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블랙홀 속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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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블랙홀이라고 하면 천문학자와 물리학자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블랙홀 이론의 괄목할만한 발전 뒤편에는 묵묵히 제 할일을 했던 수학이 있다.


#1 얼마나 압축하면 블랙홀 될까?

야구를 좋아하는 태하는 주말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공원을 찾았다. 단단한 어깨를 자랑하고 싶어 온 힘을 다해 하늘 높이 야구공을 던졌지만 야구공은 금세 글러브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아버지 또한 태하보다 조금 더 높이 던졌을 뿐 결과는 똑같았다. 야구공에 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낸 태하는 문득 중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야구공을 얼마나 세게 던져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중력을 이기고 지구를 벗어날 수 있는 속도를 지구 탈출 속도라고 한다. 지구의 탈출속도는 초속 약 11.2km다. 1초에 11.2km 이상으로 꾸준히 날아가야 지구를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다. 지름이 지구의 100배인 태양의 탈출 속도는 초속 약 618km이다. 탈출 속도는 보통 천체가 크고 무거울수록 커진다. 그렇다면 1초에 약 30만km를 가는 빛은 어디서나 중력을 이기고 탈출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빛조차 탈출하지 못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블랙홀이다.
 
수학자 라플라스는 179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태양보다 큰 별에서 나오는 빛은 강한 중력 때문에 지구에 도달하지 못해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주장했다. 1916년에는 독일의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가지고 별 주변의 시공간이 얼마나 휘어지는지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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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cm로 압축하면 지구도 블랙홀!

만약 어떤 별을 그 별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보다 작게 압축하면 그 별은 블랙홀이 된다. 이 반지름은 블랙홀의 중심인 특이점에서 사건의 지평까지의 거리를 말하기도 한다. 즉 어떤 물체가 블랙홀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 물체는 사실상 블랙홀을 탈출할 수 없다. 이미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물체의 질량에 비례한다. 태양의 질량이 지구의 약 33만 배이므로 태양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지구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33만 배다.

그렇다면 태양이나 지구를 압축해 블랙홀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태양이나 지구를 압축하면 질량은 그대로인 채 반지름만 작아져 중력이 매우 강해지고, 결국 엄청난 중력 탓에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이 된다. 슈바르츠실트가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태양과 지구가 블랙홀이 될 수 있는 반지름은 각각 약 3km와 약 0.9cm이다. 지구를 콩알만 한 크기로 압축할 수만 있다면 지구도 블랙홀이 된다. 물론 지구를 그 정도로 작게 압축하는 건 쉽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을 구하는 공식에서 중력상수와, 빛의 속도는 항상 같다. 따라서 천체의 질량만 알면 얼마나 압축해야 블랙홀이 되는지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량이 지구의 약 300배인 목성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지구의 약 300배다. 즉, 반지름이 약 2.7m가 될 때까지 압축하면 블랙홀이 된다.

블랙홀은 회전 여부와 전하의 유무를 따져 총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슈바르트실트가 가정한 블랙홀은 회전하지 않고 전하도 없어 가장 단순한 블랙홀로 분류된다. 슈바르트실트 블랙홀이 회전하면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의 이름을 붙인 ‘커 블랙홀’이다. 천문학자들은 커 블랙홀을 가장 일반적인 블랙홀로 꼽는다. 대부분의 별이 이미 회전하고 있어 이후 만들어지는 블랙홀도 회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 리만 기하학 없으면 상대성이론도 없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기차가 만난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가 아니다.”


수학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위의 두 명제가 항상 거짓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틀렸다. 두 평행선이 만나고,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이 아닌 상식을 뒤엎는 기하학이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이 아닌 휘어진 공간에서 성립한다. 지구본에서 세 도시를 골라 삼각형을 그려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각형의 세 변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보다 커진 것이다.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와 그의 제자 리만이 처음 발표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만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몰랐다면 결코 상대성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상대성이론에서의 리만 기하학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리만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대표적인 두 형태인 구면기하학과 쌍곡기하학을 포함하는 보다 일반적인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중력 개념을 상대성이론으로 완전히 뒤엎었다. 이전까지는 뉴턴의 중력 이론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뉴턴은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며, 그 힘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두 물체의 질량이 무거울수록 그리고 가까울수록 인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속속 나타났다.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이론이 필요하던 때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휘어진 시공간으로 설명했다. 덧붙여 시공간을 휘게 한 주범은 질량을 가진 물체라고 지목했다. 뉴턴이 지구가 태양을 도는 현상을 지구와 태양 사이의 인력으로 설명했다면, 아인슈타인은 태양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져 지구가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태양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심쩍은 이론이였던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실제 태양을 스쳐 지나가는 빛이 휘어지는 것이 관측되면서 사실로 증명됐다.
 블랙홀이 빛나는 이유

블랙홀은 어떻게 생길까? 큰 질량을 가진 별이 생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스스로의 중력에 의해 천체가 붕괴한다. 붕괴가 지속되면 천체가 쪼그라들면서 전체가 하나의 점으로 압축된다. 이 점이 특이점이다.

