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얇은 다이아몬드 같이 만들래요?

최고의 화학 석학들이 울산에 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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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여름 날, 이른 아침부터 울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남쪽 끝자락 바닷가 도시에 자리한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2009년 첫 신입생을 받은 이래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교다.


KTX울산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UNIST. 정문에 들어서자 널찍한 광장과 녹음으로 가득한 캠퍼스가 반겼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그늘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시험기간이어서인지, 대화를 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열기가 느껴졌다. 기자가 UNIST를 찾은 것은 이 대학의 화학 트랙(UNIST의학과 개념)에 세계적으로 뛰어난 교수들과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새로운 탄소 소재 만든다

기자가 처음 찾은 저차원탄소혁신소재 연구관은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11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으로 선정된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IBS 연구단은 정부에서 10년 동안 연간 100억 원 씩 막대한 지원을 받는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UNIST 화학 트랙에는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 외에도 올해 1월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이 IBS연구단으로 선정됐다. 한 전공에서 2개의 IBS 연구단이 선정된 것은 흔치 않다. 또 8월부터 유전체보전연구단도 합류할 예정이다. 전국적으로 총 22개단이 선정된 IBS 연구단은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각각 4개를 유치했으며, 서울대와 UNIST가 3개로 뒤를 이었다. 역사와 교수 수 등을 고려하면 UNIST의 약진이 돋보인다.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은 세계적인 학술정보서비스 기업인 톰슨로이터가 선정한 2011년 세계 재료과학자 100인 중 16위에 오른 로드니 루오프 교수가 이끌고 있다.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 교수였던 루오프 교수는 UNIST에서 10명의 연구원을 이끌고 탄소의 새로운 구조를 밝히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탄소는 새로운 구조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흥미로운 원소다. 1985년 발견된 축구공 모양의 풀러렌과 2004년 발견된 그래핀이 그 주인공이다. 1991년 발견된 탄소나노튜브는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진 못했다.

탄소는 원자 6개가 모여 육각 구조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풀러렌의 경우 육각 구조와 오각 구조가 모여서 탄소 60개가 모인 구형을 만들었고, 탄소나노튜브 역시 육각형이 원통형 구조를 이룬다. 그래핀은 육각구조가 평면적으로 모인 얇은 구조다. 이론적으로 탄소는 육각을 넘어 칠각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은 루오프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육각 구조와 칠각 구조가 결합된 음곡률 탄소 물질을 만들고 있다. 연구진은 새로운 구조가 어떤 물리적 특징을 가질지도 궁금해 하고 있다.

연구단의 또다른 목표는 아주 얇은 다이아몬드 구조체를 만드는 일이다. 탄소는 결합 구조에 따라 아주 무른 흑연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까지 만들 수 있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탄소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서도 특정 구조가 반복된다. 연구진은 그래핀을 여러겹으로 겹쳐 아주 얇은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성공한다면 새로운 전기적, 기계적 성질을 가진 물질이 만들어 진다.

이외에도 UNIST에는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여있다.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을 이끄는 스티브 그래닉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 재료공학과 석좌교수 출신으로 지난해 미국화학회 콜로이드 표면화학 분야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비롯해 국제 기준인 SCI급 논문을 400여 편 게재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학분야 국가과학자인 김광수 교수와 펄스분광학 분야 연구를 주도하는 ‘막스본 프로젝트’의 리더인 토마스 슐츠 교수 등도 UNIST 화학 트랙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앞으로 대학생에게도 세계적인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열 계획이다. 루오프 교수는 “대학생 시절에 학교 성적에 연연하며 수업만 듣는 것보다는 직접 연구에 참여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앞으로 과학자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루오프 교수가 직접 대학생을 지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세계적인 학자에게 대학생 시절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외국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러 가는 시대는 끝났다

기자가 UNIST의 교수들을 만나고 학교를 돌아보면서 ‘참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광장도 넓고, 회의실도 넓으며, 실험실도 넓다.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임미희 교수의 실험실도 마찬가지였다. 첨단소재연구관에 있는 임 교수의 실험실은 서울 소재 대학의 좁은 실험실만 봐 왔던 기자에게 생소할 정도였다. 조금 과장하면 단체 줄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임 교수는 UNIST가 자랑하는 금속 신경과학자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UNIST로 왔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의 여러 가지 원인이 모두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직업병(?)이 발휘돼 자세하게 캐묻는 기자에게 “아직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이기 때문에 논문이 나오기 전까진 말할 수 없다”며 기대해 달라고 했다.
 
2009년에 첫 신입생을 받은 이후 UNIST는 학생과 연구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하고 있다.2009년에 첫 신입생을 받은 이후 UNIST는 학생과 연구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말을 ‘감사하게도’라고 시작하는 임 교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나라의 과학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욕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 교수가 학위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많은 연구장치와 재료를 요구하는 연구를 하거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연구 조건, 장치 및수준도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임 교수는 “감사하게도 이제 우리나라는 예전처럼 많은 여건과 지식을 요구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나라에서 박사를 받은 뒤, 외국에 나가 연구했다가 다시 돌아와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임 교수 본인도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실제로 UNIST 교수들은 국내 어느 대학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네이처와 자매지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대학과 기관의 연구역량을 평가하는 척도인NPI에서 6월 현재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에 이어 국내 4위에 올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순위에서는 44위를 기록했다. 다음 목표는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과장마저 외국인, 진정한 글로벌 대학

이를 위해 UNIST가 준비한 전략이 국제화다. 예를 들어 이 대학의 화학 트랙 교수 19명 중 4명이 외국인 교수다. 트랙장(학과장)마저 외국인인 크리스토퍼 비엘라프스키 교수가 맡고 있다. 비엘라프스키 교수는 2009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젊은 과학·공학자 대통령상(PECASE)’을 받았을 정도로 미래가 기대되는 과학자다. 비엘라프스키 교수는 “UNIST에서 화학 트랙을 이끌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며 “화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과 연구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UNIST는 지금도 미래를 위해 전진 중이다.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그래닉 교수는 해외 대학 대신 UNIST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미국에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라는 격언이 있다”며 “UNIST는 역사는 오래되지 않은 ‘아이’ 학교지만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멋진 학교”라고 말한다. 19명의 석학이 이끄는 UNIST 화학 트랙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글 :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과학동아 2014년 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