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일반상대성이론 낳은 ‘기적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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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일반상대성이론 낳은 ‘기적의 10년’PART1. 일반상대성이론 낳은 ‘기적의 10년’

1905년 가을,
위대한 발견 후 다시 일상으로


아인슈타인은 1905년 논문 세 편을 연달아 발표했다. ‘광양자 가설(3월)’ ‘브라운 운동 설명(5월)’ ‘특수상대성이론(6월)’ 모두 놀라운 논문이었다. 특히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밝힌 특수상대성이론은 물리학계를 발칵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리 잡지 못했기에 1908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하루 8시간씩 근무해야 했다.

책상 둘째 서랍의 ‘이론물리학’

따로 실험실이 없었던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일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머릿속으로 사고실험(그는 독일어로 ‘게당켄 엑스페리멘트’라고 불렀다)을 했다. 그의 책상 둘째 서랍에는 늘 메모와 계산 기록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1907년 ‘중력=가속도’ 발견

아인슈타인은 1907년, ‘전자공학 및 방사능 연감’에 실을 상대성원리 보고서를 쓰는 데 두달간 매달렸다. 글을 쓰며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원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턴의 중력이론과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일반화하려 시도하던 중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동일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른다.



1912년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그로스만을 만남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잘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수학을 “피상적인 박식함”이라며 멸시했다. 하지만 상대성원리를 일반화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자, 1911년 이 생각을 철회했다. 1912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로 부임한 아인슈타인은 같은 대학 교수이자 오래된 친구인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그로스만을 통해
‘리만 기하학’을 배우다


아인슈타인은 그로스만에게 가우스와 리만의 기하학을 배운다. 곡률이 0이 아닌 공간의 기하학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 법칙을 기술하려면 지독하게 난해한 리만 기하학을 풀어야만 했다.

1915년 11월, ‘일반상대성이론’ 완성

아인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다. 시공의 기하학에 관한 함수 10개로 이뤄진 방정식 10개의 집합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새로운 장방정식들을 3쪽짜리 짧은 논문에 담아 11월 25일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발표한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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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중력파
PART6. 일반상대성이론 뒤집히나
EPILOGUE. 상대성이론 가지고 놀기

글 :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과학동아 2015년 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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