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직후 우주에는 쿼크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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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20세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같은 혁신적인 물리학 이론이 나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현상을 보는 대로 이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우주와 같은 거대 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 결과 우리의 우주가 아주 작은 점에서 시작했다는 빅뱅(대폭발) 이론이 탄생했다.

그 뒤 천문학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를 관측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빛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시간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빅뱅 직후 약 40만 년 이내에 매우 뜨겁고 밀도가 높은 초기 우주에서는 빛이 다른 입자와 충돌해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멀리서 불빛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를 망원경으로 볼 수 없다면, 지상의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미니빅뱅’이라 부르는 중이온가속기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 주에 있는 브룩 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상대론적 중이온가속기(Relativistic Heavy Ion Collider, RHIC)’ 실험에서 빅뱅 직후 수백만 분의 1초에 해당하는 우주 상태를 재현해 그 성질을 일부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쿼크-글루온 수프’ 상태가 존재했음을 지상의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이다.

 


쿼크들은 서로 멀어질수록 작용하는 힘 더 세져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가 있다. 바로‘쿼크(quark)’의 세계다.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atom)는‘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원자 전체의 10-10% 공간에 전체 질량의 99.95%를 차지하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떠돌고 있는 구조다. 원자핵은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는데, 핵자조차 기본입자가 아니라 각각 3개의 쿼크로 구성돼 있다. 양성자는 업(up)쿼크(u) 2개와 다운(down)쿼크(d) 1개, 중성자는 업쿼크 1개와 다운쿼크 2개로 이뤄져 있다.

핵자 내부에서 쿼크들을 강하게 묶어두는 힘을‘강력(强力)’이라 부르는데,‘글루온’이라는 매개입자의 교환을 통해 힘이 전달된다. 그런데 강력은 쿼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용하는 힘이 더 강해지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핵자 속에 있는 쿼크들을 서로 떼어낼 수가 없다. 쿼크이론이 발전하면서, 따로 떨어진 쿼크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소용없음을 알게 됐다. 핵자 속의 쿼크들을 분리하려고 점점 큰 에너지를 투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쿼크-반쿼크 쌍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입자-반입자 쌍으로(또는 그 역으로) 변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핵자 속에 갇혀 있는 쿼크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 쿼크의 이상한 세계에서는 쿼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작용하는 힘이 작아진다. 따라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킨 뒤 충돌시켜 원자핵을 압축하면 쿼크들이 서로 가까이 다가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BNL에서 이뤄진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은 바로 이런 가정을 실제로 구현한 실험이다.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로 미니빅뱅 일으켜


원자핵은 원자 중심부의 아주 작은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원자핵을 압축하려면 먼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를 모두 떼어내야 한다. 또한 핵자의 개수가 많은 원소를 실험에 사용해야 핵자 사이에 좀 더 많은 충돌이 일어난다. 우라늄이나 금처럼 질량이 큰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원자핵을‘중(重)이온’이라고 부른다. 보통의 상태에서 중이온은 강한 양(+)의 전기(금의 경우 +79나 된다!)를 띠고 있어서 서로 밀치므로 가까이 다가가게 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개의 중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하면 정전기적 반발력을 극복하고 충돌한다. 중이온가속기 앞에 ‘상대론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물체(중이온)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킬 경우 상대론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길이 수축이 일어난다. 따라서 입자의 부피가 줄어 밀도(단위부피당 핵자의 개수)가 늘어난다.

정면으로 마주보며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밀도가 높은 두 중이온이 충돌하면 온도가 엄청나게 높아진다.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실험에서 구현된 온도는 약 4조℃(태양 중심부 온도의 약 30만 배)로 측정됐다. 이 온도는 137억 년 전, 빅뱅 직후 수백만 분의 1초가 경과한 초기 우주의 온도에 해당하는데, 인류가 실험실에서 구현한 사상 최고의 온도다.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 실험을 통해 초기 우주의 상태를 재현한 셈이다. 두 중이온이 충돌하는 순간을‘미니빅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초기 우주에 해당하는 2조℃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는 쿼크들이 구속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자유로운 쿼크-반쿼크 쌍이 매우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온도가 내려가면서 자유롭던 쿼크와 반쿼크 무리는 3개의 쿼크가 서로 구속돼 한 핵자가 되거나 쿼크와 반쿼크가 짝을 이뤄 중간자가 되는 상전이 과정을 거치며 사라진다. 핵자와 중간자를 합쳐서‘강입자’라 부르는데, 현 우주에 존재하는 강입자는 빅뱅 이후 초기 우주에서 형성된 쿼크와 반쿼크 무리가 약 100만 분의 1초의 시간이 지난 뒤 강력으로 묶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중이온가속기들

 

중이온을 가속시켜 초기 우주의 상태를 재현하는‘중이온가속기’는 현재 독일의 중이온연구소(GSI)와 스위스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미국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BNL)에 설치돼 있다. 이미 많은 노벨상을 배출한 바 있는 이들 세계적인 연구소의 중이온가속기들은 양성자에서 우라늄 원자핵까지 다양한 원자핵을 핵자당 수십억~수조eV(전자볼트, 에너지 단위로 1eV는 전자 1개가 전압 1볼트에서 가속될 때 얻는 운동에너지)로 가속시키는 충돌실험을 수행해오고 있다.



