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의 마법사, 신경제세포

분화 다양성의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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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는 그녀가 먼발치에서 다가온다, 골목길에서 난폭하게 짖어대는 개와 딱 마주친다, 조금 있으면 드디어 시험결과가 발표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침이 바싹바싹 마른다, 숨이 가빠진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이는 자율신경계의 일부인 교감신경계의 작동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흥분성 생리현상이다. 자율신경계는 말 그대로 환경 변화에 반응해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신경조직을 지칭한다. 자율신경계는 감각신경계와 더불어 말초신경계를 구성한다. 말초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된 중추신경계 밖에 있는 신경조직을 통칭한다. 말초신경계 역시 중추신경계와 같이 신경세포와 교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맡은 역할과 신체 내 위치에 따라 독특한 구조를 갖고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중추신경계의 세포는 신경줄기세포(neural stem cell)가 분화해 만들어진다. 그럼 말초신경계 조직을 이루는 세포들은 어떻게 생겨날까? 이에 답하기 위해 매우 흥미로운 신경줄기세포의 일종을 소개한다.

오지랖 넓은 신경제세포

척추동물은 수정 후 낭배기를 거치면서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으로 이뤄진 배아로 발달한다. 중추신경계의 발생은 낭배기 때 외배엽 일부가 신경판으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주변 외배엽 세포들이 편평한 모양의 표피세포로 분화하는 동안 신경판 내의 세포는 점점 길어진다. 가장자리 세포들이 융기하면서 신경판이 V자 모양의 신경습으로 변하고, 그 후 양쪽 융기부위가 서로 붙어 신경관이 만들어진다. 성체의 중추신경계가 기하학적으로 하나의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발생과정의 결과다.

표피가 될 외배엽과 신경판이 다양한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신경줄기세포의 일종인 ‘신경제세포’(neural crest stem cell)가 생긴다. 신경제세포는 신경습과 신경관이 만들어지는 동안 외배엽에서 떨어져 나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말초신경계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신경제세포는 배아에서 분화되고 있는 다른 여러 조직으로도 이동해 파고들어간다. 마치 암이 전이될 때 암세포가 다른 조직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보통의 신경줄기세포 대부분이 중추신경계로 분화하는데 반해 신경제세포는 말초신경계 이외에 여러 조직 내에서 수십 종류의 세포로 분화한다. 이 같은 신경제세포는 척추동물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척추동물을 분류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된다.

신경제세포의 전이현상은 현미경과 조직염색기법을 이용해 100여년 전에 이미 발견됐다. 그 후 많은 발생학자들이 신경제세포의 이동경로와 분화과정에 대해 연구해왔다. 이 중 가장 기념비적인 것은 니콜 르 다우린 박사가 실험한 메추라기와 닭의 이종이식.

르 다우린 박사는 발생 중 신경관 일부를 제거한 닭의 배아에 메추라기의 신경관 일부를 이식했다. 많은 경우 닭은 무사히 성체로 자랐다. 르 다우린 박사는 닭이 자라는 동안 중간중간 조직염색기법을 이용해 실제로 메추라기 신경관에서 신경제세포가 배출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메추라기 세포의 핵은 매우 진하게 염색되기 때문에 신경관과 신경관에서 나오는 신경제세포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즉 발생과정 전체를 통해 신경제세포의 증식, 이동, 분화과정을 관찰한 것이다.

르 다우린 박사는 여러 차례 이종이식 실험으로 신경제세포가 감각신경계를 구성하는 배근신경절, 자율신경계의 신경세포와 교세포로 분화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신경제세포가 말초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줄기세포임을 의미한다.

놀라운 것은 이 외에도 피부의 흑색소세포, 부신수질의 크롬친화세포, 대동맥과 심장판막의 평활근세포 역시 신경제세포에서 생긴다는 사실이다. 머리 부분에서 발생한 신경제세포는 얼굴 부위의 뼈와 연골을 만든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안구, 내이, 치아 조직도 신경제세포가 만든다고 한다. 이 같은 놀라운 다분화능, 즉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신경제세포는 ‘발생의 마법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털 색깔과 대장운동에 결정적

조직이식실험 같은 전통 발생학과 함께 신경제세포의 발생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유전학이다. 유전학은 생물의 크기, 색깔, 행동양식 같은 각종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지는 메커니즘과 양상을 이해함으로써 관련된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기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다른 유전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신경제세포를 이해하는데도 돌연변이를 이용한 유전자 동정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생쥐는 신경제세포 발생에 관련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을 때 많은 경우 털색에 변화가 생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얼룩백색증. 흑색소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결과다. 얼룩백색증 생쥐는 정상과 구분하기 쉽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바꿔 말하면 자손으로 유전되는 얼룩백색증이 나타난다는 것은 신경제세포 발생에 관련된 중요한 유전자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제세포의 발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단지 얼룩백색증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술갈림증, 난청, 거대결장증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특히 거대결장증은 독특한 현상이다. 내장에는 신경제세포에서 만들어진 많은 신경세포와 교세포가 모여 신경절을 이루고 있다. 신경절은 내장의 꿈틀운동을 조절한다. 신경제세포의 발생에 지장이 있을 경우 내장, 특히 대장에 생겨야 할 신경절이 모자라거나 아예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면 대장은 꿈틀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완돼 용변에 문제가 생긴다.