이것을 시공간이 휘어지는 것으로 생각해 보자. 얇은 천 위에 쇠구슬을 올려놓는다. 쇠구슬이 무거워질수록 천은 깊이 파인다.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 것이다★★. 만약 천 위에 다른 물체가 있다면 깊이 파인 곳으로 떨어지고 천은 더욱 깊이 파이게 된다. 천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다면 그 주위를 지나던 물체는 모두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블랙홀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 ★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로 현실에서는 지구의 중력에 의해 쇠구슬이 내려온 것이다.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쇠구슬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내려오기 때문에 혼동의 소지가 있다.

빛 또한 마찬가지다. 블랙홀을 지나는 빛은 사건의 지평을 지나는 순간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사건의 지평을 스쳐 지나가면 블랙홀의 강한 중력의 영향을 받아 휘어진다. 이른바 중력렌즈 현상이다. 이 휘어진 빛은 블랙홀 주위를 밝게 빛나게 만든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이를 반영한 블랙홀의 장면이 나오는데,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중력렌즈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낸 결과다.
 
영화 속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중력이 커서 시공간이 많이 휠수록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시간이 느리게 가는 행성이 나온다. 그 행성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의 영향을 받아 시간이 느리게 간다. 그래서 만약 우주선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블랙홀 외부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우주선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주선이 블랙홀에 다가갈수록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사건의 지평에 다다르면 아예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블랙홀의 중력이 너무 강해 우주선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선에 탄 사람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3 4차원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같은 장소에서 시간차를 두고 엇갈리는 남녀. 드라마에서 지겨울 만큼 자주 보던 장면이다. 둘은 같은 공간에 머물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알다시피 서로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시간이 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3차원이다. 직선 위의 세계가 1차원, 평면 위의 세계가 2차원이라면 가로, 세로, 높이 세 방향이 만드는 공간이 3차원이다. 약속을 잡을 때 만나는 장소(공간좌표)와 시간을 함께 정하면 서로 엇갈리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러시아의 수학자 민코프스키 또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민코프스키는 기존의 3차원에 시간을 더해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만들었다. 이를 ‘민코프스키 공간’이라고 한다. 1908년 민코프스키는 2차원 좌표평면의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공간과 시간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좌표평면 위에 점 하나를 찍었다. 기존의 공간좌표에 시간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세계점’이다. 민코프스키는 시간은 계속 흐르기 때문에 세계점은 자취를 그려 ‘세계선’의 개념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세계선은 공간 속의 어떤 물체의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선이다. 예를 들어 한 장소에서 평생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의 세계선은 단지 위로만 뻗게 된다.
 
나아가 민코프스키는 두 원뿔을 추가해 이 개념을 확장했다. 현재의 공간을 상징하는 평면 위, 아래에 두 개의 원뿔을 맞대고 각각 미래와 과거의 시간이라고 설정했다. 4차원을 평면 위에 표현할 수 없어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가정하고 시간을 표현하는 세로축을 더해 4차원을 나타냈다. 기존의 3차원 그래프로 4차원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민코프스키 공간에서의 원점은 현재 위치와 시간을 의미한다. 물체가 이동한다면 평면 위의 미래의 원뿔에 세계선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움직임은 평면 아래의 과거의 원뿔에 나타난다. 원뿔 모선의 45° 각도는 민코프스키가 정한 빛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세계선이다. 빛보다 빠른 물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물체의 세계선은 원뿔 안에 있다.

민코프스키는 스위스에서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스승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남달랐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자신의 물리 연구에 도움이 될 정도로만 공부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을 ‘게으른 개’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의 강의를 필요한 만큼만 들었고 둘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자 민코프스키는 이를 기하학적인 4차원의 시공간 개념으로 봤다. 아인슈타인은 스승의 수학적인 재해석을 전해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민코프스키의 새로운 해석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아인슈타인도 스승의 이론을 응용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전시킨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고, 결국 블랙홀 이론의 밑바탕을 쌓았다.
 

글 : 최지호 기자 daniel@donga.com
글 : 이정열
사진 : 포토파크닷컴
사진 : 위키미디어
사진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수학동아 2014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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