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빛과 물질이 함께 있었다

끈이론으로 본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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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은 영국의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가 발표한 이론이었다. 대폭발(빅뱅)과 급팽창(인플레이션)을 거쳐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입자물리학을 이용해 설명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끈이론을 이용해 더욱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이론을 발표했다. 인류는 우주 탄생의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2차원 평면을 기어 다니는 개미는 3차원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선이나 태양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사는 인간은 우주 너머에 있는 세계를 생각하기 어렵다. 우주를 상상하고 있는 인간은 3차원 공간을 생각하는 개미와 같은 입장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은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며 상상을 하고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미와 다르다. 현재 인류는 빅뱅이라 불리는 무한에너지를 지닌 특이점의 폭발로 우주가 생성됐고,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7억 년이라는 사실을 안다. 또 우리가 속한 태양계 밖 가장 먼 천체(은하, 퀘이사)는 대략 140억 광년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우주의 전체적인 역사와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조금씩 드러나는 우주의 신비

그러나 모르는 것도 많다. 빅뱅 이후 천체는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먼 곳의 알려지지 않은 천체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우주가 팽창을 계속할 것인지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지, 또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할 것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우주의 탄생을 둘러싼 미스터리 역시 그 중 하나다. “우주는 보이는 것처럼 작고 가까울까, 아니면 멀기 때문에 작게 보이는 걸까”와 같은 쉬워 보이는 질문도 20세기 초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이 질문을 해결한 사람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다. 허블은 탁월한 관측가로 오늘날 먼 우주를 둘러싼 대단히 중요한 발견을 여럿 했다. 먼저 1921년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해 우주의 크기를 쟀다. 또 밤하늘에 구름조각 모양으로 관측되는 ‘성운’이 우리 은하에 속한 것이 아니라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또다른 은하임을 밝혀냈다. 1929년에는 이들 은하의 스펙트럼 선에 나타나는 적색편이를 시선 속도라고 해석하고, 이는 은하가 후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은하가 후퇴하는 속도는 은하 사이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는데, 이것이 유명한 ‘허블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빅뱅 이론의 기초가 됐다.




[대폭발(빅뱅)과 이어진 급팽창(인플레이션)을 통해 우주가 태어났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 중이며, 이 과정에서 점점 천체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밀도는 낮아졌다. 우주 초기, 높았던 밀도와 온도도 점점 낮아져 현재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2.7K다.]

우주의 시작은 ‘빅뱅’

한편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 탄생에 중요한 연구를 했다.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상대론적으로 다뤄 ‘시공의 곡률’이라는 기하학적 언어로 기술하는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중력 때문에 휘어진 공간을 통과하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든 질량이 없는 빛이든 모두 휜다는 내용으로,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등가원리에서 나왔다. 일반상대성이론은 현재까지 알려진 중력을 다루는 이론 가운데 실험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검증된 이론으로, 질량을 가진 물질의 운동만 설명한 뉴턴 중력이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주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아 낸 과학자들은 그러한 팽창의 첫 단계, 즉, 우주의 시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반대로 초기에는 우주가 아주 작았을 것이라는 우주론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대폭발(빅뱅) 이론이다.

