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 가능한 날 올까

143km 떨어진 두 섬, 양자 전송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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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인류는 ‘순간 이동’의 가장 기초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양자 전송’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2003년 양자 전송의 거리는 800m로 늘어났다가 최근에는 143km까지 연장됐다. 앞으로 대기권 바깥의 인공위성으로도 양자 전송 실험을 할 계획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도 양자 전송과 관계가 깊다. 인간은 오랜 꿈이었던 순간 이동의 열쇠를 갖게 될 것인가.


영화 ‘플라이’(1986)에는 물체를 순간이동(공간이동)시키는 기계가 등장한다. 이 기계는 먼저 물질을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해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정보를 다른 위치로 보낸다(물체 자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보내는 것이다!). 전송된 정보는 새로운 위치에서 주변에 존재하는 물질과 결합해 원래 물체를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이런 순간이동 개념은 ‘스타트렉’ 같은 SF에서도 단골소재로 등장했다.

양자 전송도 양자의 순간이동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나오는 순간이동에 자주 비유돼 왔다. 그러나 사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전송은 순간이동과 다르다. 양자 전송의 대상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양자적인 상태(양자 상태)다. 양자 상태란 입자의 내부 에너지나 전하 같은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양자 상태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의 상태와는 매우 다르고 이상하다. 그 기묘함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켜 왔다. 논란의 핵심은 양자적인 입자가 모순되는 서로 다른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중첩 현상’이다. 중첩 현상은 동전 하나를 던져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나오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런 기묘한 중첩현상은 때론 획기적인 물리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초전도 현상이나 초유동체 현상도 중첩 현상때문에 일어난다.

이런 양자 상태를 공간을 뛰어 넘어 멀리 떨어진 위치로 전송하는 일은 SF영화 속 순간이동 기술을 현실화하기 위한 초석이다. 양자 전송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물리적 존재를 순간이동시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영화 ‘플라이’에 등장하는 순간이동 기계.


양자 전송의 열쇠는 ‘얽힘 현상’

1993년 찰스 베넷, 질 브라사드, 클라우드크레프, 리차드 조사, 에셔 페레즈, 빌 우터스 같은 과학자들이 모여 양자 상태의 전송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다. 이들은 ‘양자얽힘 현상 ’ 이라는 성질을 이용해 양자 상태를 순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제시했다.

양자 전송을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서로 얽혀 있는 양자의 한쪽 상태를 사용해서, 보내고자 하는 임의의 양자 상태를 관측해 일시적으로 중첩 상태를 붕괴시킨다. 측정을 통해 한쪽 양자 상태가 확실해졌기 때문에 중첩 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관측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양자 상태를 보내는 쪽은 양자 상태의 ‘고전적 정보’를 얻게 된다. 그리고 관측하기 전 원래의 양자가 갖고 있던 ‘무작위성(randomness)’은 양자적 정보의 형태로 멀리 떨어진, 서로 얽혀 있는 상태의 양자에 ‘순간적으로’ 전달된다. 고전적 정보와 양자적 정보가 분리된 것이다. 그리고 보내는 쪽에서 고전적 정보를 마저 전송하면 먼저 받은 양자적 정보와 합쳐서 원래의 양자 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 이것이 원거리 양자 전송이다. 즉 서로 떨어져 있는 양자 A, A'가 있다. A의 정보를 둘로 나눈 뒤 처음 정보를 A'로 보내고, 다시 남은 정보를 보내 합치면 A'는 A가 된다. 마치 양자 상태를 멀리 전송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안톤 자일링거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1997년 최초로 이 방법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광자의 편광현상과 광자 쌍생성 실험을 통해 편광 방향을 알 수 없는 광자를 다른 공간으로 전송해 새롭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정확히는 광자의 양자상태). 제한된 거리에서 이뤄진 실험이지만 양자 전송, 더 나아가 순간이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후 1998년 드 마티니 이탈리아 로마대 교수팀도 광자 편광성의 양자 전송에 성공했고, 같은 해 미국칼텍 그룹이 중심이 된 연구팀도 결맞음 상태의 광자를 양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원자를 양자 전송하다

