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science] 외계인이 탐낸 물 우주에는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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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 오면서 툭 하면 대는 핑계가 있다.
“우리는 지구의 깨끗한 물이 필요해!” 불원천리 먼 길을 달려온 외계인의 근성에 감복하기는커녕 끝까지 맞서 싸워 격퇴하고 마는 지구의 영웅들.
이들은 물이 풍부한 지구는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다 같이 힘을 합쳐 지구를 지키자는 다짐과 함께. 그런데 정말일까?
지구인은 흉내도 못 낼 수준의 기술력을 지닌 외계인이 먼 길을 와야 할 정도로 우주에서 물은 귀중한 자원인 걸까?



물을 찾아서 지구에 왔다는 외계인을 만나면 얼굴 가득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이렇게 얘기해 주자.

“고작 물을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우주에 흔해빠진 게 물인걸?”

물은 우주에 흔한 물질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고, 산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물 분자가 된다. 정말 물이 필요했다면 전쟁을 하는 것보다 근처에서 찾거나 수소와 산소가 많은 성간 가스를 찾아 물을 만드는 게 낫다. 우주 여행을 할 정도로 기술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라면 이런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물이 지구 침략의 목적이라는 것은 외계인이 넓디넓은 우주에서 굳이 지구를 찾아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지 못한 창작자의 궁여지책일 뿐이다. 창작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많은 물질 중에서 굳이 물을 택한 것은 물이 생명에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는 모두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외계인 역시 물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가정한 듯하다.

우주에 흔한 물을 얻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서 여행을 하고 전쟁을 치른다는 설정은 말이 안 돼도, 우주 어디에 물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연구는 의미가 있다. 장차 인류가 우주 여행에 나선다면 물이 풍부한 곳은 우주 진출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필요한 물을 전부 지구에서 싣고 간다는 건 비효율적이다. 중간 기지나 목적지에서 물을 얻을 수 있다면 우주인의 식수나 생활용수로 쓸 수 있다.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면 우주선의 연료가 되기도 한다. 산소는 호흡하는 데도 쓸 수 있다. 게다가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찾아낸다면 생명의 기원에 대한 비밀에도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영원한 그늘 속에 물이
그동안 우주에서 물을 찾기 위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태양계에서만도 수성, 달, 화성, 혜성 등에 물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의 경우 20세기 중반 달 탐사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물의 존재 여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폴로 계획을 통해 달 표면에서 발견한 물의 양은 매우 적어서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부 암석에서는 물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지구에서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을 이루는 수소와 산소의 동위원소 비율이 지구와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달에 물이 있다는 증거가 조금씩 발견됐다. 유력한 곳은 달의 극지였다. 달 표면은 햇빛을 받으면 100℃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물이 증발돼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처음에 물이 있었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극지는 다르다. 충돌구 안쪽에는 영구적으로 그늘진 곳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물이 얼음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98년 발사한 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는 달의 극지에서 얼음을 찾기 위해 중성자분광기를 싣고 달로 날아갔다. 중성자분광기는 수소 원자핵에 흡수되는 중성자의 양을 관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소의 양을 계산하는 것이다. 루나 프로스펙터는 달의 북극과 남극에서 대량의 수소를 발견했다. 수소가 많다면 물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의 가구야, 인도의 찬드라얀-1이 달을 관측해 증거를 보탰고, 2008년 NASA는 물을 확인하기 위해 탐사선 엘크로스(LCROSS)를 발사했다. 엘크로스는 다 쓴 로켓의 일부를 달까지 가지고 가 남극에 있는 카베우스 충돌구에 떨어뜨렸다. 그때까지의 관측 결과, 물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충돌구였다.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는 달 표면의 물질을 증발시키고 섬광을 방출한다. 물은 적외선 영역에서 파장이 약 3㎛(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인 빛을 흡수한다. 이 흡수선은 물 분자의 지문이나 마찬가지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원래 지상과 위성 본체에서 동시에 관측할 계획이었지만, 지상에서는 어떤 망원경도 관측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결과는 성공이었다.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2010년 10월 ‘사이언스’에 실렸는데, 충돌로 날아간 물질 중에 약 5.6%가 물로 드러났다. 무게는 약 155kg이었다.

불지옥 수성에도 물이 있다
달에서 물을 찾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에도 물은 있다. 표면 온도가 수백℃까지 올라가는 불지옥에 어떻게 물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 달에 물이 있는 이치와 같다. 수성은 자전축이 공전궤도면에서 2° 정도만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극지에는 영구적으로 태양빛을 받지 않는 그늘이 생길 수 있다. 수성에는 대기가 거의 없어 직사광선을 받지 않는 지역의 온도는 영하 100℃ 이하로 내려간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수성의 충돌구 깊숙한 응달이나 극지에 얼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더욱이 레이더 관측 결과 얼음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극지에서 발견돼 이런 기대를 더욱 높였다.

