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숨구멍, 환풍구를 안전하게!

  • 확대
  • 축소
2014년 10월 17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 뭐야!
평소 자주 지나다니던 환풍구에서 무서운 사고가 난 거야~. 그 뒤부터 환풍구만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겼어. 생각없이 올라갔던 과거를 생각하면 등골까지 서늘…. 보도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거대 환풍구는 또 어쩌란 말인가! 애초에 이렇게 위험한 환풍구가 왜 길 곳곳에 있어야 할까? 저거 다 치워 버리면 안 돼?

 


늘 다니던 곳이라 자연스레 올라갔는데…

2014년 10월 17일 저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신도시에서 큰 사고가 일어났어요. 판교 유스페이스 광장에서 야외 공연이 진행되던 중,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 있던 환풍구 덮개가 무너져 27명의 사람들이 20m 아래에 있는 환풍구 바닥으로 추락했지요.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어요. 정말 가슴 아픈 사고였죠. 사고가 일어난 환풍구는 보통 ‘돌출형’으로 분류하는 종류예요. 길에서 1~2m 높이로 불룩 솟아올라서 사람들이 올라가는 걸 막지요. 하지만 판교 환풍구는 경사진 곳에 있었고, 계단과 이어져 있어서 어른이라면 쉽게 올라갈 수 있었어요. 또 옆에 있는 잔디밭과 평평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다니던 곳이었죠. 심지어 이 환풍구는 보통 무대가 설치되는 광장 중앙보다 높게 솟아 있어서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요. 그래서 이전부터 야외 광장에서 하는 공연이나 행사를 훤히 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로 소문난 곳 이었지요. 사고가 있던 날도 사람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환풍구 위로 올라갔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한 덮개가 무너지면서 추락한 거예요.

사고 당시 환풍구 철망 덮개 위에 30~40여 명의 사람들이 올라서 있었다. 목격자들이 찍은 사진에는 사건 전부터 이미 덮개가 휘어 있었다.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사람이 올라서면 안 되는 장소 사고가 일어난 곳은 지상으로 1.3m 가량 솟아 오른 지하주차장 환풍구다. 이런 환풍구는 건축법에서 ‘지붕’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환풍구 덮개가 1㎡당 100kg의 무게만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 가로, 세로 1m인 정사각형위에 어른 두 명도 올라갈 수 없는 강도다.

환풍구 덮개는 가로 1개, 세로 2개의 지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지대가 끊어지며 수십 명이 20m 구멍 아래로 추락했다.

주의 문구 없음

덮개 아래는 떨어지는 물체나 사람을 지탱할 수 있는 철망 같은 안전 구조가 없이 뻥뚫린 직육면체 공간이었다. 환풍구 높이나 중간 안전 철망 설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올라서면 안 된다는 주의 문구는 없었다.

 

사고 나흘 뒤인 10월 21일, 경기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에 남아 있던 지지대로 사고를 재현해 봤다. 어른 27명분의 무게를 받은 지지대는 4분 만에 휘고, 13분 만에 반으로 뚝 갈라졌다.

환풍구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고?

지하철이나 지하상가뿐만 아니라 사람이 일정 수 이상으로 모이는 건물에는 모두 환풍구가 달려 있어요. 이 환풍구를 싹 다 없애 버리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실내의 사람들은 모두 더럽고 오염된 공기를 마셔야 할 거예요. 환풍구는 지하나 건물의 환기 시설과 연결된 ‘도시의 숨구멍’이거든요.

공기를 끌어들이는 환풍구를 ‘흡기구’, 오염된 공기를 걸러 내보내는 구멍을 ‘배기구’라고 해요. 흡기구를 통해서 산소가 많이 포함된 신선한 공기가 건물이나 지하로 들어가고, 사람들이 내뱉은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가득한 공기는 배기구를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와요.

이때 밖으로 나오는 공기는 환풍구에 달린 필터나 기계를 통해 걸러져요. 환풍구를 통해 나가는 이산화탄소는 바깥 공기에 자연스레 섞이지만, 미세먼지는 그렇지 않거든요. 2013년 기준으로 서울 공기의 미세먼지 농도는 1㎥당 25.5㎍(마이크로그램, 1마이크로그램은 100만 분의 1그램)예요. 하지만 지하공간에는 이보다 3~4배 많은 미세먼지가 떠돌지요. 철로와 지하철 바퀴가 마찰하며 나온 쇳조각들, 벽과 천정에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건축 자재들, 사람들의 몸과 옷에 묻어 있던 먼지등이 계속 갇힌 공기 중에 섞이거든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몇 년 전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라돈이나 포름알데히드 같은 실내 유독 물질도 환풍구를 통해 빠져 나간답니다. 냄새나 습기도 환풍구를 통해 오고가지요.

 


환풍구가 대부분 깊고 좁은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바로 위와 아래의 기압차를 크게 하기 위해서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환풍구 위쪽보다 아래에 더 많은 공기가 모여 기압차가 커지면, 지하의 오염된 공기가 위쪽으로 더욱 잘 빠져나간다.


환풍구는 대체 몇 개나 있을까? 2014년 기준 서울의 공공시설에 달린 환풍구는 총 2851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지하철 환풍구다.