빅뱅 이론은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작은 공간(특이점)이 거대한 폭발을 겪어서 우주를 이뤘다고 본다. 1940년대 후반에 러시아 출신의 미국학자 조지 가모프가 우주의 초기 상태를 규명하려 했던 이론에서 출발했다. 가모프는 만약 우주가 먼 과거에 뜨겁고 밀집된 상태(현재보다 훨씬 수축된 상태, 어쩌면 크기가 0인 상태)로 시작되었다면, 이런 폭발적인 시작으로부터 나온 복사(빛)의 일부가 우주 저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8년 미국의 물리학자 랠프 앨퍼와 로버트 허먼은 빅뱅 당시 나온 복사는 우주가 팽창하면서 에너지 밀도가 낮아져 냉각되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리고 계산을 바탕으로 현재 복사의 잔해는 온도가 약 5K(영하 약 268℃)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복사는 1965~1966년에 미국 벨연구소의 공학자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라디오 안테나의 마이크로파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는데, 온도를 측정한 결과 2.7K였다. 앨퍼와 허먼이 추정한 값과 대단히 가까운 것이다. 이것이 ‘우주배경복사’다.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으로 펜지아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이론의 강력한 증거였다. 우주론자의 대다수는 빅뱅이론을 받아들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우주배경복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빅뱅이론 자체도 더욱 정교해졌다. 198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코비(COBE)위성이 우주배경복사의 전체 스펙트럼을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우주가 처음에는 현재보다 수십만K나 더 뜨거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비 위성은 1992년에도 우주가 모든 방향에서 1000분의 1이상의 정확도로 같은 비율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이는 우주가 모든 방향에 대해 균일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가 팽창하면서 물질이 균일하게 퍼지고 있으며, 팽창 과정에서 모든 방향에 대해 동일하고 불변하는(‘등방성’이라고 한다)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1970년대 영국 캐임브리지대의 스티븐 호킹과 옥스퍼드대의 로저 펜로즈가 우주 탄생과 관련한 중요한 연구를 했다. 먼저 일반상대론의 특이점에 대한 여러 정리를 증명했다. 또 블랙홀이 ‘호킹복사’라고 불리는 열복사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지막으로 입자 이론을 이용해 우주가 생성된 시기를 수학적으로 규명했다. 이 세 번째 이론을 ‘호킹-펜로즈 이론’이라고 한다. 우주 탄생 초기에 질량이 없는 ‘무질량 입자(예를 들면 광자)’와 질량이 있는 ‘질량 입자(예를 들면 전자나 쿼크)’가 차례로 나타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우주가 태어날 때 빅뱅과 함께 빛만 나타났다. ‘태초에 빛이 있었’던 셈이다. 그 뒤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물질을 이루는 입자가 나타났다. 이는 호킹-펜로즈 이론을 나타내는 방정식이 조건에 따라 두 가지 부등식을 갖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끈 이론으로 우주 탄생의 순간을 밝힌다


지난 5월 20일, 필자와 홍순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입자물리학에 바탕을 둔 호킹-펜로즈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우주 탄생 이론을 완성해 ‘피지컬리뷰D’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여기에는 ‘끈(string, 그림 참조)’ 이론을 이용했다. 끈이론은 서클(고리)과 같은 닫힌 끈과 끊어진 고리 모양의 열린 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드는 곡면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 공간과 시간 외에 실제로 경험하기 힘든 6차원의 초공간(칼라비-야우 공간)이 있다고 본다. 모두 합해 10차원인 이 시공간에서 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드는 궤적을 연구한다.

실제로 우주에는 자전이나 공전 등 회전 운동을 하는 천체가 많다. 하지만 호킹-펜로즈의 빅뱅이론은 입자를 이용한 이론으로 우주에 회전을 설명하는 부분이 없다.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는 방정식에 회전과 관련된 부분을 ‘0’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필자의 이론은 천체의 회전과 끈의 회전 항을 그대로 남겨 두어 실제 우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우주의 회전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수적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우주가 팽창할수록 느리게 회전한다는 뜻으로, 상식과도 잘 맞는다. 작은 팽이를 돌릴 때보다 큰 팽이를 돌릴 때 회전 속도가 느린 것과 같은 원리다.

끈 이론을 이용하면 팽창뿐만 아니라 비틀림 현상도 연구할 수 있다. 실제 우주에서 볼 수 있지만 입자에는 없는 움직임이다. 특히 비틀림에 대한 연구 결과 ‘우주가 팽창하면서 물질은 균일하게 퍼지고, 팽창하는 모든 방향에 대해 등방성을 유지한다’는 코비 위성의 관측 결과를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우주가 팽창하는 현상을 더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우주 초기에 무질량입자와 질량입자가 동시에 나온다는 사실도 밝혔다. 빛과 물질이 동시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우주 탄생 초기 에너지 부등식의 해가 단 하나의 조건 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두 개의 부등식으로부터 나온 호킹-펜로즈 이론보다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럽다.

필자는 앞으로 이 이론을 이용해 우주가 태어난 과정을 좀더 상세히 밝힐 계획이다. 또 우주의 96%를 이루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암흑물질(과학동아 6월호 기획기사 참고-편집자 주)과 암흑에너지를 연구할 예정이다. 끈이론에서는 암흑물질이나 에너지가 우리가 볼 수 없는 칼라비-야우 공간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는 입자론에 바탕을 둔 우주론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가정이다. 팽창하는 우주가 얼마나 구부러져 있고(외곡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도 중요한 연구 과제다. 마지막으로 우주가 미래에 계속 팽창할지 수축할지를 밝히는 연구도 계획 중이다. 새로운 빅뱅이론이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길 기원한다.



글 : 조용승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 기자
과학동아 2011년 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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