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1학급 1과학동아’ 캠페인으로 보내준 과학동아였다.


모든 것은 한 통의 이메일에서 시작됐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 기슭에 자리 잡은 지리산고 2학년 권회령 학생이 2012년 과학동아 편집부로 사연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1학급 1과학동아’와 지리산고의 인연은 3년째다. 권 양은 이제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다. 권 양은 인터뷰에 같은 학년 안석훈 군을 데려왔다. 안 군은 자칭타칭 지리산고 최고의 과학동아 애독자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까칠한 호관씨는 정말로 까칠해요?”라고 물었다


이끼 낀 실험기구, 50년 된 현미경, 오래된 과학책

초소형 특성화고인 지리산고는 정원(한 학년 20명)의 70%를 형편이 어려워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학생 위주로 선발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다보니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면제해주고 학생이 아프면 의료비까지도 지원해준다. 모든 비용은 지리산고 후원회가 지원한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 형편이 넉넉지 않다. 특히 과학시설이 열악하다. 과학실 실험기구 대부분은 5년 전에 다른 학교에서 받아온 것이다. 손이 닿은 지 오래돼 이끼가 낀 것도 있었다. 학생들은 창고에서 발견한 현미경으로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이 현미경은 자그마치 50년이 지난 것이다. 권 양은 “나뭇잎이나 작은 생물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라고 웃었다.

졸업을 앞둔 권 양에 이어 도서관을 맡은 후배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새 과학도서’를 외쳤다. 지리산고 도서관은 전적으로 외부의 책 기부를 통해서 운영되기 때문에 새 책을 잘 볼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산청군 도서관도 차를 타고 40분 거리다. 과학자를 꿈꾸는 한창때의 학생들이 색이 바란 오래된 과학 책을 안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꽃은 핀다

이런 과학 가뭄 속에 과학동아가 단비가 됐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과학동아를 통해 최신 과학을 만났다. 도서관 한편에 학생들이 과학동아를 돌려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됐다. 학생들이 과학동아 기자를 한눈에 알아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고3 학생들은 대학 심층면접을 앞두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과학동아부터 먼저 찾았다. 덕분에 권 양과 안 군은 지난해 이공계특성화 대학인 UNIST에 합격했다. 권 양은 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새로운 네트워크와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밝혔다. 뇌공학과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다는 안 군은 대학에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분야를 확인하고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다니던 대학에는 수억 원짜리 최신 현미경과 최고 수준의 교수들과 최신 논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리산의 학생들처럼 과학을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취재를 하면서 과학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리산에서 과학의 꿈을 피운 후배들이 대견했다. 더 열심히 기사를 써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오랜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몸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글 : 경남 산청 = 송준섭 기자
과학동아 2015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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