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파·방사능 스마트폰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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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더듬거리며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찾아 알람을 끈다. 일어나 씻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빵을 꺼내 전자렌지로 데운 게 아침식사다. 회사에서는 자료를 만들 게 있어 오전 내내 문서를 복사한다. 오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한다. 밤에는 TV를 보며 스마트폰을 갖고 놀다 잠이 든다. 여기서 문제.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전자파에 얼마나 노출됐을까?


방금 묘사한 상황은 직장인의 흔한 일상이다. 굳이 이런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요즘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산다. 전자기기라면 당연히 전자파가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전자파에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자파의 양을 손쉽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으로서는 비싸고 큰 전자파 측정장치를 구입해 쓸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FTLAB의 스마트랩 시리즈는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신개념 측정장치다. 측정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의 기능을 스마트폰이 담당하게 하면 측정장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전자파를 측정하는 스마트EM체커와 방사능을 측정하는 스마트가이거 두 종류가 나와 있다.


전자파 줄이려면 반드시 접지 해야

스마트EM체커는 전기장을 이용해 전자파를 측정한다. 측정기를 스마트폰의 이어폰 단자에 꽂아서 궁금한 곳에 갖다 대기만 하면 간편하게 전자파의 크기를 알 수 있다. 기자가 시험해 본 결과 사무실에서 가장 많은 전자파를 방출하는 기기는 복사기였다. 거의 하루 종일 바라보는 모니터에서도 일정량의 전자파가 꾸준히 나왔다.

전자파의 크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콘센트의 접지 여부다. FTLAB의 고재준 대표는 "일상 생활에서는 무심코 넘어가기 쉽지만, 전자파 노출을 줄이려면 접지가 되는 전자제품과 콘센트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니터의 전자파를 측정했을 때 접지가 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치가 수십 배 이상 낮게 나왔다.

스마트가이거는 방사선을 측정한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감마선이 나오면 반도체 센서에 전류가 흐른다. 이 전류를 측정하면 방사선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측정하고자 하는 곳을 향해 1분 정도 고정하면 감마선 방출 횟수를 측정해 방사선량을 μSv/h(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 단위로 알려준다.

원래 FTLAB은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 측정 및 검사 장치를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다. 플라스마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 대표는 연구교수로 일하면서 검사장비를 만들어 대기업에 판매한 경험을 계기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한 친구가 “방사능 측정기가 너무 비싸다”며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일반 소비자용 측정장치를 만들 생각을 했다. 이번에 출시한 스마트랩 시리즈는 지난 10여 년간의 기술 노하우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융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접지한 상태(왼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태보다 전자파가 적게 나온다.접지한 상태(왼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태보다 전자파가 적게 나온다.
 
정확성보다 편리함이 우선

누구나 손쉽게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가의 전문 측정 장비에 비하면 정확도는 떨어진다. 단일 기종인 아이폰은 전문 장비 못지않은 결과가 나오지만, 안드로이드폰은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정확도가 다소 떨어진다. 널리 쓰이는 최신 기종일수록 측정치가 정확하다.

고 대표는 “측정이라는 행위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정밀도보다는 간편한 측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이 각자 자기 주변에서 전자파나 방사능을 측정한 결과를 공유하면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그 결과를 보고 필요하다면, 전문 측정 장비를 투입하면 된다는 게 고 대표의 주장이다.

스마트랩 시리즈에는 앞으로 자외선 측정기, 염도 측정기, pH 측정기, 정전기 측정기 등이 추가될 예정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손쉽게 측정할 수 있다면,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유해 환경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글 : 고호관 기자 ko@donga.com
과학동아 2014년 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