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ge. 튤립은 어떻게 세상에 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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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꽃이 천리를 가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방으로 실어 나르는 매개가 필요하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꽃이 동물보다 못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동물이나 사람은 A지점에서 B로 이동해 버리면 오직 B에만 존재한다. 다시 A지점에 존재하고 싶으면 힘들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꽃은 그렇지 않다. 마치 몸은 그 자리에 두고 영혼만 이동하는 마법사처럼 본래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지구 전체를 돌 수 있는 것이 꽃이다.


스마트폰 심는다고 스마트폰 열릴까

해외여행을 떠날 때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여행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아가는 것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불러낼 수 있다. 인간만의 업적인 것처럼 보인다. 모르는 말씀이다. 이미 수천 만 년 전에 식물이 발명한 방법이다. 아주 작은 씨앗 하나에 나중에 꽃이 되고, 거목이 될 수많은 ‘정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핸드폰 칩을 땅에 심고 물을 줬더니 여러 개의 예쁜 스마트폰이 달리더라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꽃의 역할이 씨앗을 만들고 널리 번식하기 위한 것이라면, 꽃의 아름다움은 번식 매개체를 유혹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장치’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꽃의 유혹에 가장 약한 번식 매개체일 것이다. 곤충이나 바람 등의 매개가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을 인간이 하고 있다. 물론 인간 역시 식물에게서 식량부터 의류, 약 등 다양한 것들을 얻어냈다. 이런 것들을 넘어 식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엄청난 탐구심과 소유욕,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여기에 편승한다면 식물이 지구 전체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예를 들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물은 인간이 특별히 신들에게 바치는 공양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수입품목이 레바논의 향나무였다. 신전에서 태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향나무를 수입했다. 고대인은 향이 식물의 영혼이나 ‘언어’라고 생각해 향기로운 식물을 태워 신과 소통하고자 했다. 유럽에 기독교가 자리 잡으면서 과거 다신교 시절, 여러 신에게 바쳤던 온갖 아름다운 꽃을 모두 성모 마리아에게 주었다. 흔히 순결한 백합이 성모마리아의 상징이라고 여기지만 그뿐이 아니다. 장미, 붓꽃, 제비꽃, 모란, 매발톱, 데이지 등 수많은 식물이 마리아상 앞에 바쳐졌다. 이들은 모두 당시 약용식물이기도 했다.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꽃에 건 기대가 컸던 것이다.
 

식물의 은밀한 작전

그런데 어느 날, 먹을 수도 없고 약으로도 쓸 수 없고 향도 나지 않는 꽃이 세상에 나타났다. 튤립이라고 불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꽃이었다. 이 꽃을 처음 발견한 것은 페르시아 사람이었고 인도와 터키에 전해졌다가 16세기에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여기서 일대 전환점이 오게 된다. 튤립의 구근, 즉 덩이줄기를 처음 받아 든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클루지우스는 늘 하던 대로 새 식물의 유용성을 테스트했다. 우선 먹어본 것이다. 설탕과 식초에 절여도 보고 끓이거나 삶거나 굽거나 해서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물론 먹을 수는 있었지만 별 맛이 없었다고 한다. 약성분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튤립을 내다버리지 않았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돼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도구가 아닌,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발견해 가던 때였다. 이 때 튤립이 때맞추어 나타난것이다. 사람들은 튤립을 화단에 곱게 심어 놓고 그 아름다움을 경배하기 시작했다. 식용식물은 배가 부르면 의미가 없어진다. 약용식물은 건강한 사람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 갈망에 힘입어 튤립은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네덜란드 증권시장을 정복했으며 차근차근 지구를 점령해 나갔다.

20세기 후반 즈음엔 세계 어느 곳이나 봄이 오면 튤립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발 없는 튤립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화훼산업이라는 이득을 주고 그 대가로 지구 전체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식물은 이렇게 은밀한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그들 작전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더 로드’와 ‘일라이’라는 두 편의 재난영화가 상영됐다. 두 영화 모두 참담하게 파괴된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식물이 모두 죽어버린 지구는 재로 뒤덮인 어두운 행성에 불과했다. 물론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지만 이 역시 다분히 인간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식물 세계를 남김없이 파괴할 수 있다는 ‘자만심’의 산물인 것이다. 과연 인류는 식물계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을까?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이듬해에 다시 살아난 은행나무나, 독일 루르산업지대의 죽은 땅을 노랗게 덮은 이끼들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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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꽃,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PART 1. 꽃이 없었다면, 지금 당신은 없다
PART 2. 태초의 꽃을 찾아서
Bridge. 튤립은 어떻게 세상에 퍼졌나
PART 3. 인간의 역사를 바꾼 꽃의 유혹

글 : 고정희 기자
과학동아 2014년 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