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덮친 AI의 정체는? AI 바이러스 수사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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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하기1월 16일, 전북 고창의 한 오리농장에서 신고가 접수됐다. 오리들이 알을 낳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는 신고였다. 다음 날 방역당국은 오리들이 AI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이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AI는 전남, 충남, 경기, 충북, 경남 등 전국 곳곳으로 퍼졌다. AI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퍼진 걸까?

우리나라를 덮친 AI의 정체를 기록한 수사 파일을 지금 공개한다!
 
H5N8형 바이러스가 뭐지?

AI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뜻하는 영어(Avian Influenza)의 줄임말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주로 조류에서 발견되지만 드물게 사람이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조류들은 기침과 호흡 곤란 같은 호흡기 질환이 나타나고, 벼슬이 파란색을 띠며, 알을 잘 낳지 못하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만약 사람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면 발열, 기침, 근육통과 같은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올 겨울 우리나라를 덮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두고 ‘H5N8’형이라고 부른다. 이 H5N8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종류라고 한다. 그렇다면 H5N8은 무슨 뜻일까?

사람이나 돼지, 조류를 감염시킬 수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두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즉 H5N8은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다. H와 N은 각각 단백질 이름인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나다제’의 첫 글자를 따서 붙였다.
 
이미지 확대하기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총 4번 우리나라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는 모두 H5N1형이었다.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총 4번 우리나라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는 모두 H5N1형이었다.


AI 바이러스, 도대체 누가?

AI 역학조사위원회에서는 이번 AI 바이러스를 옮긴 원인이 야생조류라고 지목했다. H5N8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철새가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농가에 있는 오리와 닭에 바이러스를 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새 보호 국제기구는 철새는 AI의 원인이 아니라 희생자라며, 철새가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로부터 옮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주장 1  철새가 옮겼다?

근거 1 가창오리 떼의 죽음


1월 16일 전북 고창면의 한 오리농가에서 AI 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철새 사체 98마리가 발견됐다. 가창오리 89마리,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7마리, 큰고니 1마리, 물닭 1마리였다. 검역본부는 이 중 25마리를 정밀 조사해 모두 AI(H5N8형)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철새 사체를 발견한 곳이 AI가 발생한 농가에서 약 5㎞ 떨어진 동림저수지라며, 이번 AI 바이러스는 철새가 우리나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근거 2 AI 확산과 철새도래지

AI가 확진된 이후 초반 며칠 동안은 대체로 AI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전북 지역에서 AI가 확인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충남, 충북, 경남, 경기까지 AI 바이러스가 퍼졌다. AI 바이러스가 퍼진 경로는 주로 서해안이다. AI 역학조사위원회는 “AI 발생 농가는 철새도래지 근처에 위치해 있고, 발생 지역은 겨울 철새가 국내에서 월동하는 서해안 지역에 모여있다”고 설명했다.

근거 3 국내 처음 발견된 H5N8

과거 우리나라에 네 차례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모두 H5N1형이었다. 반면 이번에 발생한 H5N8형은 국내에 없었을 뿐 아니라, 1983년 아일랜드의 농장에서 처음 보고된 뒤 2010년 중국에서 야생오리가 감염된 사례가 전부일 정도로 생소한 유형이다. AI 역학조사위원회는 “농장 위생이 불결하다고 바이러스가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야생조류로부터 H5N8형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주장 2  닭·오리가 원인이다?

근거 1 좁은 축사에서 면역력 떨어진 닭·오리?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 협력기구(EAAFP)는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야생조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되지만, H5N8 같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일반적으로 좁은 공간의 자연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는 오리, 닭과 같은 가금류한테서 볼 수 있는 질병”이라며 “오히려 농장의 폐수로 오염된 저수지에서 병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동물보호연합은 “닭과 오리를 좁고 불결한 공간에서 가둬서 기르는 사육하는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거 2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 온 시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은 가창오리 등의 철새가 우리나라 축사에 있는 닭이나 오리로부터 감염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 도래한 때는 2013년 11월 초이며 H5N8형 AI의 잠복기는 2~20일이다. 따라서 1월 17일에 죽은 가창오리는 오히려 우리나라 축사에 있는 닭 또는 오리로부터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인 . 터 . 뷰 김재홍(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AI 역학조사위원회 위원장)

만약 우리나라 농가의 오리나 닭에서 AI 바이러스가 처음 생겼다면 오리나 닭의 사체에 항체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조사 결과 항체는 없었지요. 동림저수지에서 발견한 가창오리, 큰기러기, 큰고니, 물닭의 사체에서도 역시 항체를 발견할 수 없었어요. 따라서 저수지에서 발견된 철새가 아닌 면역력이 강해 죽지 않은 야생조류가 우리나라에 AI를 옮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병원성 AI, 사람은 안전할까?

이번 AI 바이러스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고병원성’이라는 단어다. AI 바이러스는 고병원성, 저병원성, 비병원성으로 나뉘는데, 감염된 닭이 75% 이상 죽으면 고병원성이라고 한다. 즉 AI 바이러스는 닭을 기준으로 병원성을 분류하기 때문에 닭에 대한 병원성을 확인하지 못한 H5N8 바이러스는 아직 고병원성인지 저병원성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농가에서 기르는 닭과 오리보다 면역력이 강한 가창오리 등의 야생조류가 집단으로 죽은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H5N8 바이러스는 고병원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확인 1  사람에게 또는 사람끼리도 전염될까?


최근 중국에서는 AI 바이러스 H7N9, H10N8가 사람에게 전염되고 있다. H7N9 감염 환자의 수가 200명을 넘어서고 5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2014년 2월 6일 기준). 특이하게도 조류는 H7N9에 감염되더라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H7N9에 감염될 경우, 5명 중 1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이처럼 AI에 의한 인명 피해가 늘어나자 H7N9 AI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서도 전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실한 사실이 아니다.

H7N9과 달리 우리나라에 퍼진 H5N8은 지금까지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바이러스는 다양한 형태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만은 없다며 방역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확인 2  AI 방역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AI 방역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방역당국은 AI 발생지로부터 500m 반경은 ‘오염지역’, 3㎞는 ‘위험지역’, 10㎞는 ‘경계지역’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오염지역 내 오리와 닭, 알 등을 모두 매몰하고 발생 농장을 모두 폐쇄한다. 위험지역 내에는 가축과 차량 등의 이동을 완전 차단하고, AI가 퍼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지역 내 가금류를 살처분한다.

AI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각의 농가별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김재홍 교수는 “특히 온도가 낮은 겨울과 유기물이 있는 장소에서는 소독약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검증을 받은 소독약을 사용해 꼼꼼하게 방역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확인 3  3주 동안 280만 마리 살처분

AI가 발생한 지 17일 만에 15건이 AI 확진 판정을 받았고, 농가의 닭과 오리 28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과거 발생한 AI 기록을 찾아보면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적게는 1000여 마리에서 많게는 64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충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 경험에 비춰보면 신속한 예방적 살처분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동물보호연합은 “AI발생 농가 반경 3㎞ 내 지역에서의 예방적 살처분은 외국에서는 사례가 없는 비과학적이고 잔인한 동물살상 행위”라며 지적한다. 또한 “영국 등 유럽에서는 AI가 발생하면 해당 농가의 가금류만을 대상으로 살처분한다”고 말한다.

AI로 고통을 당하는 조류가 사라지고 사람에게도 피해가 없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올바른 AI 예방 대책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글 : 이혜림 기자 pungnibi@donga.com
도움 : 김재홍 교수, 위원장
사진 : 포토파크닷컴, 연합뉴스, 동아일보
어린이과학동아 2014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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