 





지하생활이 늘수록 늘어나는 환풍구

2014년 현재 서울 공공시설의 환풍구 수는 총2851개예요. 그런데 이 수는 앞으로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어요. 깊게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넓게 쓸 수 있는 공간인 지하가 점점 더 개발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지하에는 상하수도, 전기선, 통신선 같은 우리 생활의 필수품들이 들어 있는 공간인 ‘공동구’가 있어요. 이 공간은 먼지나 화학물질이물과 선을 더럽히지 않도록 계속 환기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공동구에 는 꼭 환풍구를 설치해야 하지요.

아예 처음부터 지하에 건설된 도시도 있어요.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는 도로를 모두 지하터널로 밀어 넣은 신도시예요. 지상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상가만 있어서 소음이 적고 깨끗하지요. 지하터널의 먼지와 배기가스는 환풍구를 통해 지상의 깨끗한 공기와 교체돼요.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복합 공간인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있어요. 지하철뿐만 아니라 아파트, 은행, 박물관 등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공간이 지하에 들어가 있어요.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총 길이 32km가 넘는 터널로 연결돼 있어요. 그럼에도 이 곳 은 지상과 거의 같은 깨끗한 공기로 가득 차 있어요. 120개가 넘는 입구 와 그보다 훨씬 많은 환풍구를 통해 신선한 공기가 드나들거든요.
우리나라도 지하도시를 세울 계획을 하고 있어요. 서울 여의도공원, 부천시 역 주변 공간, 인천시 등의 지하에 복합 도시를 세우겠다는 구상이 차례차례 나오고 있지요. 그러니 환풍구는 점점 더 늘어날 거예요.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신도시 ‘라데팡스’. 도로와 교통망이 모두 지하로 들어가 지상이 더욱 쾌적하고 넓어졌다.

환풍구는 ‘긴급구난’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불이 나면 뜨거운 불보다 유독가스와 연기가
더 위험하다. 환풍구가 있으면 지하 공간에 가득 고인 가스와 연기는 환기 시설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독가스 사고나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환풍구를 통해 강제로 공기를 뽑아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환풍구도 변하고 나도 변해야 안전!

위험한 환풍구를 계속, 어쩌면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나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환풍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미국,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 등 해외에서는 몇십 년 전부터 안전을 고려해 다양한 환풍구를 만들어 왔답니다. 환풍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거나, 2~3층 건물 높이만큼 높은 벽 위에 구멍을 뚫어서 공기를 오가게 하는 거예요. 긴 지하철 노선을 따라 계속 갈아 줘야 하는 공기는 역마다 세운 환풍구 건물을 통해 처리하지요. 이때 환풍구 건물을 주변의 환경에 맞춰 아름답게 꾸미는데, 유명한 조각가가 설계한 환풍구는 관광명소가 되기도 해요.

우리나라의 환풍구도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서울 1호선 종각역처럼 원기둥 형태의 높고 긴 환풍구를 세워 안전도 지키고 볼거리도 만드는 역이 늘고 있지요. 또 서울지하철 9호선 같이 2000년대 들어 공사가 시작된 지하철 노선의 환풍구는 주변에 투명 가림막을 쳐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해 놓았어요. 혹시라도 섞여 나올지 모르는 오염물질이 사람들의 얼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환풍구의 높이를 1.5m 이상 높이고,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배기구를 도로 쪽으로 돌리는 등 보행자에 대한 배려도 더했답니다. 보도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지하철 환풍구는 크기를 줄이거나 주변의 녹지로 옮기고 있어요.
 
일본 오사카 우메다역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 유명 건축가인 무라노 토우고가 설계한 지역 명소다.일본 오사카 우메다역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 유명 건축가인 무라노 토우고가 설계한 지역 명소다.












환풍구는 굴뚝! 절대 올라가지 마세요~

환풍구만 변한다고 모두 끝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모르고 올라가지 않도록 위험성을 알리는 주의 문구를 확실히 부착하고, 환풍구의 역할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필요해요. 물론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바뀌어야 하지요.

환풍구는 공기가 다니는 일종의 ‘굴뚝’이에요. 환풍구 덮개는 공기가 지나다니는 길의 입구이지, 사람이 올라가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가 환풍구의 역할과 주의할 점을 제대로 알고 지킨다면, 환풍구도 도심의 숨구멍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거예요. 안타까운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 봐요.

섭섭박사의 환풍구 안전 수칙!

① 불룩 솟은 지하주차장이나 건물 환풍구는 지붕으로 분류해 덮개가 매우 약해요. 올라갔다가 옆으로 떨어질 경우도 위험하지요. 절대로 올라가지 마세요.


② 공원, 보도, 아파트 등 바닥에 환풍구가 설치된 곳도 많아요. 그 위에서 절대 놀거나 뛰지 마세요. 꼭 밟고 지나가야 할 경우에는 조심조심, 재빨리 이동하세요.

 

③ 환풍구 덮개 철망이 막히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공기 순환이 잘 안 돼요. 깨끗한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글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도움 : 이희정 교수
도움 : 신용휴 주무관
도움 : 국토교통부
도움 : 환경부
도움 : 인류와 지하공간
사진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어린이과학동아 2014년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