2011년 수성에 도착한 NASA의 탐사선 메신저는 중성자분광기로 북극에서 대량의 수소를 발견해 과학자들의 예상을 확인했다. 지난해 말 NASA는 수성에서 미국 워싱턴DC를 4km 깊이로 뒤덮을 수 있을 만큼의 얼음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얼음은 수십 cm 두께의 어두운 물질로 덮여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성의 대기 외곽층에 상당한 양의 수증기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제 반대로 태양에서 먼 쪽으로 가 보자. 화성에는 이미 탐사로봇이 여러 대 착륙해서 물의 존재를 조사했다. 마침내 2008년 화성에 착륙한 NASA의 탐사선 피닉스가 토양 표본을 가열해 수증기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해 착륙해 현재 활동 중인 큐리오시티는 화성을 돌아다니며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있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는 표면의 얼음 아래 깊이 100km의 바다가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유로파의 바다 속에 지열을 이용해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아름다운 토성의 고리도 실제로는 대부분 얼음 덩어리다.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에는 얼음 화산이 있다. 토성 탐사선 카시니는 엔셀라두스에서 간헐천처럼 지하에서 뿜어나오는 수증기를 관측했다. 엔셀라두스 또한 유로파처럼 표면 아래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행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계를 떠도는 소행성과 혜성에도 물이 있다. 최 선임연구원은 “소행성은 규모나 과거 이력에 따라 다르지만, 혜성은 핵 주변을 감싸고 있는 대기인 코마 성분을 분광 관측하면 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물 길어오는 혜성
태양계의 천체에 어떻게 해서 이렇게 물이 널리 퍼졌을까. 행성이나 위성별로 물의 양이나 상태가 서로 달라 섣불리 원인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각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형성 당시에 암석에서 빠져나온 수증기가 응결했다는 가설, 원시대기에 포함된 수증기가 비로 내렸다는 가설, 태양풍에 들어 있는 수소가 산소와 충돌하면서 결합해 물이 됐다는 가설 등으로 설명한다.

지난 2012년 7월에는 소행성대에 있는 소행성의 중수소-수소 비율이 지구에 있는 물과 같다는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는 양쪽의 수소가 같은 곳에서 왔다는 뜻으로, 지구의 물이 소행성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비슷한 가설로 얼음으로 이뤄진 혜성이 행성이나 위성에 충돌하면서 물을 가져다줬다는 설이 있다. 처음 지구가 태어날 때는 물이 없었다가 이후에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사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각각 지구와 혜성에 있는 물의 화학 조성을 비교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는 서로 화학 조성이 비슷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10월 ‘네이처’에 새로운 증거가 발표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태양계연구소 연구팀이 ‘하틀리2’라는 혜성을 조사한 결과 지구와 물의 중수소-수소 비율이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비율이 다르게 나왔던 건 ‘출신이 다른’ 혜성을 조사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혜성의 기원지는 크게 두 군데다. 하나는 카이퍼벨트로 해왕성 바깥쪽을 원반처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며, 다른 하나는 오르트구름으로 카이퍼벨트보다 먼 곳에서 태양계를 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다. 둘 다 주로 물, 암모니아, 메탄 얼음으로 이뤄져 있다. 단주기 행성은 카이퍼벨트에서, 장주기 혜성은 오르트구름에서 나온다.

이전에 조사한 혜성 여섯 개의 중수소-수소 비율은 지구의 물에 비하면 거의 두 배였다. 논문에 따르면, 그것은 이들 혜성이 오르트구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 카이퍼벨트에서 온 하틀리2를 조사한 결과 중수소-수소 비율이 지구의 물과 비슷하게 나왔다. 이 연구가 옳다면 소행성뿐 아니라 혜성이 지구의 바다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물론 지구 외의 다른 천체에도 물을 공급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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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원래 물이 많다
그렇다면 혜성을 이루고 있는 물은 어디서 왔을까. 최근 허셜우주망원경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관측 결과를 내놨다. 별이 태어나기 직전의 가스 원반에서 차가운 수증기를 발견했다는 연구가 2011년 10월 ‘사이언스’에 실린 것이다.

별이 태어나는 곳 주변에 물이 생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별이 태어날 때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가스는 주변의 가스에 에너지를 가하고 여기서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이 된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가스 원반 바깥쪽에서 차가운 수증기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양은 지구에 있는 물의 수천 배다.

연구팀은 앞으로 수백만 년 뒤에 이곳의 가스가 뭉쳐서 행성이 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깥쪽에 있는 차가운 수증기와 먼지는 뭉쳐서 혜성이 된다. 이들 혜성은 장차 행성이 태어났을 때 충돌하면서 물을 제공해줄 수 있다. 지구나 달 등에 있는 물이 혜성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수증기가 생기는 현상이 보편적이라면 우주에는 지구처럼 물이 많은 행성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항성간 여행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물이 있는 행성을 발견한다면 이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외계생명체를 만날 가능성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너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으로 보기조차 어려운 외계 행성에서 물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계 행성의 대기에 어떤 원소가 들어 있는지는 별빛과 외계 행성의 대기를 통과해 오는 별빛을 비교해서 알아낼 수 있지만, 행성과 별의 밝기 차이가 너무 커서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외계 행성을 연구하는 김승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기술로는 표면 온도를 추정해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따져보거나 모델링을 통해 대기 현상을 추측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며 “직접적으로 물을 찾는 건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주에 물이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은하 안의 성간 가스에서는 물이 많이 발견됐고, 다른 은하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스는 별의 재료가 되므로, 그 안의 물이 나중에 어떤 행성에 바다를 만들 수도 있다. 2011년 7월에는 12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에서 지구에 있는 물의 무려 140조 배에 달하는 수증기가 발견됐다. 120억 년 전의 우주에도 물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는 우주에서 물이 결코 희귀한 존재가 아님을 알려준다. 혹시 장차 SF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외계인이 물을 노리고 지구를 침략한다는 설정은 쓰지 말자. 그건 외계인에 대한 모욕이다.

글 : 고호관 기자 karidasa@donga.com
과학동아 2013년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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