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가 본 플루오린화 수소 유출 사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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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구미 공단의 한 공장에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맹독성의 플루오린화 수소(불화수소, HF)가 가스 상태로 대기 중으로 유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언론에는 ‘불산 누출 사고’로 알려진 바로 그 사고다. 당시 탱크로리에 실려 있던 20t의 플루오린화 수소 액체 중에서 8t 정도가 유출되었다고 한다. 탱크로리 위에서 일하던 작업자 2명을 포함해서 5명이 사망했고, 근처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농작물과 과수를 포함한 모든 식물의 잎이 누렇게 말라붙어 버렸고, 주민과 가축이 유출된 가스에 노출되어 심한 고통을 겪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물질은 분자식이 HF로 표시되는 ‘플루오린화 수소(hydrogen fluoride)’다. 차츰 설명해 나가겠지만 언론이 사용하는 ‘불산’, ‘불화수소’, ‘불화수소산’은 모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심지어 불소도 화학계에서권장하는 용어가 아니다.

플루오린화 수소는 정상 끓는점이 19.5℃로 상온에서도 금방 공기로 날아가는, 휘발성이 강한 액체다. 플루오린화수소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세척제나 에칭제로 많이 쓰고, 의약품 생산에도 많이 사용한다. 플루오린화 수소는 대부분 플루오린화 칼슘(CaF2)으로 만들어진 형석(螢石, fluorite)을 진한 황산에 넣은 뒤 265℃로 가열해서 생산한다. 인회석(CaF5(PO4)3F)에서 인산 비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기도 한다.

플루오린화 수소는 대표적인 극성 분자로 물에 잘 녹는다. 플루오린화 수소가 녹아있는 수용액은 플루오르산(fluoric acid) 또는 플루오린화 수소산(hydrofluoric acid)이라고 부르는, 산해리상수(pKa, 강산일수록 pKa값이 작다)가 3.17 정도인 약산이다. 플루오르산은 금속을 심하게 부식시키고, 유리를 녹이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플루오린화 수소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 치명적인 독성이 있다. 사람에게는 호흡기 점막과 눈에 염증을 일으킨다. 플루오린화 수소가 생물의 조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면 플루오린화 이온이 세포 속에서 신호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슘 이온과 단단하게 결합해 플루오린화 칼슘으로 안정화된다. 식물은 광합성이 불가능해져 잎이 말라버린다. 동물은 조직이 썩어버리거나, 뼈가 녹아버리거나,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키곤 한다.

작업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플루오린에 노출되면 다양한 질병에 걸린다. 특히 지질학적인 이유 때문에 지하수에 플루오린이 많이 섞여있는 지역에서는 치아에 검은 반점이 생기거나 심각한 골다공증이 생기기도 한다. 산업현장에서 플루오린화 수소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고 플루오린이 언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극미량의 플루오린은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플루오린 이온이 치아 표면의 에나멜 성분과 결합해서 단단한 막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약에 극미량의 플루오린을 넣기도 하고, 심지어 수돗물에 플루오린을 첨가하는 선진국도 있다.



플루오린과 불소

플루오린은 지구에 비교적 흔하게 존재한다. 산소(O), 규소(실리콘, Si), 알루미늄(Al), 철(Fe), 칼슘(Ca) 등에 이어 13번째로 많다. 바닷물 1kg에도 약 1.3mg의 플루오린이 이온 상태로 녹아있고, 우리 몸의 뼈와 치아에는 약 3g 정도의 플루오린이 들어 있다. 지하수나 음식물에도 극미량의 플루오린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플루오린(fluorine)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라틴어의 ‘흐르다’라는 뜻의 ‘fluo’이다. 그러나 원자번호 9번의 이름을 ‘플루오린’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복잡하다. 본래 형석(fluorite)이라는 이름은 형석을 철광석과 섞어 가열하면 철광석이 쉽게 녹아서 흘러내리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결정 구조에 극미량의 불순물이 섞여있는 형석은 자외선을 받으면 푸른색의 빛을 낸다. 그래서 형석에서 관찰되는 독특한 색깔의 빛을 형광(fluorescence)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결국 형석을 구성하는 원소에도 ‘플루오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루오린의 우리 이름으로 사용돼 왔던 불소(弗素)의 유래는 더욱 복잡하다. 중국은 서양의 원소 이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는 원소 이름에 화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한자를 사용했다. 수소(水素), 산소(酸素), 질소(窒素)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한계가 있었고, 결국 서양 원소 이름의 발음과 비슷한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플루오린의 경우 기체를 뜻하는 ‘ ’와 플루오린의 발음과 닮은 ‘弗(불)’을 결합시킨 ‘ ’이라는 한자를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어려운 한자 대신 기체를 뜻하는 ‘素(소)’를 붙여서 ‘불소(弗素)’라는 독특한 이름을 만들어냈다. 플루오린의 진짜 어원을 제대로 반영했다면 ‘형소(螢素)’라는 이름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대한화학회에서는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弗素’ 대신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에서 사용하는 ‘플루오린’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저장 탱크 연결하고 작업한 게 원인