최근‘쿼크-글루온 수프’의 발견은 BNL의 상대론적 중이온가속기에 설치된 스타(STAR) 검출기와 피닉스(PHENIX) 검출기를 통한 국제공동연구로 이뤄졌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고려대, 연세대, 부산대 등 약 10개의 기관에서 30여 명의 연구자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인류 최대의 충돌실험이 될 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사진) 실험에서는 앨리스(ALICE)를 비롯해 CMS, 아틀라스(ATLAS) 검출기를 이용해 중이온실험이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 연구진은 ALICE에 30여명, CMS에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중심으로 중이온가속기 건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중이온가속기에 비해서는 가속 에너지가 낮아서 초기 우주의 상태를 구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소들의 생성과정, 차세대 핵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초기 우주는‘쿼크-글루온 수프’상태


쿼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작용하는 힘이 작아지므로, 2조℃가 넘는 온도에서는 쿼크와 강력의 매개입자인 글루온이 자유롭게 존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뜨거운 가스 형태의 물질 상태를‘쿼크-글루온 플라즈마(quark-gluon plasma)’라 부른다. 즉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 실험이 성공할 경우 강입자 상태에서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상태로 상전이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와 같이 새로운 물질 상태로의 상전이가 일어날 때는 마치 물이 얼음, 물, 수증기로 상태가 변할 때 온도와 밀도, 투명도 같은 성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여러 가지 물리량이 급격히 변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물리량의 변화를 측정해 특이현상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상태로의 상전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실험 결과, 빅뱅 이후 수백만 분의 1초에 해당하는 우주는 플라즈마보다는 액체에 가까운 상태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초 과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쿼크와 글루온의 상호작용이 매우 약한‘뜨거운 가스’형태의 플라즈마가 아니라, 상호작용이 꽤 있는 액체 상태인‘쿼크-글루온 수프(quark-gluon soup)’로 나타났다.

이 사실은 중입자 충돌 뒤 생긴 고에너지 입자들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 분출되는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확인됐다. 즉 입자가 분출될 때는 운동량이 보존돼야 하므로 어떤 입자가 한 방향으로 분출되면 다른 입자는 그 반대 방향으로 분출돼야 한다. 그런데 쿼크-글루온 수프 표면에서 바깥쪽으로 분출된 입자와는 달리 안쪽으로 분출된 입자는 수프의 입자와 상호작용해 흡수돼 버린 것. 만일 플라스마였다면 내부를 통과해 반대쪽으로 분출됐을 것이다.


결국 중이온 충돌로 쿼크들이 핵자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벽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느 정도 상호작용하고 있는 새로운 상태가 발견된 것이다.

 


새로운 반입자 원자핵 발견


중이온 충돌로 온도가 4조℃까지 올라가 핵자의 구속에서 풀린 쿼크는 온도가 떨어지면서 다시 묶여 여러 입자를 만들어낸다. 필자들을 포함한 부산대 연구팀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연구그룹‘스타(STAR)’는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입자인‘반물질 초입자원자핵(antimatter hypernucleus)’을 발견해 과학저널‘사이언스’3월 4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이번에 발견한 초입자원자핵은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람다입자로 이뤄져 있다. 핵자를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반(反)입자인 반양성자나 반중성자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지만, 무거운 기묘(strange)쿼크가 포함된 람다입자 같은 초입자(hyperon)나 반기묘 쿼크가 포함된 반람다입자 같은 반초입자는 고에너지 상태에서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원자핵에 포함된 초입자 개수(정확히는 기묘쿼크의 개수)에 따라 원자핵의 기묘도(strangeness, 기묘쿼크 개수의 마이너스값)가 결정된다. 우리 주위 물질 대부분은 원자핵이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로만 이뤄져 있으므로, 즉 초입자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기묘도가‘0’이다.



최초의 초입자원자핵은 1952년 발견됐는데, 양성자, 중성자, 람다입자로 이뤄진 초입자삼중수소핵(hypertriton)이다. 람다입자는 업쿼크 1개, 다운쿼크 1개, 기묘쿼크가 1개로 이뤄져 있으므로 이 초입자원자핵의 기묘도는 -1이다. 초입자삼중수소핵은 매우 불안정 하기 때문에 보통 수백 피코초(1피코초는 10-12초) 뒤에 기묘도가 0인 반헬륨-3 원자핵과 중간자(π+)로 붕괴한다.

이번에 발견된 반물질 초입자원자핵은 1952년 발견된 초입자원자핵의 반입자인 반초입자삼중수소핵(antihypertriton)이다.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람다입자가 각각 3개의 반쿼크로 이뤄져 있으므로 모두 9개의 반쿼크로 이뤄진 원자핵이다. 고에너지 상태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입자들이 발견됐지만 반기묘쿼크를 포함해 반쿼크 9개로 이뤄진, 기묘도 1(반기묘쿼크이므로 부호가 반대)인 초입자원자핵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발견으로 우주 초기에 존재한 원소들의 핵차트의 3번째 축(기묘도)이 마이너스(입자)에서 플러스(반입자)까지 확대됐다.


이번 발견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그려왔던 초기 우주에 대한 모습을 다시 생각해봐야 함을 시사한다. 좀 더 초기의 우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과학자들은 더 높은 온도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돼 있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는 이번 실험보다 약 28배나 더 높은 에너지에서 초기 우주를 재현할 계획이다. 사실 빅뱅 순간의 온도가 얼마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지상의 가속기 실험을 통해, 초기 우주의 새로운 신비가 밝혀질 날을 기대해 본다.

 


유인권 교수는 중이온충돌실험연구로 독일 마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중이온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BNL의 스타(STAR) 실험과 CERN의 앨리스(ALICE)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이창환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중성자별의 내부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중성자별, 블랙홀과 관련된 천체물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글 :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이창환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기자 yoo@pusan.ac.kr, clee@pusan.ac.kr
과학동아 2010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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