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에서 엿본 영혼의 그림자

신경유전학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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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도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있을까? KAIST 김대수 교수는 “그렇다”고 말한다. ‘뇌의 톨게이트’라고 할 수 있는 시상핵은 모든 감각 자극이 뇌로 전달되는 관문이다. 이 시상핵 관문이 닫히면 의식을 잃게 되고 관문이 활짝 열리면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김 교수가 이끄는 신경유전학연구실에서는 이런 의식이 조절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려고 한다.

“시상핵 관문이 닫히면 감각이 무뎌집니다. 탐험가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사자한테 물린 순간 ‘아픈 줄도 몰랐다’고 했죠. 너무 무서운 나머지 시상핵이 닫혀서 통증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못한 겁니다. 시상핵은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경우나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닫히죠.”

200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일하던 그는 세포 내 이온 통로인 ‘T형 칼슘 채널’이 의식 차단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쥐에서 T형 칼슘 채널을 제거하자 감각 신호 관문인 시상핵에서 통증신호를 차단하지 못해 계속 통증을 일으킨 것이다.
 

김대수 교수가 신경신호를 연구하기 위해 머리에 전극 커넥터(connectoer)를 꽂은 생쥐를 관찰하고 있다.김대수 교수가 신경신호를 연구하기 위해 머리에 전극 커넥터(connectoer)를 꽂은 생쥐를 관찰하고 있다.


시상핵 자극으로 파킨슨병 치료

연구팀은 시상핵이 통증 같은 감각의 조절뿐 아니라 운동신호의 조절에도 관여하는지 여부를 분석하고 있다. 김 교수가 생쥐의 시상핵 일부를 망가뜨리자 생쥐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른 생쥐의 먹이를 훔치는 행동을 보였다. 시상핵은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과도 관계가 깊다. 팔다리가 떨리고 근육이 굳어지는 파킨슨병 환자는 운동신호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파킨슨병 환자는 첫 발을 떼기 힘듭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해도 걸음이 느리죠. 그런데 이 환자의 뇌 속 시상핵에 스위치를 넣어 전기 자극을 주면 관문이 열려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잘 걷고 춤까지 춰요. 반대로 ‘투렛 증후군’(Tourette syndrome)은 운동신경 억제에 이상이 생겨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팔을 마구 뻗는 등의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런 환자도 시상핵에 전기 자극 스위치를 이식하면 멀쩡하게 행동하죠.”

김 교수는 시상핵의 활성을 조절하는 수용체가 제거된 생쥐를 이용해 이런 운동관문의 존재를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가 KAIST에 실험실을 연 것은 지난해 9월. 현재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학생 3명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원래 전공은 신경과학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KIST 신희섭 박사와 함께 생쥐에서 배아줄기세포를 국내 최초로 만들어 낸 주역이다. 일부 유전자 기능을 없앤 ‘녹아웃 생쥐’(knock-out mouse)도 우리나라에서 그가 가장 먼저 성공했다. 그러던 그가 신경과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생쥐의 발작.

“한번은 ‘PLC-β1’이란 유전자를 없앤 녹아웃 생쥐를 갖고 실험할 때 생쥐가 다 죽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치우려고 보니까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알고 보니 간질 발작을 일으킨 거였어요.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깨어나는 걸 반복했던 거죠. 그걸 계기로 PLC-β1이 간질 억제 유전자라는 걸 발견하게 됐습니다.”
 

연구원드링 생쥐 뇌에 연결된 전극을 통해 뇌파를 분석하고 있다.연구원드링 생쥐 뇌에 연결된 전극을 통해 뇌파를 분석하고 있다.


생쥐, 술독에 빠지다

최근 연구팀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이유를 뇌에서 찾고 있다. 사람의 성격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는 자극추구형, 안전제일주의인 위험회피형, 보상을 주면 더 잘하는 모범생형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 성격 분류는 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상핵이 망가진 쥐들은 강한 자극추구형 성격을 갖습니다. 원래 생쥐는 술을 싫어하는데 이들 돌연변이 생쥐들은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새로운 물건을 겁내지 않고 갖고 놉니다.”하지만 성격, 자아, 정서, 사회성 등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방법 상의 한계들이 많다. 뇌 일부를 파괴하고 결과를 보는 기존 실험은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데다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새로운 뇌 손상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신경세포 대신 신경세포를 지지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신경교세포(glial cell)를 없애는 실험이다. 신경교세포를 일부만 제거하면 신경세포는 남아있지만 부작용 없이 시냅스를 차단할 수 있는데다 원 상태로 복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복구가 가능한 뇌 손상기법을 이용하면 시간개념을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인식기능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도, 생쥐도, 초파리도 모두 화를 냅니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돼요. 점점 고차원적인 감정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언젠가는 인간의 자아와 영혼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김대수 교수(맨 오른쪽)와 연구실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김대수 교수(맨 오른쪽)와 연구실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글 : 이상엽 기자 narciso@donga.com
과학동아 2005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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