이번 사고에서는 누출된 가스가 10여m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런 장면은 화학에 대한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플루오린화 수소의 끓는점(19.5℃)을 고려하면 당시 탱크로리 안의 압력은 분명히 외부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작업자가 실수로 배출구의 밸브를 완전히 열었다고 하더라도 가스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를 만한 정도의 압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이번 사고는 작업자가 실수로 배출구의 밸브를 열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맹독성의 플루오린화 수소 액체를 운반하는 탱크로리의 구조는 특별하다. 사고나 실수로 플루오린화 수소 액체가 새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출구를 탱크로리의 위쪽에 설치한다. 그 대신 탱크로리에서 플루오린화 수소를 빼내는 과정은 복잡해진다. 3~5기압의 압축공기를 사용해서 탱크 속의 액체를 밀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구미 사고는 작업자가 탱크로리와 저장 탱크를 연결하기 전에 탱크로리에 압축공기를 먼저 주입했던 것이 문제였다. 탱크로리 속에 있던 플루오린화 수소 액체가 압축공기에 밀려 배출구로 빠져 나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플루오린화 수소는 6개의 분자가 들러붙은 (HF)6의 무거운 에어로졸 형태로 분출된다. 높이 솟아올랐던 가스가 다시 지표면으로 낮게 깔리면서 마을의 주민, 가축, 식물에 피해를 입혔다.

사후처리에 대한 혼란

플루오린화 수소를 물에 녹인 플루오르산(불산)이 유출되면 이번에 언론에서도 소개된 소석회를 뿌리는 것이 좋은 대책이 된다. 소석회의 칼슘 이온이 수용액 상태에서 플루오린 이온과 결합해 화학적으로 안정한 플루오린화 칼슘으로 변하고 나면 더 이상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처럼 대기 중으로 많은 양의 플루오린화 수소가 에어로졸 상태로 유출되면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 가스가 넓은 공간으로 퍼져나가거나, 빗물에 녹아 지표로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플루오린화 수소에 가루 상태의 소석회를 뿌리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 결국 처음부터 소석회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비난한 정치권과 언론의 지적은 목숨 걸고 사고처리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에게 옳지 않았던 것이다.

플루오린화 수소가 휘발성이 크다는 점과 칼슘이나 규산(실리케이트)과 쉽게 반응해 안정화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가스 상태로 유출된 플루오린화 수소 에어로졸 일부가 땅, 건물, 식물의 표면에 내려앉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농작물과 식물이 말라죽었다. 농작물에 플루오린이 남아있는 것도 당연하다. 세포막 때문에 다시 기체 상태로 배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에 달라붙은 플루오린화 수소는 해가 뜨고 나면 곧바로 기화해서 공기 중으로 확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축을 모두 죽이고, 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것을 합리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플루오린화 수소에 대한 괴담 수준의 정보도 믿을 것은 아니다. 유출된 플루오린이 환경에 오랫동안 남아서 우리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이고, 다이옥신과 비교하는 것도 휘발성이 강한 플루오린화 수소의 화학적 특성을 무시한 것이다. 플루오린이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의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호흡기의 염증을 제외하면 공기 중으로 유출된 플루오린화 수소가 주민이나 가축에게 더 이상의 피해를 줄 가능성도 없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의 플루오린화 수소 피해지역 내 포도밭 포도 잎이 누렇게 변해 말라 죽었다. 한번 식물 안으로 들어간 플루오린화 수소는 세포막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세포 안에서 칼슘을 빼앗는다.]

구멍 뚫린 유해물질 관리 제도

이번 사고는 우리 정부의 유해물질 관리 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정부는 한달이 지나도록 사고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평소에 유해물질의 유통이나 취급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고의 정황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플루오린화 수소와 플루오르산의 차이를 알고 있는 관료도 없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능력도 없었다. 압축가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지식경제부, 유해물질의 관리를 담당하는 환경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고용노동부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충분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능력이 없다면 정부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서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책임감을 가지고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책임이다.

글 : 에디터 이우상 | 이덕환 기자
과학동아 2012년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