양자 전송 기술은 거듭 발전해 가능한 거리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2003년 스위스 지생(Gisin) 그룹은 광섬유를 이용해 2km 거리에서 양자 전송을 성공시켰다. 1997년 최초로 양자 전송에 성공했던 자일링거 교수팀은 비엔나를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을 건너 광섬유 없이 800m 거리를 대기(자유공간)를 통해 양자 전송하는 실험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런 자유 공간은 광섬유보다 광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저항이 적은 장점이 있다.

그리고 2012년 자일링거 교수팀은 143km라는 전례 없이 먼 거리의 양자 전송 실험에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아프리카 모로코 서쪽에 있는 스페인령 라팔마 섬과 테너리프 섬 사이의 원거리에서 자유 공간을 이용한 실험이었다. 이렇게 양자 전송 거리가 늘어난 까닭은 얽힌 상태의 광자를 만들 수 있는 광원과 이를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자일링거 교수팀은 이후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사이에서 더 먼 거리의 실험을 하겠다 예고했다.

앞서 예로 든 영화 ‘플라이’ 속 순간이동 기계를 만들려면 빛뿐 아니라 원자의 정보 또한 양자 전송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2004년 데이비드 와인랜드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 박사팀과 라인너 블라트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팀은 극저온인 원자 내부의 양자 상태를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거리에서였다. 이후 2009년 크리토퍼 문로 교수가 이끄는 미국 메릴랜드대와 미시간대 연구팀은 1m 가량의 거리에서 90%의 성공확률로 이터븀(Yb) 이온을 양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은 영화 ‘플라이’에서 등장한 물체의 순간이동을 연상하게 하는 놀라운 실험이었으며, 양자 정보 실험의 미래를 가늠케 해준 중요한 실험이기도 했다.
 
1997년 양자 전송을 최초로 증명한 안톤자일링거 교수.
2012년 143km 최장거리 양자 전송 실험 역시 그의 연구팀이 해냈다.


사람도 순간이동 할 수 있을까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광학과 양자정보 실험의 선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레이저로 원자를 극저온에 가두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이 기술로 2004년 원자의 양자 전송에 처음 성공했던 데이비드 와인랜드가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 수상자인 세르주 아로슈콜레주드프랑스 교수 또한 양자전송과 관계가 깊다. 아로슈 교수는 양자 광전자 공진기 실험의 선두 주자다. 양자 광전자 공진기란 광자를 아주 정교한 거울 속에 가둬 광자와 원자의 양자 상태를 서로 교환하는 기술로 양자 전송 실험에서 활발하게 이용된다. 두 물리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양자 컴퓨터 기술을 포함한 양자 정보이론이 현 물리학의 발전단계에서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노벨 물리학상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기획 ‘2012년 노벨과학상’을 꼭 보세요).

양자 전송 기술은 양자상태를 멀리 보내는 데만 쓰지 않는다. 현재 물리학계의 최고 관심사인 양자컴퓨터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양자 프로세서 사이에 빠른 통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통신 기술이 바로 양자 전송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도 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양자 상태를 이용한 다양한 양자 정보처리 기술을 연구한다. 앞으로 가장 유용한 양자 프로세서의 형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또 고전적인 컴퓨터와 비교해 얼마나 이득이 있을지 등이 주요 연구 주제다.

마지막으로 다시 영화 ‘플라이’로 돌아와 보자. 영화 속 순간이동 기계를 실제로 만들 수 있을까. 현재 기술로 양자전송이 가능한 대상은 원자 1개의 특정 상태다. 사람을 순간이동시키려면 사람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 원자 1개를 보낼 수 있는 현 기술이 사람 몸속에 있는 수많은 원자 상태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려면 아주 먼 미래가 돼야 한다.
 

글 : 손원민 기자
에디터 : 이우상
과학동아 2012년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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