얼룩백색증이나 거대결장증 같은 현상은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게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과연 생쥐와 같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인간에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가 생긴 바로 그 유전자를 찾아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유전되는 돌연변이의 경우 시험교배와 유전자 지도화 방법(gene mapping)을 통해 어느 유전자가 잘못됐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생쥐와 사람의 유전자는 대부분이 염기서열, 기능, 발현되는 시기 등이 비슷한 상동유전자(orthologue)를 갖고 있다. 즉 생쥐에서 발견된 신경제세포 돌연변이 유전자 역시 인간 상동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얘기. 실제 분석결과 인간과 생쥐, 그리고 다른 많은 척추동물에서 신경제세포의 발생을 관장하는 유전자는 공통적이며, 이 상동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비슷한 표현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생쥐처럼 키우기 쉬운 동물모델을 이용해 밝혀낸 신경제세포에 관한 사실들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제세포의 다분화능^포유류 몸의 단면을 간단히 그린 모식도. 아래쪽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이 장을 나타낸 것이다. 발생 초기 외배엽에서 떨어져 나온 신경제세포는 화살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조직으로 들어가 각 조직의 세포로 분화한다.(자료출처 : 클라우스 칼도프 박사의 저서 신경제세포의 다분화능^포유류 몸의 단면을 간단히 그린 모식도. 아래쪽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이 장을 나타낸 것이다. 발생 초기 외배엽에서 떨어져 나온 신경제세포는 화살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조직으로 들어가 각 조직의 세포로 분화한다.(자료출처 : 클라우스 칼도프 박사의 저서
 


하나하나 모두 다분화능 세포

신경제세포의 발생과 관계있는 유전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특히 연구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포 간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신호전달물질과 세포 표면 수용체 유전자, 그리고 유전자의 발현을 직접 조절하는 전사조절인자 유전자다. 흥미롭게도 일부 신호전달물질들은 신경제세포의 ‘계보’를 결정하는데 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호전달물질인 GGF와 BMP는 신경제세포를 각기 교세포와 교감신경세포로 분화하도록 유도한다.

세포 표면에서 일어나는 신호전달은 궁극적으로 일부 유전자 발현의 활성 또는 억제로 이어진다. 이때는 전사조절인자가 유전자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활성이나 억제를 조절한다. 신경제세포에서 발현되는 전사조절인자는 이미 여러 종류가 알려져 있다. 그 중 하나인 Mash1은 BMP에 의해 발현이 유도되며 신경제세포가 교감신경세포로 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같은 유전자의 역할 규명에 유전자를 신경제세포에 과발현시키거나 파괴해 보는 각종 분자생물학 방법이 동원된다. 분자생물학은 각종 생명현상을 유전자의 조절과 기능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Mash1을 과발현시키면 GGF를 넣어도 모든 신경제세포가 교감신경세포로 분화하고, Mash1을 파괴하면 BMP를 넣어도 교감신경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매우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주요 유전자 발굴과 더불어 신경제세포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것은 신경제세포를 시험관 안에서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메추라기와 쥐의 경우 세포를 하나씩 분리해 배양하는 이른바 ‘순체배양’이 가능해지면서 다른 방법으로 답하기 힘든 질문들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하나의 신경제세포가 신경세포, 교세포, 평활근 등으로 분화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제세포가 생성됐을 때 이미 어느 세포로 분화할지 정해져 있는 것인지를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신경제세포가 분열하고 분화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 답은 전자 쪽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즉 생체 단위에서 보이는 신경제세포의 다분화능이 다양한 세포가 혼합돼 나타나는 집단 단위의 특징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다분화능 줄기세포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배아줄기세포 으뜸, 신경제세포 버금

신경제세포는 아마도 배아줄기세포를 제외하고 가장 다양한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줄기세포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 세포로 분화하는데 필요한 신호전달물질과 전사인자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순체배양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검사하는 독특한 실험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줄기세포로는 하기 힘든 정교한 실험도 가능하다.

최근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세포 현상 관찰을 넘어서 유전자 차원의 조절과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 신경제세포가 바로 이 같은 새로운 수준의 연구에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 김재상 교수 jkim1964@ewha.ac.kr
과학동아 2005년 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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