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ech] 공감 길러주는 책 따로 있다

노벨문학상 그녀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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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가을햇살처럼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작품을 쓰는 여성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가슴에 안았다.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단편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주인공이다. 평범한 인물과 사건도 먼로를 만나면 특별해진다. 주인공 마음속에 쏙 들어갔다 나와서 글을 쓰는 것처럼, 내밀한 심리를 따뜻한 필체로 풀어낸다. 먼로의 소설을 읽다보면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착각인 줄 알았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좋은 문학소설을 읽으면 실제 공감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10월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것이다. 미국 뉴스쿨대 심리학과의 엠마누엘 카스타노 교수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코머 키드는 문학소설을 읽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즉 인지적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벨문학상을 예측한 논문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발달한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연구팀이 밝힌 사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지적 공감을 향상시키는 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미도서상 또는 오헨리문학상을 수상한, 문학성이 높다고 인정받은 작품들과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선정한 베스트셀러 대중소설을 비교했다. 로맨스나 스릴러처럼 서점에서 인기가 많은 대중소설의 경우 흥미는 있지만 인물이 평면적이고 예측가능해서 인지적 공감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반면 문학성이 뛰어난 문학소설에는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하고, 실제 인물에 가깝게 복잡한 심리묘사가 잘 드러나 있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예측과 정확히 일치했다. 실험에 참가한 114명은 대중소설과 문학소설, 논픽션을 읽고 ‘눈으로 마음 읽기 실험(RMET)’에 응했다. ‘눈으로 마음 읽기 실험(RMET)’은 사람의 눈을 보고 감정 상태를 맞추는 실험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즉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다. 실험 결과 문학소설을 읽은 사람은 평균 25.90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중소설은 23.20점, 논픽션은 23.47점으로 아무것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측정한 23.42점과 별 차이가 없었다(각 실험마다 점수가 다르게 나온 것을 알아보기 쉽게 문학소설을 기준으로 환산했다). 연구자들은 얼굴 표정, 목소리, 몸짓, 자세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보고 감정 상태를 추측하는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문학소설이 특별히 높은 점수를 얻은 이유로 ‘반전’을 꼽았다. 독자들의 예상과 달리 등장인물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심리상황에 종종 처한다는 말이다. 먼로의 단편소설 ‘떠남’에서 여주인공은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결정을 내린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입장에 서서 온갖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지적 공감이 발달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연구팀이 실험에 사용한 문학소설 중에는 먼로의 단편집 ‘친애하는 삶에게(Dear life)’에 포함된 ‘동굴(Corrie)’이라는 단편소설도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논문이 나온 시기는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기 불과 일주일 전이다. 사람 마음을 꿰뚫는 먼로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일이었다.
 

 
전래동화 읽으면 인지적 공감 좋아져

심리학계에서는 문학작품이 공감에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사실 꽤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다. 특히 공감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만4~5세 때 문학작품이 인지적 공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문학작품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언어능력처럼 인지적 공감도 타고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결론나지 않았지만, 인지적 공감이 사회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하버드대 폴 해리스 교수의 주장이 현재는 더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어린이가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는 영국 브루네이대 비브힌치클리프 교수의 이론이 많은 심리학자 사이에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발달심리학자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야기, 즉 문학작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시자 인천시립대 어린이교육학과 교수는 2003년 미래어린이교육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어린이가 그림동화를 읽으며 등장인물의 의도, 믿음, 바람,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래동화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이 갖는 정서적인 갈등과 바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아이들이 읽으면 인지적 공감 능력을 쉽게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른은 앨리스 먼로, 어린이는 백설공주 읽어라

‘사과장수 할머니로 변장한 왕비는 독이 든 사과를 들고 백설공주를 찾아갔어요.’

북유럽의 전래동화인 ‘백설공주’의 한 대목이다. 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난 어린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도대체 왕비는 왜 사과장수 할머니로 변장했을까. 분명히 독이 들어 있는 사과를 백설공주는 왜 순순히 받아먹었을까. 아이는 이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왕비와 백설공주의 입장에서 상황을 인식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인지적 공감 발달의 첫 과정이다.

동화를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인지적 공감 발달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만 4세 어린이의 인지적 공감 발달연구에 참여한 이순복 위덕대 어린이교육학과 교수는 “동화를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갈등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간접 경험해야 마음현상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어렸을 때 적절히 발달한 인지적 공감은 예기치 못한 순간 힘을 발휘한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 집단괴롭힘으로부터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집단괴롭힘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공감 능력을 조사한 결과 가해 학생은 정서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피해학생은 인지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 발달해 가해자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내면 괴롭힘에 대처하기가 훨씬 쉽다는 설명이다.

좋은 책이란 결국 사람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담긴 책이다. 이번 가을에는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전래동화를 펼쳐보거나,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먼로의 단편집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글 : 변지민 기자
과학동아 2013년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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