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강 IT기술 이제는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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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속도 1kbps(초당 1킬로비트를 전송하는 속도). 단문 서비스(SMS)의 기본 데이터양인 2바이트(1바이트 = 8비트) 문자 한글 40자를 보내는데 0.6초 밖에 걸리지 않지만, 초당 100메가비트를 전송할 수 있는 지상의 LTE 기술에 비하면 10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매우 느린 속도다. 이 속도가 바로 현대 기술 수준으로, 바다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실용적인 통신 속도다.

바다 속 통신은 지상에 비해 왜 이렇게 느릴까. 언뜻 보기에 바다도 단순한 3차원 공간인 것 같지만, 통신을 하기에는 매우 불리하다. 온도와 염도가 크게 다른 평면이 무지개떡처럼 겹겹이 쌓인 공간이 바로 바다다. 전파나 초음파는 물리적 성질이 다른 물끼리 맞닿은 경계를 만날 때마다 굴절이나 반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 사용하던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큰돈을 들여 개발한다 해도 바다 속 통신 기술이 시장성이 과연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GIST의 한러 MT-IT 융합기술 연구센터장 김기선 교수는 이런 바다 속 통신 기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고, 김 교수 본인도 IT 전문가이니만큼 정보통신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미지의 바다였다. 해양군사기술로 잔뼈가 굵은 러시아의 태평양해양연구소(POI)가 최적의 파트너가 됐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해외우수연구기관 유치사업’으로 선정하고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지원을 확정하면서 러시아와의 해양과학기술(MT)과 IT 기술 융합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중 통신의 주춧돌을 올리다

통신이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신호가 통하는 것’, 즉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수중 통신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신호를 주고받는 것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첫 성과물은 기존 수준보다 4배나 더 정확해진 수중 GPS 시스템이었다. 문자, 그림 같은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위치 정보를 주고받는 것 또한 엄연한 통신 기술이다. 바다속은 빠른 해수 때문에 1초 만에 10m 이상을 휩쓸려갈 수도 있어 위치 측정이 중요하면서도 어렵다. 김 교수팀은 수중 GPS의 오차수준을 40m에서 10m로 크게 향상시켰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위치를 동시에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얻어진 기술입니다. 수중 목표물들이 갖는 다양한 오차 값들을 평준화하니까 결과적으로 개개의 오차가 줄어들었습니다. 망망대해에 숨은 잠수함 한 대만 쫓던 러시아는 얻을 수 없는 성과였죠.”

김 교수는 단일 대상 대신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 여럿이서 함께 움직이는 스쿠버다이버들을 동시에 추적하려는 과정에서 신기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융합연구가 이룬 첫 번째 쾌거다. 수중 GPS 기술이 향상되자 연구팀은 이번엔 직접 해수를 채취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바다 속 온도와 깊이, 염도를 알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정확한 위치를 아는 두 지점 사이에서 초음파 신호를 주고받아 신호가 이동하는 동안 매질(해수) 때문에 생긴 변화를 보고 매질의 상태를 역으로 추정하는 기술이다. 김 교수는 이 과정을 방정식의 해를 찾는 것에 비유했다.

하지만 앞서 풀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바다 속 상태가 초음파 신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미리 알지 못하면, 변형돼 도착한 초음파 신호만으론 바다 속 상태를 추측할 수 없다.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미지수가 너무 많아서다.

해답은 러시아에 있었다. 러시아는 30년 동안 해수 표본을 채취해 바다의 기초적인 성질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데이터를 이용해 방정식을 완성한 연구팀은 최대 1분 간격으로 바다 속 염도의 변화, 해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바다 속에서 눈을 떠야할 때

“지금까지 어업은 눈을 감고 물고기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교수는 2013년부터 1시간마다 측정한 바다 속 상태를 장흥군에 위치한 노력도연구센터 인근 전라남도 어민에게 시범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물고기는 바다 속 환경에 따라 적응하기 좋은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바다 속 온도나 염도 상태를 알면 어떤 물고기가 언제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있다. 전복이나 어패류 가두리 양식을 하는 어민에게는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냉수괴의 접근을 예측해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다. 또 바다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기술을 이용해 기후변화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할 수도 있다. 해수의 온도변화가 바다와 맞닿는 공기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중 통신도 LTE처럼 빨라질 수 있을까. 김 교수는 현재 수중 통신 기술 수준이 지상의 아날로그 통신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상의 데이터 통신은 디지털화를 거치고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면서 20년 동안 무려 1000배나 빨라졌다. 수중 통신도 디지털화하고 이미 지상에 적용해 사용 중인 통신 기술을 바다 속 환경에 맞게 접목하면 빠르게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바다 속에서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진정한 수중 수상 유비쿼터스 통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글 : 광주 = 이우상 기자 | 사진 이서연
과학동아 2012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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